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그물’로 깨끗한 인물 가려내라
  • <시사저널> 편집장 ()
  • 승인 1998.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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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청문회가 열리면 근거없는 음해로 살아남을 사람이 없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잘못된 인사가 국민에게 안겨줄 피해를 생각하면 옹색하기 짝이 없다.”
새정부의 고위 공직을 둘러싸고 자천타천의 하마평이 무성하다. 김대중 차기 대통령은 2월 초 청와대 수석 비서관 내정자 발표에 이어 2월 중순쯤 정부 각료를 결정하기 위해 구체적인 인선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성, 도덕성, 개혁성, 국민 대화합, 지역 안배 등 기준에 따라 몇 배수로 압축된 인사 대상을 놓고 검증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 검증에는 총무처와 청와대로부터 넘겨받은 존안 자료와 사정 당국이 작성한 유력 인사 파일이 기초 잣대로 위력을 발휘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존안 자료나 인사 파일은 결코 사람의 어떠한 허물도 빠뜨리지 않는다는 ‘하늘의 그물’이 아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첫 조각을 발표했던 93년 2월을 돌이켜보면, 이 기초 자료에 의거한 인선이 얼마나 부실 위험을 안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서울시장에 임명된 김상철씨는 개발제한구역내 자택 무단 증축 사실이 밝혀져 임명된 지 7일 만에 물러났고, 박희태 법무부장관은 딸의 대학 특례 입학 비리로, 박양실 보사부장관은 아들의 호화 결혼식과 위장 전입을 통한 절대 농지 구입 문제로, 허재영 건설부장관도 건설부 기획관리실장 재직시 비위가 문제되어 장관에 임명된 지 열흘 만에 경질되었다. 신임 각료들이 받은 임명장에 채 잉크가 마르기 전에 신정부의 체통과 대통령의 국정 운영 능력에 먹칠을 하는 사태가 발생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후의 인사에서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불명예 퇴진한 장관과 재임 몇 달을 못채우고 물러난 장관이 부지기수였다. 지난 5년 동안 정부 24개 부처 가운데 장관 평균 재임 기간이 1년이 넘는 곳이 6곳에 불과했다는 통계는, 얼마나 인사 검증이 부실하게 이루어졌고 그 후유증이 심각했는지를 실증한다. ‘인사가 만사’이며 ‘일하는 정부를 만들기 위해 재임중 장·차관을 자주 바꾸지 않겠다’던 김영삼 대통령의 약속은 검증 부실의 첫 조각에서부터 무너져내렸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지난 대선 기간에 김대중 후보는 고위 공직자 인사에 관해 중요한 공약을 밝힌 바 있다. ‘국회에서 선출되거나 동의 절차를 거치는 고위직과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기관장에 대해 인사 청문회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공약대로라면 전자는 국무총리·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감사원장·중앙선관위원장·대법관 등이고, 장·차관, 검찰총장·경찰청장·국세청장 등은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이보다 앞서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96년 말에 인사 청문회를 도입하기 위한 관계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고, 당시 집권 여당이던 신한국당은 시기상조론을 펴며 이에 반대했다.

여야 뒤바뀌자 공약도 바뀌는가

그러나 대선 결과 여야가 바뀌자 국민회의와 자민련 일각에서는 인사 청문회 유보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한나라당은 새삼 목소리를 높이며 이의 법제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처럼 대선을 전후해 정반대로 바뀐 여야의 논리를 보는 국민의 눈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인사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위해 도입해야 하는 청문회를 놓고 정략이 앞서고 있다는 시각이다. 국민은 직무에 정통한 테크너크랫이나 화려한 경력의 명망가라 하더라도 부패와 비리에 연루된 인사라면 마땅히 청문회를 통해 걸러지기를 바라고 있다. 이는 사상 초유의 정권 교체를 실현한 국민의 당연한 요구이다.

인사 청문회가 열리면 근거 없는 음해와 깎아내리기 공방 등으로 살아 남을 자가 없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다. 또 지루한 청문회가 자칫 새 정부 출범 일정에 발목을 거는 상황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청문회 유보 논리는 지난 정권에서 보듯이 잘못된 인사로 말미암아 국가와 국민이 입을 해악을 생각하면 옹색하기 짝이 없다. 정치인 스스로 구태의연한 정치 문화의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채 새 역사에 편입하겠다는 퇴행적인 발상일 뿐이다.

인사 청문회의 취지는 고위 공직 예정자에 대하여 도덕성과 공직 담당 능력에 특별한 결격 사유가 있는지를 사전 검증하는 데 있다. 이러한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국회는 하루빨리 적절한 절차를 마련하고, 청문 대상의 범위를 최대한 넓혀야 할 것이다. 국무총리는 물론 장·차관 급까지 떳떳하게 검증받은 인사가 국정을 맡는 것이 국민 통합은 물론 차기 정권의 정통성을 높이는 데도 유익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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