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는 '더러운 손' 당장 씻어라
  • 이재현(문화 평론가) ()
  • 승인 2001.09.2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차별 보복 전쟁은 테러보다 더 끔찍한 일이며,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시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수백 건의 '노근리 사건'을 일으키려 준비하고 있다."




걸프전쟁에서도 그랬듯이, 이번 미국 테러 참사 때에도 리얼타임의 포트스모던 이미지는 매우 충격적이다. 당일 밤에는 화면 이미지와 어색하게 결합된 동시 통역이 거슬렸지만, 다음 날부터는 동시 녹음 사운드로 세기적 스펙터클을 즐길 수 있었다.


이번 테러 사건은 내게 블록버스터 독립 영화로 여겨진다. 할리우드 메이저로부터 독립해서 뉴욕에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인디 필름이며, 사상 최대 제작비와 엑스트라 숫자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로서 개봉 첫주 만에 세계 인구 거의 전부가 관람했다는 점에서 초대형 블록버스터이다. 개봉 이틀 뒤에는 5단 통광고가 희귀하게도 일간지의 머리 기사 제목 바로 아래에 실렸는데, 이 광고의 단색 스틸 사진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또한, 이 모든 흥행 성공은 노스트라다무스도 예언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번 참사로 인해 고통을 겪는 당사자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일인데, 내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미국이나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부시 정부의 광기가 못마땅한 것이다. 우리는 지난 50년 간 북한, 아니 북괴가 호시탐탐 남침을 노리면서 전쟁 준비에 광분하고 있다고 말해 왔는데, 이번에는 부시 정부가 바로 이런 지겹고 상투적인 표현 그대로 미쳐 날뛰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라크에서 전쟁을 벌이고 싶어하는 부시 정부는 이번 전쟁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단적으로, 부시 정부는 수백 건의 노근리 사건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면 이번 테러 사건으로 숨진 시민 수천 명보다 더 많은 양민의 머리와 팔다리가 폭탄에 찢겨 나갈 것이며, 수많은 과부와 고아가 맥도널드 햄버거처럼 양산될 것이다.


부시 정부는 탈레반 정권에 빈 라덴을 넘기라고 강요한다. 하지만 바로 얼마 전에 부시 정부는 서울 사람의 젖줄에 독극물을 푼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 책임자 미국인을 한국 법정에 넘기는 것을 거부했다(빈 라덴이 공식적으로 테러와의 관련을 부인하고, 부시도 빈 라덴의 테러 관련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부시는 그 동안 계속된 흥행 부진을 일거에 만회하려는 듯 주연 배우답게 ‘우리는 전쟁중'이라는 대사를 읊었다. 그러나 정작 1950년부터 전쟁을 해오고 있는 것은 한반도의 우리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자위대 해외 파병을 결정한 고이즈미 정부가 나의 민족주의적 상처를 자꾸 쑤셔대지만, 지금 내가 민족주의자로서 발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을 김 구나 윤봉길과 비교하면서 이번 테러를 미화하고 싶지는 않다.


후세인이나 빈 라덴이나 김정일은 부시가 대표하는 미국 매파의 처지에서 보자면 별 차이가 없다. 어느 때나 그들의 형편과 이익에 맞는다면 뽑아서 내던질 수 있는 서로 다른 카드 패일 뿐이다. 이 엄연한 사실 앞에서 오싹해질 따름이다. 참사 소식에 환호했다가 추방된 중국 기자들도 이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부시 비위 맞추기 급급한 DJ 정권 ‘한심'


부시는 전쟁 준비의 더러운 손을 당장 씻어야 한다. 세계의 평화 애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하고 있듯이 무차별적 보복 전쟁은 테러보다 더 끔찍한 일이며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블록버스터란, 미국이 베트남을 불바다로 만들 때 쓴 것처럼 시가지의 한 구역을 쉽게 날려버릴 정도의 대형 폭탄에서 유래한 말이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블록버스터라고 하더라도 폭탄보다는 영화로 만족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미국에 살면서도 살해 위협에 시달리는 바버라 리 하원의원에게 뜨거운 지지와 연대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리 의원은 나의 종씨다. 철자는 다르겠지만, 미국에 가면 나도 리씨니까. 앗, 요즘 며칠간 이런 농담으로 가을밤 술자리를 버텨내려고 하니까, 신문 머리 기사가 바뀌면서 이용호도 종씨라며 끼어드는 것이 아닌가. ‘애프개니스태니즘'이라는 단어는 신문 기자 등이 국내 문제를 소홀히 하고 먼 외국 문제에 몰두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한다. 전쟁광 부시의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DJ가 명심해야 할 단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