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유쾌한 ‘시골 찬가’
  • 강철주 편집위원 (kangc@sisapress.com)
  • 승인 2004.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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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메일 지음 <나의 프로방스>
고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배운 윌리엄 예이츠의 <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를, 비록 앞부분만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외울 줄 안다. ‘나 일어나 이제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거기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 짓고/아홉 이랑 콩밭과 꿀벌통 하나/벌들이 윙윙대는 숲속에서 나 혼자 살으리.’ 어린 마음에도 이니스프리의 호도가 언젠가는 꼭 돌아가야 할 마음의 이상향쯤으로 각인되었던 것 같다. 그때 이후 이니스프리의 호도는 도연명의 전원이나 소로의 월든 숲 등으로 다양하게 ‘변신’할 수 있는, 결코 잊히지 않는 보통 명사가 되었다.

 
피터 메일의 <나의 프로방스>(강주헌 옮김, 효형출판 펴냄)를 읽으면 햇볕 쨍쨍 내리쬐는 지중해 연안의 남불(南佛) 지역 프로방스가 이니스프리의 호도가 된다. 꽤 잘 나가는 영국인 카피라이터였던 저자 부부가 1년 동안 프로방스에서 지낸 경험을 담은 이 책은 거의 프로방스 ‘찬가’ 수준이다. 저자는 자기가 ‘여행객’이었을 때부터 프로방스 마니아였다고 밝힌다. 몸은 런던에 있어도 마음은 프로방스를 꿈꾸었다. ‘찌는 듯한 더위와 따가운 햇살이 못견디게 그리울 때면 관광객으로 이삼 주 동안 프로방스를 찾고는 했다. 그리고 떠날 때마다 콧등이 벗겨진 채 아쉬워하며 언젠가 여기에서 살리라고 다짐했다.’

<나의 프로방스>는 저자 부부가 그 다짐을 어떻게 실천에 옮겼는가를 보여주는 유쾌한 기록이다. 그들은 집을 샀고 프랑스어를 배웠다. 주변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 다음 두 마리 개를 안고 배에 올랐으며 마침내 ‘프로방스의 이방인’이 되어 꿈으로만 간직했던 전원 생활을 만끽했다.

이웃들은 때로 별나기도 했지만 대체로 다정했고 식탁은 늘 풍성했다. 칸이나 니스 같은 세계적 휴양지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일상의 재미’를 즐기며 기꺼워했다. 굴뚝에서 나는 나무 타는 연기에서 ‘삶의 가장 소박한 냄새’를 맡았고, 시골 마을의 대단한 스포츠 행사인 ‘염소 경주 대회’는 요절복통이었다. 지하실의 술 창고를 채우려고 양조업자를 찾아나섰다가 대낮부터 포도주 시음에 취해버리는가 하면, 와인 애호가 모임에서는 오륙십 쌍이 만취한 상태에서 탱고를 추는 ‘장관’이 펼쳐졌다.

휴가철이 와도 딱히 갈 데가 없는 서글픈 인생들한테는 이 책에 묘사된 프로방스 생활이 어쩌면 비현실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프로방스에서는 ‘날마다 좋은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언가에 도취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그 행복을 훔쳐보며 부러워하는 것도 썩 즐거운 독후감이 된다. 1996년 국내에서 처음 번역되었지만, 이번에 나온 것과는 역자와 출판사가 모두 다르다.

원제는 ‘프로방스에서의 1년’인데, 저자의 후속작 제목이 재미있다. ‘언제나 프로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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