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문건' 반응들에 대한 반문
  • 서명숙 <시사저널> 정치경제부장 (sms@e-sisa.co.kr)
  • 승인 2001.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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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이 언론문건을 보도한 이유는 언론사들의 탈법·불법 경영실태와 정권이 때늦게 세무조사에 나선 의도와 배경을 양비론적 시각에서 접근해야만 '포괄적인 진실'에 다가설 수 있다고 판단해서였다. 이제 더 이상 편 가르기식 사고 방식에서 우리를 재판하지 말기 바란다.

많은 사람이 우리에게 물었다."대관절 당신들의 입장은 무엇인가" "시사저널은 누구 편인가" "무슨 의도로 이런 문건을 보도했는가"라고 말이다. <시사저널>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 작금의 사태에 대한 우려, 역풍의 단서를 제공한 <시사저널>을 향한 비난이 깔린 질문들이다. 우리의 대답은 간단하다. <여권의 언론 문건을 보도한 시사저널의 입장>(8쪽 참조)에서 밝혔듯이, 우리가 문건을 보도한 이유는, 언론사들의 탈법·불법 경영 실태와 정권이 때늦게 세무 조사에 나선 의도와 배경을 양비론적 시각에서 접근해야만 '포괄적인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고 판단해서였다.

이제 우리가 되물을 차례다. 그동안 여러 이해 집단들이 이번 문건을 낯 뜨거울 정도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 이용, 폄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서글픔과 분노를 느꼈기에. 그리고 강력한 의문을 품게 되었기에.

우선 '조·중·동'이라고 불리는 거대 언론사들을 향해 묻는다. 당신들이 보인 이례적인 보도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시사저널>은 그 이전에도 사회적 함의가 큰 사건을 여러 차례 보도했다. 1999년 김 훈 중위 의문사 사건을 둘러싼 특종 보도 '판문점 경비대원들의 북한 왕래 사건'과 지난해 '대우그룹 런던 비밀 계좌(BFC)의 실체'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국가 안보나 경제와 관련된 이 의미 있는 기사들은, 그러나 메이저 언론사들로부터 철저하게 무시되거나, 출처도 밝히지 않은 채 인용되거나, 관계 부처가 발표한 기사처럼 다루어졌다.


우리는 '사실과 진실'만을 신봉한다


그런데 바로 그 신문사들이 유독 이번 사안만큼은 대대적으로 인용 보도했을 뿐더러 한 기사 안에서도 여러 차례나 뉴스 출처를 거론하는 친절함을 보였다. 심지어 한 신문사는 '친여 언론과 반여 언론' 대목을 클로즈업해서 문건을 촬영하게 해 달라고 여러 경로로 부탁해 왔다. <한겨레>가 지적했듯이 '언론 문건 사태를 유리하게 편집해 자사에 치명적인 세무 조사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라고밖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는 현상이다.

두 번째 질문 대상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다. 이총재는 우리가 보도한 문건을 최대한 활용하면서'(언론 길들이기) 의혹이 있는 만큼 세무 조사를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법대로'를 외치면서 다른 정치인과 다름을 강조해온 그다. 그런 이총재가 왜 같은 당의 김홍신 의원이나 박근혜 부총재처럼 '여러 의혹을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세무 조사를 철저히 하고 그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못하는가?

기실 이총재야말로 이번 문건에 대해 가장 할 말이 없는 처지다. 얼마 전 폭로된 한나라당의 언론 대책 문건은 이총재의 측근인 핵심 당직자가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개인적인 습작이라고 둘러댔지만, 여권도 마찬가지 변명을 할 수 있다. 더욱이 야당 문건은, 각 매체의 성향을 분석하고 반여(反與) 언론에 대한 정공법적인 대응을 강조한 이번 여권 문건과 달리 언론인 개인의 성향과 뒷조사 필요성까지 언급된, 더욱 '질 나쁜' 언론관이 반영된 것이었다.

우리는 이런 의혹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현정권이 내건 언론 개혁이 그러하듯 이총재가 내건 언론 자유 또한 명분에 불과하며, 결국 우호적인 언론사를 편들고 보호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지막 질문 대상은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이 문건의 진위를 강력히 부인하면서 문건을 게재한 언론 매체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논평을 냈다. 언론사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 터에 언론 문건이 보도되어 더 큰 역풍이 불게 되었으니 책임지라는 볼멘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거꾸로 민주당에 묻고 싶다. 언론 매체가 보도 이후에 전개될 정치적 파장까지 미리 정치적으로 고려해야 하는가를. 정치권에서 친여·반여니, 적대적·비적대적이니 하는 분류가 성행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언론이 그동안 정치적 고려를 담은 보도를 해왔기 때문 아닌가. 정권에 부담스러운 언론 문건을 보도했다고 해서 왜 언론 개혁이나 세무 조사에 반대하는 집단으로 매도되어야 하는가?

우리를 향해 더 이상 어느 편이냐고 묻지 말라. 그리고 당신들이 가진 편가르기 사고 방식으로 우리를 재단하지 말아 달라. 우리가 충성을 바치는 대상이 있다면 독자뿐이다. 또한 우리가 섬기는 것은'사실과 진실'의 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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