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이웃의 고통을 돌볼 때다
  • <시사저널>편집장 ()
  • 승인 1998.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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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위에는 노숙자뿐만 아니라, 거리에 내몰리지는 않았지만 가난의 고통에 빠져 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번 한가위는 헐벗은 그들에게 작은 사랑이나마 나누어주눈 공생의 명절이 되어야 할 것이다"
러시아의 오늘을 담은 외신 풍경 한 토막이 가슴을 쓰리게 한다. 혈액원 앞에 어지럽게 늘어선 한 무리의 사람들. 웃음기라고는 전혀 없는 얼굴로 허공 어딘가를 망연히 바라보고 있다. 이들은 당장 가족의 끼니를 때울 최소한의 먹거리와 혹독한 겨울을 견디어 낼 옷가지를 장만하기 위해 피를 팔러 나온 사람들이다. 흔히 매혈꾼이라면, 도시의 부랑자나 극빈층 청년을 연상하기 쉽지만 이 사람들은 공무원 . 교사 . 장교 등 어엿한 신분의 시민들이다. 대열에는 젊은 사관생도 끼어 있고 30대 안팎 여인들도 드문드문 섞여 있다.

국제통화기금의 긴급 지원을 받고도 끝내 국가 부도의 구렁텅이에 빠져 버린 러시아가 오늘 어떻게 신음하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난 장면이다. 소련 붕괴 후 구미식 신흥 중산층이 태동하기까지 7년 공든 탑이 무너져 러시아 중산층이 파산지경에 내몰렸다면, 우리는 30년 공든 탑이 무너진 것이라고 할 수있다. 집을 잃고 길거리에서 새우잠을 자는 노숙자들, 가족이 해체되어 오갈 데 없는 아이들과 노인들, 점심을 싸가지 못하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고,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일가족이 생목숨을 끊는 '매혈사회'의 비극은 시작된 지 오래다. 몇년만 더 허리띠를 조르고 열심히 일하면 자기 이름으로 등기된 아담한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꿈, 자신이 땀 흘려 일한 대가로 아이들을 구김살 없이 자라게 하고 연로한 부모님을 편안히 모실 수 있다는 중산층 가장의 긍지를 송두리째 잃어버린 이들이 공원과 지하도마다 그들먹하다.

비록 급식 행렬에 끼어 한끼 식사를 얻어먹고 한뎃잠으로 근근이 생목숨을 이어가고 있지만, 국제통화기금 체제 이후 급속히 늘어난 우리 사회의 노숙자들은 결코 부랑인이 아니다. 공장에 다니다가 공장이 부도나서,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다가 가게가 거덜 나서, 빚보증을 잘못 서서 집을 날린 사람들이다. 경제가 이 꼴로 망가지지 않았다면, 각자의 생업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우리들의 이웃이요, 한 동네 주민이다. 다만 죄가 있다면, 국제통화기금 한파를 남보다 앞줄에서 맞은 죄밖에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실업 노숙자를 부랑인 취급해서는 안된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이들을 구제 불능의 부랑인으로 여겨 백안시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의 베이징이나 상하이와 같은 대도시에는 정처없이 떠돌며 구걸로 연명하는 맹류집단이 2천만명이나 된다. 대부분 내륙 출신들로 도시를 동경해 무작정 탈향한 이농민들이다. 도시 생활에 적응할 능력도 없고 일하고자 하는 의욕도 없어 결국 부랑인으로 전락하고 마는 맹류와, 우리의 실직 . 실업 노숙자를 같은 성격의 집단으로 규정해서는 안된다.

물론 우리의 노숙자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일거리를 주어 그들이 스스로 일어서 해체된 가정을 복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다. 그러나 몇년 몇달이 더 걸려야 끝이 보이지 모를 깜깜한 불황의 터널에서 이들에게 최저 생활이 가능한 생계비 수준의 임금이라도 확실히 보장되는 일자리가 넉넉할 수 없다. 노숙자 개인의 힘으로 질곡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국면이라는 말이다.

노숙자들뿐만이 아니다. 아직 거리에 내몰리지 않았을 뿐 노숙자와 다름없이 가난의 고통에 빠져 있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달동네의 셋방에서, 폐허화한 공단 변두리에서, 수해가 휩쓸고 간 마을에서, 크고 작은 보호 시설에서 굶주리고 헐벗은 이웃들의 슬픔이 깊어가고 있다.

한가위가 다가오고 있다. 멀리 흩어진 가족이 한데 모여 차례를 올리고, 산산한 세월을 어렵게 살아가는 서로를 위로하게 될 것이다. 가족의 안휘, 가족의 건강, 가족의 고통을 걱정하고 안쓰럽게 여기듯이 바로 우리 곁에서 굶주리고 헐벗어 신음하는 이웃이라는 가족에게 작은 사람이나마 나누어 주는 공생의 명절이기를 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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