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빛, 기온, 지형…
  • 박순철 언론인 (scp2020@yahoo.com)
  • 승인 2001.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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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가 생명을 대치한 허영의 도시들에서 죽어 있는 큰 것으로부터 살아 있는 작은 것으로 눈길을 돌리기는 어렵다. 그런 우리들에게 여행은 일상에 갇혔던 감수성을 풀어놓아 준다. 여로의 새로움은 새로운 풍경이 아니라, 새로 깨어난 감수성 덕인지도 모른다."




저녁이 되면 산책을 나간다. 개가 보채기 때문이다. 이 녀석은 장마도 호우도 모른다. 아파트 계단을 내려가면서 늘 조마조마하다. 이웃 사람들이 너그러워 더욱 미안하다. 처음에는 한두 달 맡으면 되리라 하는 생각으로 데려 왔는데 어쩌다 보니 벌써 여러 달째 우리집 식구가 되었다.


한강 둔치로 내려간다. 비가 언제 다시 쏟아질지 모르는 날씨인데도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리는, 그러니까 똘이와 나는 서로 다른 세계에 들어선다. 개는 모든 풀·바위·나무에 사로잡힌다. 축축하게 젖은 검은 코는 쉴 새 없이 움직인다. 눈은 무슨 상념에 깊이 잠긴 것 같고 귀는 신중하게 펄럭인다. 길게 자란 흰 눈썹과 수염을 강바람에 흩날리며 달리는 작은 개의 모습을 나는 사랑한다.


나는 똘이의 세계에 들어가려 애쓴다. 그러나 내 코는 오염된 강물의 비릿한 냄새밖에 맡지 못한다. 아무리 귀를 긴장시켜도 내게는 강변 도로를 달리는 차량들의 소음 밖에는 안 들린다. 옛날 번역할 때 만났던 스페인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사냥에 관한 명상〉 가운데 한 구절이 생각나면서 좀 유감스러워진다.


'그는(사냥꾼은) 주위를 동물의 감각으로 의식하며 동물만이 지니는 민감한 집중력을 갖춘다. 이것이 바로 내가 대지 '속'에 존재한다고 부르는 것이다 … 바람, 빛, 기온, 지형, 광물, 식물, 이 모든 것이 각각 자기의 역할을 한다.'


식물의 향기가 나는 사람들을 만나려면…


나는 여전히 대지 '밖'에 있다. 천천히 강을 따라 걷는다. 이 강가의 조그만 섬 주위를 뛰는 사람들은 어떤 내면의 세계를 달리는지 궁금하다. 가끔 젊은 남녀들이 섬들처럼 자기들만의 세계에 격리되어 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한강은 불안한 매력으로 가득 찬다. 내가 아무 데나 걸터앉으면 신나게 뛰어다니던 개도 어느 틈에 다가와 옆에 쪼그리고 앉는다. 우리는 강의 거대한 풍경화 속에 조그맣게 녹아든다. 나는 흙탕물이 빠르게 흘러가는 강을 내려다보며 내가 보았던 세상의 강들, 그리고 보지 못했던 강들을 생각한다. 차오파야, 홍하, 야무나…


검은 하늘을 배경으로 동작대교 아래 무섭게 불어난 한강을 바라보면 내 상념 속에서 출렁이던 메콩 강이 다시 흘러나온다. 토사를 가득 머금은 채 젖은 하늘 아래 도도하게 흘러가던, 생명이 가득 담긴 강물. 비바람 속의 델타.


그리고 메콩 강이 프놈펜을 감싸며 톤레사프 강으로 이어지는 강가에서 마주쳤던 사람들. 그 강의 상류, 바다처럼 광막하게 펼쳐진 우기의 호수와 불어난 물에 목까지 잠겼던 나무들의 끝없는 대열. 그 곳에서 천 년 전 벌어진 수상 전투를 여전히 사실적인 부조(浮彫) 속에 기억하고 있는 앙코르의 거대한 사원들. 자연과 인간의 영원한 갈등의 드라마처럼 열대의 거목들이 울퉁불퉁한 근육질 뿌리로 인간이 세운 사암(砂巖)의 신전들을 사정없이 으스러뜨리던 타프롬 사원의 그로테스크한 오후.


모든 거석 기념물에는 어떤 슬픔이 깃들어 있다. 죽은 문명의 슬픔이다. 생명을 잃은 마천루의 도시들. 그러나 크기가 생명을 대치한 허영의 도시들에서 죽어 있는 큰 것으로부터 살아 있는 작은 것으로 눈길을 돌리기는 어렵다. 식물의 향기가 나는 인간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폴 고갱처럼 미지 속으로 떠나는 무모함이 필요하다.


이 여름에 사람들은 어디로 떠나는가. 여행은 일상에 갇혔던 우리의 감수성을 풀어놓아 준다. 어쩌면 여로의 새로움은 새로운 풍경이 아니라 새로 깨어난 우리의 감수성 덕인지도 모른다. 강물이 흐르듯 우리 속에 잠자던 풍요하고 신비한 그리고 영원한 자연이 우주적인 만남 속을 흐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일어선다. 지루하게 기다리던 똘이가 다시 미친 듯이 풀밭 위를 달린다. 흙탕 속을 달려 몰골이 사나워졌지만 나는 개의 자유가 기쁘다. 우리는 함께 집으로 향한다. 칼릴 지브란의 환상이 쫓아온다.


'나는 영원토록 이 해변을 거닐고 있습니다./모래와 물거품 그 사이./높은 파도에 나의 발자국은 지워져 버릴 것입니다./ 바람이 불어와 물거품 또한 날려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바다와 이 해안은/ 영원까지 남을 것입니다.'(정은하 옮김 〈모래·물거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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