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다리가 롱다리에게 보내는 위로
  • 장석만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
  • 승인 2001.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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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 여성의 풍요함을 질투해서 가부장제라는 괴물이 생겨났듯이, 효율적이면서도 풍요한 몸매를 질투한 자들이 불안정하고 에너지 낭비적인 미의식의 모델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어째서 남성은 가부장제를 만들어 여성을 억압하게 되었는가? 이 물음의 답변으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질투를 강조하는 관점이 있다. 남성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자신보다 우월한 여성을 시기하여 가부장제라는 제도적·이데올로기적 장치를 만들어 냈다는 주장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특히 여성만이 생명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남성은 심한 열등감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남성은 어떻게든 이 열등감에서 벗어나려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게 되었고 급기야는 가부장제를 꾸며내 여성을 폭력적으로 억압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 관점의 이론적 설득력이 어떻게 평가되든지 간에 나는 개인적으로 이 관점을 수긍하고 싶은 심정이다. 특히 여성은 밭, 남성은 씨앗과 같다고 하여 생명 탄생의 주도권이 남성에게 있다고 우기는 이들을 보면 가부장제가 열등감의 소산이라는 입장을 더욱 믿고 싶어진다. 게다가 같은 또래 남학생보다 훨씬 사려 깊고 아름다운 여학생을 볼 때, 그리고 여성의 평균 수명이 남성보다 10년 가까이 긴 것을 볼 때, 나의 '편견'은 정당성을 얻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관점이 지닌 장점은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여성의 창조력에 대해 질투하는 남성을 증오심으로 대응하는 대신, 가엾다고 느끼게 해준다는 점이다. 어떤 인간을 일단 가엾다고 여기게 되면 맞서 싸우기보다는 그의 등을 토닥거리며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된다. 불쌍한 인간과 아귀 다툼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느니 전체적인 시각에서 그의 문제를 파악하고 함께 해결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질투하는 자에게는 위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질투에 휩싸인 남성의 등을 토닥거려주라


얼마 전 신문에서 100세 시대의 인체 모습을 예상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점점 수명이 늘어나 앞으로 사람들이 노년으로 지내는 기간이 훨씬 늘어날 것인데, 이때 건강하게 살려면 지금과 같은 인체 모습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선 넘어져 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줄이기 위해 키가 지금보다 작아져야 하고 뼈는 굵어져야 한다. 그리고 뼈에서 칼슘이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근육은 좀더 많아지고, 지방질이 더 두터워져야 한다. 엉덩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또한 척추에 미치는 압력을 줄이기 위해 윗몸이 앞으로 숙여지게 되며, 균형 유지를 위해 목도 굽고 더 굵어져야 한다. 그밖에 장수 시대의 노인이 건강하게 지내려면 갈비뼈 수를 늘리거나 귀를 당나귀처럼 크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시되었다.


이 기사는 작은 키와 '숏다리', 통뼈 같은 목과 넓적다리, 두툼한 지방의 엉덩이가 건강한 노년을 위해 기능적으로 요청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이런 체형이 장수 시대 노인뿐만 아니라, 실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이상적인 체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 키와 '롱다리'가 몸을 원활하고 탄력있게 움직이는 데 작은 키와 숏다리보다 본래 우월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또한 노루같이 긴 목과 하늘하늘한 팔다리, 좁고 앙상한 엉덩이가 강하고 지속적인 동작을 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오히려 굵은 목, 짧은 다리, 탄탄한 살집의 작고 다부진 몸매에 더 안정되고 강력한 체력이 깃들어 있다고 보는 것이 당연한 듯하다. 더구나 앞으로 점점 더 세계 인구가 늘어 가고, 지구의 자원이 메말라 갈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이런 체형의 기능적 효율성이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다. 키가 멀쭉하게 크고 덩지도 우람하나, 아무 쓸모없이 지구의 자원만 낭비하는 꼴이라면, 이런 체형에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 인류 전체에 무슨 소득이 있겠는가?


이처럼 굵은 목, 작은 키와 짧은 다리, 커다랗고 강한 엉덩이가 기능적으로 안정되고 효율적인 몸매라면, 도대체 왜 이런 체형이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을까? 어째서 취약하고 실속 없는 몸매가 진정 아름다운 것인 양 내세워져 그 모델의 체형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자기 몸을 부끄러워 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가부장제 치하의 여성이 자신을 본래 열등한 종자인 것처럼 여긴 것과 비슷할 것이다. 남성이 여성의 풍요함을 질투해서 가부장제라는 괴물이 생겨났듯이, 효율적이면서도 풍요한 몸매를 질투한 자들이 불안정하고 에너지 낭비적인 미의식의 모델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이렇듯 질투에 휩싸인 이가 제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등을 토닥이며 위로를 해주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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