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이'의 비명이 들리지 않는가
  • 박순철 언론인 (scp2020@yahoo.com)
  • 승인 2001.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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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더욱 비싸고 지루한, 본격적인 논쟁의 길로 들어섰을 뿐이다. 아마 우리는 33km의 방조제를 다 쌓은 뒤에야 이를 다시 뜯어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자연의 전체성이라는 토대 위에서만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를 세울 수 있다는 값비싼 교훈을 얻게될 것이다."




데라다 시오리는 일본 규슈의 소도시 이사하야의 변두리에 사는 열두 살짜리 여학생이다. 한 눈의 시력을 잃은 이 소녀를 지난 4월 중순 만났을 때 나는 선물을 받았다. 짱뚱어와 게가 웃고 있는 그림이다.


시오리는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나온 〈짱이의 바다〉라는 책을 썼다. 2년 전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이 그림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곳은 아름다운 바닷가를 따라 펼쳐진 갯벌입니다. 이 갯벌에는 여러 종류의 생물들이 살고 있습니다. 짱뚱어 짱이도 갯벌 진흙탕에서 씩씩하게 뛰어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사라진 풍경이었다. 1997년 4월14일 이사하야 만(灣)을 가로지르는 길이 7km 방조제를 쌓는 공사 현장에서 벌어진 마지막 물막이 작업으로 인해 갯벌은 더 이상 짱뚱어가 뛰어 노는 땅이 아니었다. 그날 거대한 강철판 2백73장이 도미노처럼 잇달아 떨어지며 물길을 영원히 막는 데는 45초밖에 안 걸렸다. 사람들은 그 강철판들을 기요틴(단두대)이라고 불렀다.


시오리는 그림책에서 강철판에 깔려 비명 지르는 물고기·문어·게의 모습을 그렸다. 태고 때부터 거듭된 밀물과 썰물이 사라진 뒤 제방에 갇힌 갯벌은 고문 받는 생명체처럼 서서히 죽어 갔다. 지난날 물고기의 산란장으로 '아리아케 바다의 자궁'이라고 불리던 이사하야 갯벌은 황량한 죽음의 땅으로 변했다.


짱뚱어가 원고로 나선 일본 '이사하야 갯벌' 소송


이사하야는 새만금의 원형이다. 이사하야 갯벌을 살리기 위해 분투하다가 지난해 갑자기 타계한 일본습지네트워크 대표 야마시타 히로부미 씨는 생전에 새만금 사업은 이사하야를 모델로 한 것이라고 일깨우면서 일본 정부의 실수가 한국에서 되풀이되지 않기를 희망했지만, 이 땅의 정부는 순차 개발의 이름으로 미봉하면서 일본의 과오를 끝까지 흉내 내는 길을 선택했다.


그 '기요틴의 날' 이후 매년 4월 중순이 되면 사람들은 이제 먼지만 풀썩이는 이사하야의 갯벌 한 구석에 모인다. 두 달 전 그날도 일본 각지에서 모인 환경운동가와 어민 들은 위령제를 열고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희생된 바다 생물들의 영혼을 위로했다.


그곳에는 '자연의 권리' 소송을 제기한 자치단체 의원 하라다 게이이치로 씨의 모습도 보였다. 그는 짱뚱어를 원고로 내세워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갯벌 위를 펄쩍펄쩍 뛰어 다니는 우스꽝스럽게 생긴 짱뚱어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법정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자연에도 법적인 권리가 있고 당사자 적격(適格)이 있다고 생각하는 변호사들은 그 뒤 별도로 2차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의 원고는 짱뚱어·물새·게 등의 생물과 함께 이사하야 만이라는 무생물도 포함되었다.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이 개념의 바탕에는 회사나 학교 같은 비인간적 존재가 법인격을 갖는 것처럼 자연물도 법인격을 가질 수 있으며 자연물의 권리는 이를 가장 아끼는 시민에 의해 대리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 '대지 윤리(land ethics)'의 세계에서 인간은 흙·물·식물·동물 등으로 구성된 자연이라는 공동체의 평범한 한 구성원에 불과하다. 이 자연의 대가족을 아울러 보는 눈길 속에서 짱뚱어의 당사자 적격을 주장하는 법의 새로운 논리와 짱뚱어의 비명을 듣는 동화의 상상력은 하나의 공간에서 만난다.


우리에게는 선진국이 되고 싶다는 비원이 있다. 그러나 한 사회의 선진성은 1인당 GDP로 가름되는 것이 아니다. 나만이 아닌 사회 전체를, 우리 세대만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인간만이 아닌 생명 공동체 전체를 아울러 생각할 수 있는 따뜻한 상상력이 집단적 의사 결정에 얼마나 작용하는가가 어쩌면 더욱 중요한 지표다.


새만금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더욱 비싸고 지루한, 본격적인 논쟁의 길로 막 들어섰을 뿐이다. 아마 우리는 33㎞의 방조제를 다 쌓은 뒤에야 이를 다시 뜯어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자연의 전체성이라는 토대 위에서만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를 세울 수 있다는 값비싼 교훈을 얻게 될 것이다. 그 비용이 장차 10조원이 들든 20조원이 들든 그것이 모두 낭비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어리석음 때문에 사라질 수많은 '짱이'의 비명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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