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향'이 상팔자 되어서야
  • 김상익 <시사저널> 편집장 (kim@e-sisa.co.kr)
  • 승인 2001.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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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설 연휴가 예년보다 길다. 공식으로야1월23일부터 25일까지 사흘이지만월요일인 22일에 휴가를 낸다면 무려 닷새나 쉬게 된다. 토요일 격주 휴무제를 실시하는직장이라면 휴가를 하루 더 즐길수 있을지 모른다. 매년 귀성 인파로 몸살을 앓는 전국의도로 사정이 다소 나아지리라고 성급한 기대도 해본다. 나는 부친이 이북에서 넘어왔기 때문에 실향민 2세인 셈인데, 하필 정착한곳이 수도권의 제법 큰 도시여서 고향이라는 개념이애당초 없다. 고향이라면 역시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시가 아니라 분뇨 냄새가 풍기고 산과 들이 펼쳐져 있는 농촌 마을아니겠는가. 그런 탓에 나는 어릴 적에는 여름 방학 때마다 시골 할머니 집으로 놀러가는 친구들이 늘 부러웠다. 결혼을 한 뒤 몇 번인가 귀성객 틈에끼어 처가를 방문할 기회가있었다. 어린것 둘까지 포함해 네 식구가 서너 시간이면충분한 거리를 열두 시간 넘게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비좁은 승용차 안에서 부대끼다 보니, 귀성길이 고생길이라는 말을 실감할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기를 쓰고 고생해서 처가식구들을 만나면 올라올 때 또 한 차례 겪어야할 고생보다는 오랜만의 만남이 더 반가우니, 그것이 고향 가는 맛이려니 한다.


지역적 편견이 확대 재생산되는 고향 술자리

그런데 제사 문화가거의 사라지다시피한 요즘이고 보면, 그 많은사람이 명절 때 고향을 찾는 것이 차례를 지내거나 성묘를 하기 위한 것만은 아닌 듯싶다. 그보다는 흩어진 식구들이 오랜만에 만나, 피붙이만이 공유할 수 있는 정을 나누고살아가는 이야기를주고받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향에서는, 타지에서 타관 사람들과 허물없이 주고받을 수 없는 이야기도스스럼없이 나오게 마련이다. 나의 결코 많지 않은'귀성 체험'으로 보더라도, 내 지역이라는울타리 안에서 공통된 정서와 문제 의식을공유하며 남의 눈치 안 보고 핏대를 세워 가며 토론하는 일은 고스톱 패를 돌리는 것보다 자연스럽다.

그런데, 일가 친척이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주고받는 이야기가 상당 부분 정치에대한 불만(또는 만족)을 밑자락에 깔고 있기 십상이다. 문제는 그 자리가 한국에서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지역적 편견에 대한 확신을심어주고 확대 재생산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시사저널>이 이번에설 합병호를내면서 커버 스토리로 다룬,지역 감정에대한 설문 조사 결과는 나의 그같은 우려를 더욱짙게 만든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호남 사람에게 갖는 반감은, 10명 가운데2명이 그들을 사귀고 싶지 않고, 자녀를 결혼시키고싶지도 않으며, 심지어 동업도 하지않겠다는 것으로나타났다. 설문 조사에 응하면서 공개적으로 말한 사람의 수가 그러하니 동류 집단이모인 곳에서는 오죽할까.

이 조사에서 호남 사람들이 다른지역에 갖는 감정은 상대적으로매우 너그러운것으로 나타났지만, 그것을 100%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매를 맞으면 화나는 것이 상례인데, 분위기 파악도 못하는 바보 천치가아닌 다음에야 적개심이나 보복 심리가 없을 리 만무하다. 처지에 따라 그나마 할말을 하는쪽과 할말도 못하는 쪽이 있다는 말이다.

인구 천만이 넘는대도시 서울에서저마다 충청도로 강원도로 전라도로 경상도로갈라져 갔던 귀성 차량들은 며칠 지나면 경부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에서 또다시 장엄하게합쳐질 것이다. 지방색의 용광로와도같은 서울을 향해서.

고향에서라면 아무리 더러운 욕이라도 좋다. 없는 데서는 나랏님도욕한다는데, 남의 허물을 들추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제 눈의들보를 보지 못해서가아니라, 그럼으로써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면,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왔을 때 욕의 열정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으리라는 순진한 논리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내가 지역적 독립을 유지하고 있다 해도 그것을 기대할 만큼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일까? 때로 고향이 없다는 사실이 행복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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