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 논란과 ‘정치환장증’
  •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 ()
  • 승인 2004.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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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면서 국가 백년 대계를 좌우할 중차대한 결정들이 권력 장악이라는 정파적 이익을 위해 악용되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목하 뜨겁게 벌어지고 있는 행정수도 이전 논란을 보면서 지난 3월의 대통령 탄핵 논란을 떠올린다. 어쩌면 이다지도 ‘국화빵’인가 하는 생각에서다. 형식적 측면에서 보자면 이른바 대의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 간의 대립이다. 한 가지 다른 게 있기는 하다. 탄핵 당시 의회 결정에 대한 절대 존중을 외쳤던 세력이 지금은 국민의 뜻을 묻자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반면, 국민 의사 배반을 부르짖었던 세력이 이제 와서는 ‘국회에서 해결하라’고 뻗대고 있는 것이다.

다 알다시피 야3당에 의한 대통령 탄핵소추는 적어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는 것이었다. 즉 형식적으로는 합법적 정치 행위였다. 그러나 과정의 졸속함이라든가 정치적 의도라는 측면에서는, 즉 내용적으로는 아주 잘못된 결정이었다. 당연히 국민들은 거세게 저항했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을 무산시킨 것은 거리에서의 국민들의 저항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이었다. 형식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내용적으로는 국민들의 탄핵 반대 시위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게 분명하다.

어쨌거나 대통령 탄핵 사태를 거치면서 우리 민주주의가 한 단계 성숙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법치주의라는 민주주의의 형식적 틀을 온전히 유지하면서 ‘국민 의사 존중’이라는 민주주의의 본질적 내용을 지켜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한나라당은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대해 국민투표를 요구할 자격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은연중 의회 권력의 최고성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의회 다수당이던 시절, 국민투표 조항을 삽입하자는 전문가들의 조언마저 무시한 채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마당에 이제 와서 무슨 명분으로 국민투표를 요구한단 말인가. 국민 의사를 무시한 채 대통령 탄핵을 강행했던 이들이 이제 와서 국민 의사 운운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더니 노무현 대통령과 집권 열린우리당의 태도도 마땅치 않다. 탄핵 때는 그토록 국민 의사를 부르짖더니 이제 와서는 모든 것을 국회 안에서 해결하잔다. ‘이젠 우리가 의회 다수당이니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 엿보인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국민투표를 요할 만큼 중대한 문제냐 하는 점에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다. 현 집권 세력처럼 국회의 결정만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진정 참여정부를 지향한다면 국민투표 실시해야

그러나 필자는 다르게 생각한다. 국민투표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최소한의 국민적 논의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적지 않은, 강력한 반대 여론도 있다. 무엇보다 입법·행정·사법부 전체를 이전하는, 이른바 천도는 결코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공약이니까, 국회가 결정했으니까 실행에 옮길 뿐이라는 여당의 주장은 물론 형식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현정부가 진정 참여정부를 지향한다면 국민의 뜻을 묻는 게 옳다. 두려울 게 무엇이 있는가.

하지만 이번 논란을 지켜보면서 필자가 가장 우려한 것은 다른 데 있다. 국가 백년 대계를 죄우할 중차대한 결정들이 권력 장악이라는 정파적 이익을 위해 악용되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이다. 지금 집권 여당은 동북아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수도권 인구 분산을 위해, 행정수도 이전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대선 당시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다른 무엇보다도 충청권 표를 겨냥한 것이라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지난해 특별법 제정 당시 ‘충청표를 의식해 대놓고 반대할 수 없었다’는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발언은 이 문제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 아닐까. 국민 전체의 이익보다는 자기 정파에 표가 될까, 안 될까만으로 모든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 말이다. 일러 ‘정치환장증’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 정치환장증이 대한민국을 망칠지도 모른다.

이러한 우려가 오해이기를 진정 바란다. 그 오해를 풀기 위해서라도 노무현 정부는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 진정한 참여정부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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