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과 ''오, 스바라시이''
  • 진중권 (문화 평론가) ()
  • 승인 1999.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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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을 마셔도 예술, 밥을 먹어도 일본인은 그야말로 ‘눈으로 먹는다’. 국화와 칼, 꽃과 불, 긍정과 부정, 이 모두가 분리 불가능하게 결합된 하나의 유기적 전체로서 일본 사회는 미적이다.”
나는 일본에 대해 잘 모른다. 내가 잠깐의 접촉을 통해 받은 인상은 일본은 ‘미학적’이라는 것이다. 꽃을 꺾어 화병에 꽂아도 예술(華道), 차 한 잔을 마셔도 예술(茶道), 밥을 먹어도 일본인은 그야말로 ‘눈으로 먹는다’. 웬만한 장인은 모두 예술가 취급을 받고, 잘 만든 물건을 대하는 일본인들은 모두 비평가와 같다는 느낌이었다. ‘오, 스바라시이(훌륭하다)….’

‘장이’를 ‘예술가’로 평가해 주는 문화는 서양에서는 근대 이후에나 나타난다. 하지만 일본의 미학적 문화는 서양의 영향을 받은 것 같지 않다.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조선 도공들은 이미 그 당시에 ‘예술가’ 대접을 받았다니까. 어쨌든 이런 유구한 미학적 전통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사회의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보며, 나는 골목을 돌 때마다 번번이 감탄을 터뜨려야 했다. ‘오, 스바라시이….’

그런데 이렇게 모든 것이 예술이 되면 가끔 이런 일이 생긴다. 가령 영화 <감각의 제국>. 유곽의 한 게이샤가 포주와 사랑에 빠져 결국 그를 살해한 후 성기를 자른다는 얘기인데, 이는 30년대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 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어느 사회에나 있을 이 변태 성욕자의 행위가 아니라, 그 행위를 대하는 대중의 태도다. 당시 일본인들은 이 끔찍한 쾌락 살인을 일종의 예술로 간주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사다’라는 이름의 이 여인은 졸지에 대중의 스타가 되었다고 한다. ‘세상에 얼마나 사랑했으면. 오, 스바라시이….’

유미주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국화와 칼’

우연히 영화 <미시마 유키오>를 보았다. 그를 단죄하지 않고 그를 미치게 한 사회 심리적 요인들을 추적하는 과정이 마음에 들었다. 이 영화를 보며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그는 왜 제 배를 갈랐을까? 내 대답은 이거다. ‘그는 삶을 예술 작품으로 보고, 인생을 연극처럼 연출하려 했다. 이 작품 속에서 하라키리(割腹)는 화룡 점정, 즉 삶을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사건이었다.’ 죽음으로 완성하는 예술. 얼마나 미적인가. ‘오, 스바라시이….’

일본 문화에 문호가 개방되었다. 최초의 작품은 기타노 다케시의 <하나비>(불꽃놀이)였다. 아름다운 ‘하나’(꽃)와 잔혹한 ‘비’(불)’, ‘국화’와 ‘칼’의 이 모순적 결합. 결국 이 영화도 주인공인 기타노가 머리에 권총을 대어 작품을 완성하는 것으로 끝난다. 영화가 시작될 때부터 나는 그럴 것이라고 짐작했다. 다른 영화에서도 그는 머리에 권총을 쏘아 차창에 ‘피’의 ‘꽃’을 그리며 작품을 완결하니까. ‘오, 스바라시이….’

이 유미주의. 미(美)는 모든 가치에 앞서고 모든 것을 용서한다. 거기에 봉건적인 숭고의 미학. 미는 도덕의 한계, 이성의 한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극단성에 있다. ‘국화’와 ‘칼’은 모순이 아니다. 유미주의 안에서 둘은 하나가 된다. 이 안에서 미와 잔혹함, 예술과 범죄는 하나가 되고, 이때 관객의 입에서는 탄성이 터진다. ‘오, 스바라시이….’

일본의 어느 절에는 진짜 등신불이 있다. 단백질과 지방 섭취를 삼가면, 저절로 산 사람이 미라가 된단다. 이 식이 요법을 통해 그 승려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 부처, 즉 신이 되었던 것이다. 앞에서 본 예술적 극단이 정치성을 띠면서 종교적 극단으로 승화하는 곳에 야스쿠니 신사가 있다. 즉 국가를 위해 장렬하게 죽은 낭만주의적 영웅들은 죽어서 ‘신’이 된다는 것이다. ‘오 스바라시이….’

실제로 세스나 비행기로 어느 정치가의 집에 가미카제 공격을 가한 어느 포르노 배우의 죽음에, 미시마 유키오는 ‘그는 자신의 삶을 예술적으로 완성했노라’고 예술적 비평을 가했다. 절규하는 정신대 할머니의 증언을 듣는 일본인들의 태도 역시 비평가의 그것에 가깝다. ‘절제의 미가 없다.’ 반면에 똑같은 체험을 차분한 어조로 들려 준 네덜란드 정신대 여인의 절제된 연기에는 감동을 먹었던지 후한 평을 해 주었다. ‘오, 스바라시이….’

일본은 미적이다. 이것이 ‘일본적 감성’의 한 측면을 보고 내가 받은 인상이다. 이를 문화경계론으로 오해하지 말라. 나는 일본 문화에 대한 개방이 우리 사회에 악역향을 준다는 미신을 믿지도 않는다. 국화와 칼. 꽃과 불. 긍정과 부정. 이 모두가 분리 불가능하게 결합된 하나의 유기적 전체로서 일본 사회는 미적이다. 그리고 이 거대한 예술 작품에 붙이는 내 비평 역시 직설과 반어, 이 둘이 뗄 수 없이 들러붙은 하나의 유기적 전체로서 ‘오, 스바라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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