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균 감독의〈화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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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1.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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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화산 108년. 교실에서는 분필이 총알처럼 날아다니고 운동장에서는 학생과 선생이 공중에 떠 무술을 겨루고 있다. 전교생이 무술 고수인 화산고에서는 찻잎이 용의 형상을 그리며 움직인다든지,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아도 복도의 유리창이 가루가 되도록 깨진다든지 하는 일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화산고에는 무림 비서 〈사비망록〉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전설이 면면히 내려오는데, 교장 장오자(윤문식)가 17년간 계속된 대환란을 〈사비망록〉으로 잠재웠다 하여 더욱 유명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한 화산고. 그러나 교장의 자리를 호시탐탐 엿보는 교감(변희봉)과 화산고 역사상 최단기간에 학원을 평정한 송학림(권상우), 화산고의 1인자를 꿈꾸는 역도부 주장 장 량(김수로) 등이 〈사비망록〉을 차지하기 위해 불꽃 튀는 대결을 벌이고 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둥 번개가 치던 어느 날, 타고난 공력을 주체하지 못해 여덟 번이나 퇴학을 맞은 김경수(장 혁)가 전학을 온다. 본의 아니게 문제아가 된 경수는 화산고에서 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졸업하겠다는 각오다. 하지만 전교생이 고수인 화산고에서 그의 내공을 읽지 못할 리가 만무하다. 과연 경수는 〈사비망록〉을 두고 벌어지는 화산고의 격렬한 포화 속에서 무사히 졸업할 수 있을까?


김영진★ 5개 중 3개
볼거리는 '풍성' 구성은 '엉성'




장르를 존중할 것이냐, 거역할 것이냐. 학원 무협을 표방한 〈화산고〉는 어느 쪽도 아니다. 무협 영화지만 껍데기만 무협이다. 아니,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야 맞다. 무협 영화의 코드를 빌려 왔지만 이 영화에는 자객 정신의 비장미나 동양적인 허무주의 흔적 같은 것은 아예 없다. 퇴학 여덟 번이라는 경력을 자랑하며 참을 '인'자를 가슴에 새기고 속없이 구는 주인공 김경수의 태도에서 언뜻 무협 영화의 고수다운 분위기가 배어나지만, 영화의 주요 인물들에게는 대체로 생생함이 없다.


〈화산고〉는 사파와 정파의 싸움이 벌어지는 무대를 학교로 옮겨 놓았다. 이 영화에서의 학교는 기성 세대의 질서가 전혀 통하지 않는 초법적인 공간이다. 제도 교육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깔고 있는 이런 설정은 우선 묘한 쾌감을 준다. 서로 '짱'이 되겠다고 난리를 치는 아이들이 설쳐대기는 하지만 이곳은 여하튼 그들만의 질서로 편제된 가상의 해방구인 것이다. 영화가 중반에 접어들면 이 버릇 없는 아이들을 제압할 학원 오인방, 가공할 무공을 지닌 선생들이 학원 무림을 평정하러 온다. 이때부터 장 혁이 연기하는 김경수와 선생들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그러나 굳이 세밀히 따지고 들 것도 없이 〈화산고〉의 플롯은 발상만 빼면 낙제점 수준이다. 등장 인물은 너무 정형화해 있으며 중반까지 비중 있게 다루어지던 인물이 영화 말미에 가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감독 김태균은 그런 것쯤은 무시해도 관객을 위한 서비스에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담한 비주얼에 비해 플롯이 좀더 정형화하고 세밀했으면 좋았겠지만 〈화산고〉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와 속성이 비슷하다. 누구에게나 구미가 당길 이야기의 컨셉을 내세우지만 캐릭터와 플롯은 볼거리에 치중하느라 뒷전인 것이다.


무협 영화로서 〈화산고〉는 계통도 뿌리도 없다. 가상의 미래 공간에 존재하는 학원을 사파와 정파가 대립하는 무림으로 설정해 놓는 척했다가 이윽고 본색을 드러낸다. 이것은 다 핑계다. 장 혁이 연기하는 주인공 김경수가 선생이 던진 분필을 심후한 내공으로 멈추게 하는 첫 장면부터 〈화산고〉는 현실 세계를 거역하는 몸짓으로 도배되어 있다. 등장 인물들이 붕붕 날아다니며 펼치는 와이어 액션도 서로 합을 맞추는 그런 액션이 아니라 순전히 속도의 질감을 과시하는 방향으로 짜여 있다.


〈화산고〉는 무협 영화의 코드로 볼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그와는 다른 즐거움도 있다. 새로운 유형의 영화를 창조하는 것은 때로는 기존 영화를 다르게 조합하는 것에서 나온다는 교훈을 너무 무시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


심영섭★ 5개 중 3개
'필살기' 없는 부족한 내공




이야기 구조만 보자면 〈화산고〉는 중국의 고비 사막에서 시작하는 〈소호강호〉의 속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는 중원이 아닌 한국의 고등학교. 김태균 감독은 〈박봉곤 가출사건〉 때부터 오리털 날리는 환상적인 아줌마 가출담에 심취하더니 급기야는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무협물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결과는?


박기형 감독의 〈여고괴담〉에서도 학교는 귀신이 출몰하는 공포의 공간이었지만 그 마디마디에 한국 교육 현장의 부조리가 배어 있었다. 학교는 '귀신도 곡할 만큼' 왜곡된 입시 제도가 만들어 낸 대한민국 최고의 억압 공간이라는 것. 그러나 〈화산고〉는 학교가 가지고 있는 풍부한 사회적 함의를 담아내기보다는 일단 보는 재미에 치중한다. 하지만 장면장면마다 방점을 찍어내는 연출은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스피디함을 과시한다.


용암이 끓고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는 '화산'에 인간의 번뇌를 상징하는 108이라는 숫자를 보태 '화산 108년' 어쩌고 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갈등과 불만의 장소로서 학교를 은유한 것이리라. 이 영화에서 학교는 악의 화신과도 같은 교사들이 아이들을 공포의 도가니에 빠뜨리고, 교육 관리자들은 사리사욕을 채우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영화 내내 학교라는 공간은 밝은 햇살이 비치는 적 없이 항상 낮게 드리운 짙은 먹구름에 불안하게 눌려 있고, 줄곧 내린 비로 학교 운동장은 수렁이 되어 학생들을 집어삼킨다. 그러니까 김태균 감독에게 학원이라는 공간은 전형적인 무협물이 지향하는 신화화한 공간이 아닌 현실의 늪 같은 곳이다.


학생들은 마치 그 수렁과 먹구름을 뚫고 하늘로 승천하려는 듯 공중제비를 넘고 허공을 떠다닌다. 〈와호장룡〉의 우아한 와이어 액션이 펼쳐지기에는 학교라는 현실의 자기장이 너무나도 강력하게 학생들을 끌어들인 것일까? 〈화산고〉의 액션은 마치 비명이나 절규처럼 격렬하고 단말마적이다. 현실의 억압을 뚫으려는 과잉 표현으로 애교스럽게 봐줄 수도 있겠지만, 〈화산고〉의 지나친 특수 효과는 이야기를 압도한다.


결국 이야기의 결론은 예상 가능한 해피 엔딩. '쎄서 슬픈 사나이'(장혁)는 지옥의 악마와도 같은 교사(허준호)와 최후의 '맞장'을 뜬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물방울을 이용한 '필살기'. 김경수는 수공으로 악덕 교사의 화공을 제압한다. 결국 갈등과 억압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은 불과 같은 폭력이 아니라 물과 같은 포용이라는 말이 아니던가?


형식 과잉의 결에 스며 있는 현실의 무게를 가늠케 한다는 점에서 〈화산고〉는 흥미로운 텍스트이다. 그러나 관객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배제된 컴퓨터 게임과도 같은 영화가 과연 〈플레이스테이션〉과 〈스타 크래프트〉와 같은 컴퓨터 게임에 배부른 청소년 관객층에게 얼마나 즐거움과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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