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캄의 면도날
  • 박순철 언론인 (scp2020@yahoo.com)
  • 승인 2001.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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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언론이 관행이라는 이름의 치부를 덮는 무화과 나무 잎이 되어서는 안된다. 자유 언론에 대한 진정한 위협도 결국은 자신의 치부 그 자체에서오는 것이다. 이제는 정치권력이라는 '외부와의 관계'가 아닌, 언론 자본에 대한 '내부의 관계'에 더 주목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언론사 탈세 사건을 대하다 보니 '오캄의 면도날'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중세 철학자 오캄의 본래 명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어떤 사건에 대한 해석이 두 가지 이상 대립하고 있을 때 그 중 가장 간단한 것이 진실에 가깝다'는 것이 대충 그 내용이다.


이 혼란스런 사건의 본질을 언론 탄압으로 해석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탈세로 보아야 할 것인가. 여기에서 객관적 사실은 국세청이 23개 언론사를 대상으로 4개월 이상 세무 조사를 벌여 5천억 원이 넘는 세금을 추징하겠다고 발표한 뒤 다시 6개 신문사와 일부 사주를 고발했다는 것이다.


만일 이 사건의 본질을 언론 탄압이라고 해석하려면, 정부가 탈세한 사실이 없는데도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이를 조작했다는 판단을 받아들여야 한다(탈세한 사실이 실제로 있었는데 이를 밝혀 검찰에 고발했다면 이를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다른 업종에서 탈세 적발이 있었을 때 이를 가령 시장 경제에 대한 탄압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위 판단이 성립하려면 국세청은 직원 수백 명이 공모해 방대한 분량의 문서를 조작했다는 복잡한 가정이 필요하다. 만일 이 사건을 본질적으로 탈세 사건이라고 해석하려면 그런 사실이 실제로 있었다는 단순한 가정으로 충분하다.


이 사건은 이런 양분법적 접근이 불가능하며 양쪽의 요소가 다 포함된, 즉 '탈세 + 언론 탄압'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도 물론 있을 수 있다. 이런 말이 생각난다. '포도주에 오물이 한 방울 떨어지면 그것은 오물이 된다. 오물에 포도주가 한 방울 떨어져도 그것은 오물이다.' 탈세라는 오물이 섞여 있다면 비록 언론 탄압의 요소가 있더라도 그것은 탈세 사건이라는 규정을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언론을 탄압할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탈세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이 경우라면 탈세에 대해서는 탈세대로, 언론 탄압에 대해서는 언론 탄압대로 따지면 된다).


그러므로 문제는 단순하다. 탈세 행위의 유무가 문제의 핵심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빅 3'을 비롯한 언론사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탈세 행위가 없었다는 것을 집중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국세청은 매우 구체적으로 탈세 사실들을 적시했으므로 만일 그것이 사실과 다르다면 구체적인 반론을 얼마든지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탈세 혐의에 관한 실체적 진실은 궁극적으로 법정에서 가려지게 된다. 그러나 이미 국세청 발표로 해당 신문사들의 도덕성에 엄청난 타격이 가해진 이 시점에서, 피해 복구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국세청이 열거한 사실들에 대해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면서 조목조목 반박하는 길뿐이다. 신문사에는 그만한 정보와 지면과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다. 단지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가 있느냐가 문제다.


그렇지만 만일 국세청 발표를 구체적으로 반박할 수 없다면, 만일 그 절반만이라도 사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 이른바 '조·중·동'을 비롯한 신문사들에게 남은 길은 수치스러운 죄과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뿐이다. 설령 다섯 가지 죄를 지었는데 열 가지 죄를 지었다고 발표했다 해서 죄를 지은 사실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법 위에서 춤추던 모든 특권, 이제는 제자리로 돌아가야


아직도 민주화 과정에 있는 우리 사회에서 자유 언론은 여전히 쟁취해야 할 중대한 가치로 남아 있다. 그러나 자유 언론이 관행이라는 이름의 치부를 덮는 무화과나무 잎이 되어서는 안 된다. 법적으로 또는 도덕적으로 떳떳하지 못할 때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지킬 수 없는 것이 세상살이의 이치라면, 자유 언론에 대한 진정한 위협도 결국은 자신의 치부 그 자체에서 오는 것이다. 이제는 정치 권력이라는 '외부와의 관계'가 아닌, 언론 자본에 대한 '내부의 관계'에 더 주목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시대는 바뀌고 있다. 권위주의적 시대의 관행과 특권은 더 보호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변하고 있다. 언론 권력과 정치 권력의 정면 충돌은, 특권 대신 법이 지배하는, 민주적 다원화 시대가 개화될 것을 예고하는 긍정적 과정이다. 아직 법의 시대는 오지 않았다. 그러나 '법의 면도날'은 갈수록 날카로워질 것이 역사 전개의 필연적인 방향이다. 법 위에서 춤추던 모든 종류의 특권이 긴 도취에서 깨어날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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