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정, 최음제 그리고 스포츠신문
  • 이성욱(문학 평론가) ()
  • 승인 2001.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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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마약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이번 일의 민감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공공 영역을 파괴하는 결과가 없는 한 황수정이 최음제를 먹든 남자 관계가 거미줄 관계이든, 그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나는 모르겠다."




산스타(1970년대 안약)는 눈에만 넣는 것이 아니고, 타이밍(역시 1970년대 각성제) 또한 잠 오지 말라고 먹는 것만이 아니며, 마찬가지로 미원이 조미료만이 아닌 때가 있었다. 사이다에 미원을 타서 소주에 넣거나, 산스타에 타이밍을 섞어서 막걸리나 약주에 타서 먹이게 되면 그녀가 순식간에 성(聖)처녀에서 성(性)처녀로 돌변한다는 비전(秘傳) 때문이었다. 이른바 '뿅가리'로 불리던 그것은 정확히 말해 '최음제'의 민간요법 제조술이었다.


알다시피 최음제는 그제나 이제나 사람들에게 그 힘이 아주 센 지남철이었다. 최음제 발명의 역사는 모르긴 해도 인간이 암수로 무리 지어 살기 시작한 역사와 발을 맞출 터이며, 그것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까닭에 예의 산스타 에피소드는 단순히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그것은 산출 대상이 황금의 만족에서 성의 그것으로만 바뀌었을 뿐이지 그 본질은 욕망 충족을 터로 삼는 연금술과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성의 연금술이라 할 수 있는 이 최음제는, 그러므로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 충족의 한 방편일 뿐이다. 그 효력의 완급만 다를 뿐이지 많은 사람들이 선용하는 정력제 또한 넓은 의미의 최음제이며 욕망 충족의 사다리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최음제든 연금술이든 인간이 거기에 쏟는 노력은 결국 욕망 실현, 바꾸어 말해 자신의 지극한 행복을 위해 들이는 공력이다. 그렇기에 산스타이든 최음제이든 그것은 모두 인간의 천부적인 행복추구권에 관련되는 일이기에, 적어도 공공 영역을 파괴하는 결과가 없는 한 다른 사람이 간섭할 일이 아닌 것이다.


칭찬해야 할 것을 비난하는 스포츠 신문 기자의 '무지'


이야기가 최음제로 시작된 것은 황수정에 관련된 이번 일의 핵심이 결국 최음제이기 때문이다. 평소 스포츠 신문 연예부 기자들 대접을 소홀히 했는지 이번 일로 황수정은 그 기자들의 어금니에 처절하게 물어뜯기고 있다. 그들의 너저분한 수사에 의해 그녀는 로마군 일개 군단을 상대했다는 메살리나보다 더 음란한 음녀로 승진된다. 기자들의 흥분은 가속되어 평소 술 한잔 못한다고 술자리에서는 음료수만 마시던 그녀가, 옷 벗는 장면의 촬영은 필사적으로 거부하던 그녀가, 알고 보니 최음제를 애용하던 놀라운 '내숭녀'였다는 식의 비난을 퍼붓는다.


문화산업의 핵심인 스타 시스템이 한창일 때 청순한 이미지를 팔던 미국의 일급 여자 배우는 하루 종일 어머니하고만 다녀야 했고, 음울한 이미지를 밑천으로 삼던 남자 배우는 다른 사람 앞에서 절대 웃으면 안되었다. 남자와 다니거나 웃으면 위약금을 물기로 계약했기 때문이다. 스크린 이미지의 판매술이 일상으로까지 연장된 경우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황수정이 원래는 폭탄주 상용자이든 취하면 스타킹을 머리에 묶고 테이블 위에 올라가 난장을 치는 주사가 있든, 혹은 하루에 남자를 몇 명 만나든 말든, 그녀는 스타 산업의 알곡을 챙길 줄 알았던 훌륭한 연예인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술자리에서든 벗는 연기에서든 그녀가 부린 내숭은 철저한 자기 관리라는 측면에서 칭찬받아 마땅한 프로급 마케팅이다. 상찬해야 할 일을 오히려 비난의 근거로 보는 기자들의 무지는 참으로 측은하다. 그런 풍경 앞에서 해학 문학의 으뜸인 채만식의 다음과 같은 말이 떠오른다. "난 개하구 무식한 사람하구가 제일 무서워. 대체 경우가 없단 말이야."


하기야 일을 둘러싼 경과를 보면 '뽕'을 한 이들은 도리어 스포츠 신문 기자들인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엊그제 황수정의 이마에다 주홍글자 붙여대기를 서슴지 않다가, 다음날 '황수정 돌팔매질 위험 수위, 황수정에 대한 비난의 수위 범죄 수준을 넘어서…'(11월20일자 모 스포츠 신문) 등의 이야기를 할까.


물론 문제가 마약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이번 일의 민감성이 상존한다. 하지만 대마초 건으로 몇 번 잡혀갔던 가수 전인권이 한 계간지와의 대담에서 한 다음과 같은 요지의 발언은 경청할 가치가 있다. '남한테 피해 안 주면서, 내 한 몸 내가 좀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왜 국가가 나서서 챙겨 주겠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황수정이 최음제를 먹든 됫병짜리 소주를 마시든 남자 관계가 거미줄 관계이든,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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