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향'한 두 친구 이야기
  • 고종석(소설가) ()
  • 승인 2001.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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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진보와 희망을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 가운데 다수는 좌파의 완장을 자랑스럽게 두른 채 아무런 자의식 없이 힘센 극우 신문과 혼숙함으로써 자신들의 언어를 우스꽝스럽게 만들고있다."




'문화 비평' 난을 잠시 맡았던 이재현씨와 인천에서 나오는 계간지 〈황해문화〉의 편집주간 김명인씨는 내 친구다. 사회에 나와서도 한참 뒤에 사귄 친구들이니 함께 나눈 기억의 두께가 대단치는 않다. 게다가 최근 7∼8년 사이에 나는 그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내가 나라 밖으로 쏘다닌 탓도 있고, 각자가 제 일에 바빴던 탓도 있다. 그 시기를 줄곧 국내에서 보낸 그 두 친구끼리는 더러 얼굴을 맞대기도 했을 테지만, 나는 그들을 마지막으로 만난 때가 언제인지도 기억이 흐릿하다. 이런 저런 사정을 고려해도 내가 그 친구들과 그리도 오래 적조했던 것은 어쩌면 내가 그간 그 친구들에게 별 아쉬운 일이 없었고, 그 친구들도 내게 아쉬운 일이 없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아쉬운 일 없이는 만나지 않는 사이라면 친구라고 내세우기는 어색하다. 이재현씨와 김명인씨는 내 친구다, 라는 것은 그러니 내 멋대로 한 말이지, 그들 입장에서는 내가 친구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내가 그들과 친구로 어울린 것은 사실이니, 그냥 친구라고 해 두자.


이 친구들은 1980년대를 민중문학권의 평론가로 살았다. 차례로 옥살이를 했고, 옥살이 덕분에 군대를 안 갔고(그 친구들이 운이 좋았다. 옥살이를 조금 일찍 했거나 조금 늦게 했다면, 옥살이는 옥살이대로 하고 군대까지 갔다 왔어야 했을 것이다. 군사 정권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변덕이었으니까), 다소 과감한 입론으로 글쓰기를 시작했고, 그쪽 글판에서 얼마간 이름을 얻었고, '멀쩡한' 작가를 '의식화'해서 반미 반파쇼 작가로 만들었고, 그 작가들의 소설쓰기에 훈수를 두면서 일종의 '공동 창작'을 했고, 더러는 거만하게 굴었고, 그러다가 1987년의 6월항쟁과 7∼8월 노동자 투쟁을 겪었고, 그 해 겨울 대통령 선거에서 험한 꼴을 보았고, 그 이듬해에 6공화국 출범을 지켜 보았다. 거기서 한 해가 더 지나니 1989년이었다.


그 해를 기점으로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한 동유럽의 사회주의 체제는 그 지역의 국경선만 헝클어뜨린 것이 아니라 대륙의 동쪽 끝 남한의 이념적 지형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좌우의 경계선이 갈지자로 그어지고 온갖 '탈'자 항렬의 이데올로기가 창궐하면서 민중문학론의 몸통은 뒤집힌 원뿔처럼 불안한 자세가 되었다. 내 두 친구는 어느 정도 버텼다. 그리고 차례로 '전향'했다. 전향이라는 말에 담긴 부정적 뉘앙스는 잊어버리자. 아무튼 1990년대 들어 어느 날 이재현씨는 〈공산당 선언〉의 세계관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김명인씨는 다소 모호하고 온건하게 민중적 민족문학론에서 발을 빼고 자신의 책 제목처럼 '불을 찾아서' 떠났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다소 명료하고 단호하게 민족문학론에 작별을 고했다. 당연히, 이 두 사람은 차례로 욕을 먹었다.


지금도 그들을 좌파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


그러나 나는 그것이 욕먹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관념이 현실과 어긋난다고 판단되었을 때, 즉 자신의 언어가 현실에 대한 설명력을 잃었다고 판단되었을 때, 용기는 현실에 맞추어 언어를 수리하는 데 있는 것이지 언어의 변증법으로 현실을 바꿔치기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들이 1980년대의 언어를 계속 고집했다면, 그것은 그들이 위선적이거나 아둔하거나 둘 다라는 증거일 것이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1980년대에 그 친구들 주위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 친구들보다 훨씬 더 과격하게 전향했다. 물론 그들은 공식적으로 전향을 선언하지는 않았다. 다만 더 이상 진보를,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을 뿐이다. 여전히 진보와 희망을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 가운데 다수는 좌파의 완장을 자랑스럽게 두른 채 아무런 자의식 없이 힘센 극우 신문과 혼숙함으로써 자신들의 신념을, 자신들의 언어를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내 두 친구는 그러지 않았다. 아마 혁명의 열정은 버렸겠지만, 그들에게는 여전히 더 나은 사회에 대한 꿈이 있다. 10년 전에 그랬듯이 그들의 글은 지금도 여전히 사회적 소수파를 옹호하고 기존의 굳은 권력 관계에 저항하며 사회를 조금씩, 앞으로 밀어내고 있다.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그들을 좌파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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