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서는 마음
  • 설호정 언론인 ()
  • 승인 2001.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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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두절미하고 김대중 정부에, 민주당에 진정을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보안법·인권법·부패방지법·돈세탁방지법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하는 것이다. 정말 그것이 알고 싶다. 그래야 돌아서도 깨끗이 돌아서고, 기다려도 불안하지 않을 것 아닌가. 요컨대 태도를 분명히하라는 말이다."




내마음이 돌아서고 있는 듯하다. 돌아서면 아마 깊은 배신감을 느낄 테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언론으로부터 한없이 세뇌받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줏대 있게 잘만 했더라면 언론이 뭐라 했건 무슨 결과가 있었을 것 아닌가? 언론 때문에 못했다는 말은 듣기도 싫다. 언론 눈치 보느라고 아무 일도 못했다는 소리나 같으니까.


어디서 들으니까 '장관은 순간이고 우리는 영원하다'는 말이 관료 사회의 잠언이라고 했다. 요컨대 장관도 대통령도 흘러가면 그만인 존재, 개혁 좋아하네, 그런 분위기! 그래서 일이 모두 관료들의 엉덩이 밑에서 뭉개지고 되는 게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런 지긋지긋한 관료들 정신 들게 하는 것도 정권을 움켜쥔 사람, 또는 집단의 능력과 책임이다.


여당이 하는 일을 보아도 복장 터지기는 마찬가지다. 만사 일단 이단옆차기 발길질을 한번 해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야당이 있다는 걸 잘 안다. 그러나 여당 안에서, 또 오월동주로나마 손잡고 있는 자민련 안에서 느닷없이 이단옆차기 하는 사람들은 뭔가? 정당이 하도 민주적이어서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표출되다 보니 어쩌고 둘러대지 말기 바란다. 결과적으로 양비론 되는 거 정말 싫지만, 이꼴저꼴 다 보기 싫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려고 한다.


다양한 이익 집단이 마음먹은 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을 만큼 민주주의가 꽤 신장되었기 때문에 일이 더디 추진되거나 더러 아예 흐지부지된다는 말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쪽으로 이해하려는 희망파도 없지 않다. 의약 분업 사태처럼 가소로운 일까지도.


그러나 얼마 전에 있었던 대우자동차 노조원들에 대한 경찰의 대응을 보고 마음이 얼음같이 식어 버린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부평경찰서 서장이 잘못해서? 물론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부의 자기 규정이 무엇이었기에 경찰이 그런 일을 벌일 생각을 했단 말일까. 제버릇 뭣 못 준다지만, 이 정부가 경찰을 강력히 각심시키는 기능을 했더라면 적어도 광주가 들먹여지는 그런 일 따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총칼이나 깡패 의리가 주무기가 아니라 좋은 두뇌와 양심에 따른 행동이 있었던 사람이 정권을 맡게 된 것을, 지난 3년 전에 진심으로 기뻐했었다. 우리가 오로지 외면함으로써 평화를 구걸할 때 직면하고 항거하여 감옥을 택했던 사람들이 비로소 양지로 나서는 모습을 목격하는 것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설사 그런 고난이 권력을 탐하는 한 과정이었다손 치더라도. 그런데, 오늘 이게 뭔가?


남북·인권·부패 문제만큼은 명쾌할 줄 알았는데…


경제가 하도 중요해서 딴일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경제가 펴야 만사가 해결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만만치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경제는 언론이 뭐라 하건 대한민국 정부 또는 현정권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세계적 함수가 있는 만큼 평가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무엇보다 앞서 이 정부가 남북 문제·인권 문제·부패 문제에서 명료한 태도를 보이기를 기대했고, 또 그러는지 유심히 보아 왔다. 잘은 모르나, 이 정부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대개 나와 비슷한 꿈을 꾸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지역 문제를 포함하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요컨대 지역 문제에서 이 정부는 수세적 입장에 있으며, 지역 문제는 이야기하면 할수록 점점 깊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거두절미하고 지금 이 순간 김대중 정부에, 또 여당인 민주당에 네 가지 질문이 있다. 첫째, 국가 보안법은 잊힌 것인지, 둘째, 인권법을 제대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정말 있기나 한 것인지, 셋째, 부패방지법은 도대체 얼마나 더 회를 쳐서 있으나마나로 만들 것인지, 넷째, 이른바 돈세탁방지법이라는 것에서 선별적으로 그물망을 키워 빠져나갈 사람은 다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할 의도를 계속 가지고 있는 것인지 정말 알고 싶다.


그래야 돌아서도 깨끗이 돌아서고, 기다려도 불안하지 않을 것 아닌가. 태도를 분명히해 달라는 요청이다. 시간을 끌면서 감정을 소모하는 일이 피곤하고, 그러고도 배반당하면 혐오하게 되겠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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