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정치력 결손이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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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5.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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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사람들이 대통령의 정치적 폐쇄성 안에 군과 정부와 정치를 가두어두려는 것은 대통령을 보필하는 길이 아니라 대통령의 정치력 결손을 극대화할 뿐이다.”
총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의 용인(用人) 정책과 관련한 골품(骨品) 논란이 확산되어가고 있다. 이는 국회 행정위의 국정감사 자리에서 큰 정치적 파란을 불러일으킬 전망인데, 그 파란의 핵심부에 대통령의 출신 고등학교 인맥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민망하고도 수치스럽다.

민주적 원칙과 절차에 따라 집권하고 나서도, 김영삼 대통령과 그의 집권당 및 정부가 정치적으로 갖추지 못했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정치 권력의 구성과 정책 결정에서의 공적 개방성과 국민적 보편성이었다. 정권의 구성과 정책의 운영은 여전히 지역과 계보의 협소한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공적 개방성 결여는 대통령의 가장 안타까운 정치적 결손으로 남아 있으며, 대통령의 이같은 정치적 결손은 경쟁력을 통한 세계화가 요구되는 시대에 국민적 역량의 집결을 저해하는 중대한 폐해로 작용해 왔다.

그리고 대통령의 정권 창출에 헌신했던 ‘대통령의 사람들’은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갖추지 못한 불구의 측면을 살피고 보완함으로써 정권의 개방성과 정책의 보편성을 완성해 나가기는커녕, 그와는 반대로 대통령의 정치적 결손의 영역 안에 둥지를 틀고 그 안에 서식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치적 안녕과 이득을 추구해 왔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대통령의 사람들은 일제히 부산 지역의 지구당 조직책을 향해 정치적 돌격을 시작했다. 대통령의 사람들이 정권의 개방성 확립을 통한 국가 경영의 길을 방기하고 대통령의 고토 안에 안주하기를 고집하는 한, 부산·경남은 더 이상 정권의 성지(聖地)가 아니라 대통령의 환부일 뿐이다. 대통령과 집권당의 인적·지역적 폐쇄성은 야당의 폐쇄성과 대응관계라는 정략 구도 속에서조차 용납되기 어렵다. 집권당은 야당과 달리 국가 경영 전체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용인과 관련해 한 고등학교의 이름이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는 사태는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폐쇄성을 타파하고 극복함으로써 현 집권당에 의한 차기 정권 승계를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그 폐쇄성을 심화시킴으로써 정권을 보전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국민적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기에 대통령의 사람들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겹칠 때 용인의 폐쇄성은 행정부 고위직뿐 아니라 집권당의 일선 조직 개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그 폐해가 퍼질 것이 자명하다.

정권 자체의 우생학적 퇴화 가속시킬 수도

국민의 일상적인 삶과 정치 권력의 작용이 예각으로 부딪치는 행정 부서와 사법 기관의 수뇌부를 대통령의 생물학적 성장 환경의 권역에 속하는 일종의 혈육으로 구성한다는 것은, 정권 자체의 우생학적 퇴화를 가속시키지나 않을는지 우려된다. 그들이 대통령과 제1차 집단적 혈연 의식을 공유함으로써 상의하달의 능률과 상명하복의 충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하더라도, 조직의 폐쇄성과 혈연 의식 안에서 발현되는 충성심이란 법제의 합리성을 제고하기가 불가능하고, 또 그 충성 자체로서 흔히 눈먼 것이기가 십상이다.

대통령이 군 수뇌부를 지연 중심으로 재편성한 용인의 결과는, 하나회의 특권 군인들을 숙정함으로써 군 지휘 계통의 위엄을 회복했던 집권 초기 쾌거의 의미를 현저히 퇴색시키고 있다. 대통령과 지연을 공유하고 있는 그 고위 장성들이 하나회처럼 군 지휘 계통을 유린하는 특권 계층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 용인에서 소외된 수많은 장교들의 박탈감은 결국 강력한 통수권 구축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헌법에 따르면, 김영삼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수많은 가변 요인과 예측 불가능성으로 들끓는 정치권에서, 이 점 하나 만큼은 헌법이 그 확실성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대통령의 지연에 따라 편성된 군 수뇌부는 차기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과 질곡이 될 수도 있으며, 이러한 사태는 국가 간성으로서의 군의 위상을 위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의 사람들이 대통령의 정치적 폐쇄성 안에 군과 정부와 정치를 가두어두려는 것은 대통령을 보필하는 길이 아니라 대통령의 정치력 결손을 극대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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