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비평]혀 끝 즐거움에 미친 자들이여
  • 손일락 (청주대 교수·호텔경영학) ()
  • 승인 1996.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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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누구나 식도락가이다. 그러나 아무리 음식 문화가 ‘식재료를 학대하여 먹는’ 단계로까지 발달했다 하더라도 미식에 대한 욕망이 지나쳐서 수심(獸心)·마성(魔性)이 무시로 드러난다면 참으로 곤란한
카리브의 식인종들은 사람들이 여간해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귀중한 정보를 남겼다. ‘프랑스인은 맛있고, 영국인은 그저 그렇고, 네덜란드인은 아무 맛이 없으며, 스페인 사람들은 질겨서 먹을 수 없다’는 세밀한 식인 체험기가 그것이다. 스페인 사람에 대한 혹독한 육질 평가가 카리브 문화의 멸망을 재촉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찬란했던 카리브의 문화는 스페인 사람들이 초토화했다), 희귀한 식인 체험기를 통하여 우리는 식인종도 보통 사람처럼 미식을 끔찍이 즐긴다는 놀라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같은 사실은 이밖에도 한스 아스케나시가 전하는 뉴질랜드 바수토족의 애교 넘치는 에피소드, 곧 ‘선교사들이 식인 행위를 중지시키려 소떼를 선물하자 한번 맛본 뒤로 극구 사양했다’는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산 거위 뜯어먹는 잔혹한 요리법도

따지고 보면 인간의 미식 추구 역사는 유구하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이미 유별난 미식 추구벽이 등장했다. 당대 최고의 미식가이자 스캔들 메이커이던 아피키우스와 클라디우스 황제의 유별난 죽음은 미식 추구에 광적이던 당시 풍습을 훌륭하게 보여준다. 평소 창꼬치고기의 간 요리, 홍학의 혓바닥 요리, 코끼리 코찜 요리, 낙타 발바닥 요리, 인육(노예)으로 키운 장어 요리 등 진미 중의 진미만을 즐기던 아피키우스는 지나친 미식 추구로 말미암아 파산하자 “진귀한 음식을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세상, 더 살 필요가 있는가”라며 ‘대쪽’같은 삶을 마감했다. 클라디우스 황제는 상다리가 휘게 차려진 산해진미를 즐기다 새의 깃털이 목에 걸려 질식사했다. 당시 로마 귀족 사회에서는 새로운 진미를 계속 맛보기 위하여 먼저 먹었던 음식을 새의 깃털로 게워내는 ‘오버이트 식사법’이 유행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그러나 위대(胃大)한 인간족의 미식 추구가 언제나 이처럼 우아하고 점잖게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미식에 대한 욕망이 지나쳐 우주 삼라만상과 세계인의 삶에 심각한 민폐를 끼치거나 인류 공동체를 위협할 정도로 극성스럽고 무지막지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열린 감각>의 저자 다이안 에커만의 증언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18세기 영국에는 ‘동물이 지옥을 경험하면 고기 맛이 훨씬 좋아진다’는 광범위한 신념이 존재했고, 이러한 신념을 토대로 무수한 요리가 개발되었다. 서양인들이 애지중지하는 거위 요리도 그중의 하나다.

거위 조리법을 숙연한 마음으로 소개한다. 살아 있는 거위의 털을 대가리털만 빼고는 모두 뽑는다. 거위 몸에 양념을 바른 다음 한가운데 가두고 둘레에 둥글게 불을 놓는다. 파티가 무르익는 동안 거위는 익어가는 몸을 식히려고 가운데 놓은 물과 소스를 들이킨다. 이 소스와 물도 인도적인 배려의 산물이 아니라 내장의 오물을 씻어내기 위한 치밀한 음모에서 나온 것임은 말하나 마나이다.

조리 도중 미식가들은 거위가 졸지에 죽어버리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찬물 스폰지로 계속 닦아준다. 거위의 몸통이 노릇하니 구워지고 거위의 정신이 혼미해지는 바로 그 시점, 만찬은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 살점이 뜯길 때마다 거위는 비명을 지르며, 비명이 하늘을 찌를수록 식사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진다. 마지막 한 점을 입에 넣을 때까지 거위가 살아 있어야 게스트들은 비로소 호스트의 미식에 대한 안목과 기술을 칭송한다.

따지고 보면 이처럼 끔찍한 거위 요리도 “인간은 잡식성이기 때문에 다양한 맛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고, 그러다 보니 늘 새로운 음식에 도전한다.… 미각 때문에 인간은 도덕에 무감각해지기 쉽고, 공포를 유쾌하게 생각하기도 한다”라는 다이안 에커만의 설명에 비추어 이해하지 못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더욱이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도 인간의 미각이 ‘맛으로 음식을 먹는 단계’에서 ‘진귀한 식재료나 조리 방법으로 음식을 먹는 단계’, ‘식재료를 학대하여 음식을 먹는 단계’로 발달한다고 덩달아 주장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참한 심정이 수그러들지는 않는다.

현대는 대중 미식의 시대이며, 현대인은 누구나 호모 가스트로노미아(미식추구인=식도락가)다. 그러나 미식에 대한 욕망이 지나쳐 수심(獸心)과 마성(魔性)이 무시로 드러나고 세상에 민폐를 끼치는 일이 일상화해서는 참으로 곤란할 것이다. 과도한 미식 추구로 말미암아 ‘순간기억상실증(깜박깜박 증후군)’이라는 희귀한 질병과 비만증이 극성이라는 소식을 전하며 무참한 얘기를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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