환경위기, 정부가 적극 대처하라
  • 편집국 ()
  • 승인 1996.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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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천공단 사태는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시화호 비극과 닮은꼴이다. 현재와 같은 양자 택일을 강요한 과거의 선택과 관리·감독 책임을 명백히 따져야 한다.”
 
정책은 결국 선택의 문제이다. 정책 입안자들이 흔히 쓰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어느 정책을 선택하건 그에 따른 장단점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정책을 선택하는 데 따르는 단점을 최소화하고 반대자를 설득해 추진하는 운영의 묘를 꾀하는 것이 최대 과제다. 그러나 그 선택이 선택에 따른 책임마저 자유롭게 해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의 최대 석유화학 단지인 전남 여천공단(5백60만평 규모)이 공단 폐쇄냐 주민 이주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여천시가 한국과학기술연구원(과기연)에 의뢰해 조사한 <여천공단 주변 마을 환경 영향 및 대책에 관한 연구 designtimesp=31707> 보고서가 사실상 이곳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고 최종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어느 쪽을 택하건 정부와 기업과 국민 모두가 톡톡히 대가를 치러야 할 판이다. 과기연 보고서의 이주 대책에 따르면 △이주 대상 주민 10개 동 4천71가구 1만5천2백68명 △보상 면적 5천6백10만여㎡ △이주 비용 6천8백65억원이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현재와 같은 비극적 양자 택일을 강요하게 만든 과거의 선택과 관리·감독 부실에 따른 책임 소재이다. 여천공단이 맞닥뜨린 현재의 비극적 최후는 오염원 장기 방치로 인한 예정된 파국이기 때문이다.

여천공단은 70년대부터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에 따라 조성된 국내 최대 석유화학 계열 공단이다. 이른바 중점화·계열화에 따른 산업 정책으로 전국의 공과대학이 특성화된 것도 이때이다. 기계(창원), 전자(구미), 석유화학(여천)으로 중점화한 거점 공업단지가 조성되고, 이 지역의 전남대 공대는 화공 특성화 공대로 지정·육성되었다.

이같은 중점화의 결과는 과기연 보고서가 공개되자 환경부가 7월11일 뒤늦게 발표한 ‘여천공단 환경 오염 실태 및 개선 대책’에 잘 나타나 있다. 공단에 입주해 있는 사업체 총 66개소 가운데 석유화학 업종이 41개소(62%)이며, 특정 유해 물질을 배출하는 사업장은 32개소(48%)나 된다.

문제는 여천공단의 오염 피해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천공단은 반폐쇄적인 광양만에 인접해 있어 공단에서 흘러나오는 산업 폐수로 인한 광양만 해양 오염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그동안 오염 물질 배출을 입주 업체의 자율적인 규제에만 맡겼던 정부의 환경 정책은 91년 11월에야 여천공단 폐수종말처리장을 준공하리만큼 미온적이었다.

정부, 전라남도의 ‘주민 이전’ 건의 계속 묵살

그 결과 지난해 7월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는 대기 오염으로 인한 여천공단 인근 과수 피해에 대해 첫 영구 배상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또 올해 들어서도 같은 위원회가 여천공단 폐수로 인한 재첩 양식장 피해를 인정하는 등 환경 오염으로 인한 피해 구제 및 복구 비용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남대 환경연구소(소장 이정전 교수)의 용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농작물 피해는 4억2천4백여만원에 이른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러 연구 결과에 의해 공단 주민들이 극심한 공해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혀진 86년부터 최근까지 전남도가 건의한 주민 이주 대책을 열여덟 번이나 묵살했다.

그러고서도 정부는 불똥이 정부로 튀자 이번에는 오염자 부담 원칙을 내세워 오염 개선 및 이주 대책을 둘러싼 비용과 책임을 전가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허경만 전남지사의 공단 폐쇄 발언도 중앙 정부로부터 이주대책비를 더 많이 지원 받기 위한 계산이 깔려 있는 것처럼 들린다. 공단에 들어가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기업에 비용을 떠맡기느냐는 입주 기업의 볼멘 소리도 드높다.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시화호의 비극’과 영락없이 닮은꼴이다.

과기연 보고서는 이주 대책 비용 분담률을 △국가 90.1% △입주 기업 8.7% △지방자치단체 1.2%로 산정했다. 여천공단이 정부가 중점 육성한 국가 공단이라는 점에서 정부는 ‘오염자 부담 원칙’만으로 발뺌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책은 선택이기도 하지만 책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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