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 교실’을 만들자
  • 許雲那 객원편집위원 (한양대 교수·교육공학) ()
  • 승인 1995.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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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막으려면 공공 데이터베이스와 교육 네트워크 같은 인프라 구축 사업을 국가가 주도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 14일 이홍구 국무총리 주재로 초고속정보화추진위원회를 열고 오는 2015년까지 약 45조원을 들여 전국적으로 정보초고속도로를 구축한다는 종합추진계획을 확정 발표하였다. 이 계획에 따르면, 광케이블이 1단계인 97년까지 12개 주요 도시와 68개 중소 도시까지, 2단계인 2002년까지는 아파트 등 인구 밀집 지역까지, 3단계가 마무리되는 2015년에는 일반 가정까지 공급된다. 선진 각국에서는 이 분야에서 선두를 차지하고자 민·관이 앞다투어 투자하면서 치열한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이번 발표는 정보 시대에 진입하여 선진국 대열에 서고자 하는 한국으로서는 뒤늦은 조처라 하겠다.

21세기에 한 인간으로서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자면 컴퓨터·통신 관련 지식과 활용 기술이 과거의 문자 해독 능력 이상으로 필수가 된다. 이와 같은 21세기의 필수 기술 및 지식을 재빨리 습득하지 못하는 사람은 정보 사회에서 낙오하고 큰 사회적 부담을 안게 된다. 따라서 2015년까지 계획대로 정보초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정보 시대에서 낙오하는 이 없이 모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보 관련 전문 인력 양성과 21세기에 필요한 기초 기술 및 지식을 미리미리 가르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정보 시대에 맞는 비전과 실천 전략 필요

정부는 세계화를 21세기 진입의 기본 전략으로 삼고, 그 중요한 과제로 교육을 꼽고 있다. 그러나 여러 기구에서 부르짖고 있는 세계화 교육은 아직 말장난에 그치고, 그 어디에도 정보고속도로 시대에 대비한 세계화 교육의 구체적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하원의장 깅리치 의원은 컴퓨터 네트워크를 즐겨 사용하면서, 정보초고속도로 건설과 이의 적극적인 활용이 21세기의 미국을 더욱 강하게 할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는 ‘가상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Virtual America)’라는 회의를 열고 ‘지식시대의 마그나 카르타(국민헌장)’를 선포하여 다음과 같이 원대한 비전을 펼쳐 보였다. “사이버 스페이스(Syberspace: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가 전달되고 의사가 소통되는 공간)는 지식의 땅이다. 이 지식의 땅을 탐험하는 것이야말로 문명 세계의 가장 진실하고 숭고한 소망이다. 모든 국민의 손에 발전된 컴퓨터의 힘을 쥐어줌으로써 삶의 질을 높여 주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한국 정치가들 중에 이런 비전을 제시하리 만큼 미래지향적인 인물이 몇명이나 될까 하고 새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마침 정보초고속도로 구축 계획이 확정되면서 정보통신 고등학교를 설립하고 대학에 정보통신 관련 학과를 신설토록 지원한다는 인력 확보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 기회에 우리도 정보 시대에 맞는 교육 비전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비전 제시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이 말했듯이 미래를 창출하는 것은 의도가 아니라 구체적 설계이다. 일단 비전이 분명해지면 이를 모든 이와 공유하고 구체적 추진 전략을 짜나가야 한다. 미국에서는 80년대부터 은하수 교실(Galaxy Classroom)이니 글로벌 네트니 하는, 컴퓨터 네트워크·위성·멀티 미디어를 이용한 각종 초·중등학교 프로젝트가 수천여 학교를 연결해 그 교육적 효과를 활발히 실험하고 있다.

부처 이기주의 버리고 힘 합쳐야

가령 휴즈 항공회사가 89년에 투자하여 시작된 은하수 교실 같은 프로젝트는, 유치원에서 국민학교에 이르는 어린이들의 교육을 삶과 직결된 질 높고 재미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커뮤니케이션 위성과 텔레비전·팩스와 같은 상호 작용이 가능한 테크놀로지의 위력을 최대한 이용하였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정보 사회에서 낙오되기 쉽고, 21세기의 사회적 부담이 될 요인이 많은 ‘저소득층’ 학교를 겨냥하였다. 우선 텔레비전용 프로그램을 위성을 통해 아이들에게 보내주고 아이들은 서로 다른 학교 학생들과 팩스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교환한다. 이 프로젝트는 이미 94년 중간 검사를 끝내고 2000년까지 2만여 학교를 연결하여 천만명 이상의 학생을 참여하게 하는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한편 여러 정보공학자들이 경고하는 바와 같이 극심한 정보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지 않게 하려면 모든 국민이 정보초고속도로에 쉽게 접근하여 질 높은 정보를 제공 받을 수 있도록 공공 데이터 베이스와 교육 네트워크 같은 교육 정보 인프라 구축 사업을 국가가 주도해야 한다. 전국 어느 도시에 있건 모든 학교, 모든 가정, 모든 개인이 질 높은 교육용 자료를 싼값에 접할 수 있는 은하수 학교를 세우자.

국민 모두를 21세기에 필요한 능력으로 무장시키는 일이 국가 경쟁력의 첫째 요소인 만큼, 이 일은 교육부와 정보통신부, 경제 부처 등이 부처 이기주의를 버리고 힘을 합쳐도 부족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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