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남북 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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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2.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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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처럼 집값 상승이 강남 쪽에만 집중되는 것은, 오래된 독점 이론의 한 예일 뿐이다. 손님을 빨아당기는 강남의 호객력은 부동산만이 아니라 교육 부문에서도 그 의연함을 과시한다. 지난해 지방 또는 서울 다른 지역에서 서울 강남 지역으로 학교를 옮긴 인문계 고교생이 전년도에 비해 34% 늘어났다는 서울시 교육청의 발표를 들어보면 그렇다. 강남과 비 강남의 낙차와 균열은 점점 그 폭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한데 오래 지난 신문을 뒤적이다 보면 그런 일이 새삼스럽지 않다는, 요컨대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일(昨日)은 양력으로 섯달그믐날이었다… 남촌 진고개에서는 큰 번창을 이루었다. 검은 옷 입은 남녀 노소의 나막신 소리가 콩볶듯하며, 붉은 빛 분홍빛 푸른 빛으로 무수한 기를 만들어 흰글씨로 ‘세모대매출’이라 써서 꽂은 것이 개인 하늘에 때 아닌 꽃밭이 된 듯하고… 자전차 종을 귀가 솔게 울리면서 번개같이 다라가다가 자전차끼리 마주쳐서 충돌이 자주 이러나는 (이곳은) 산 같이 벌려 놓은 각 상점에 물건… 이와 반대로 북촌에는… 적적하여 명절인 듯도 싶지 않으며… 물건을 사고 파는 남대문·동대문의 두 시장도 모두 한산하여… 신년을 맞는 듯한 기분이 없이 적적하더라.



밤거리에 나타난 서울의 남·북촌은 너무나 그 대조가 우리에게 비참한 충동을 준다. 조선의 불경기를 혼자 도맡은 듯이 웅성거리고 있는 것이 북촌. (그곳의) 정자옥·미쓰꼬시 백화점(에) 조선 사람들은 문이 메이게 드나드는 것을… 목도한다. 진고개로 들어서면 좌우로 벌려 있는 뭇상점들은 점두(店頭) 장식이라든지 상품진열… 이곳저곳 축음기 상회에서는 새로 나온 유행곡의 선전이 굉장하다… 진고개에 사람 사태가 났다니, 진고개의 밤거리는 불야성이라니, 네온싸인과 일류미네순이 남촌의 한 자랑거리(라고 하지만) 문제는 북촌과의 차이 문제다. 북촌… 죽음의 거리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이 생긴다. 북촌은 음울하고 어둡고 무기력한 곳, 남촌은 번화하고 밝고 활기 있는 것이라 하겠다.


위는 <동아일보> 1922년 1월1일자, 아래는 <중앙일보> 1931년 11월30일자 기사이다. 이 기사들은 이미 80여 년 전 서울 남쪽과 북쪽 사이에 심각한 균열이 있고 그것이 사회적 의제로 등장했음을 타전한다. 당시 경성 사람들에게 남촌은 ‘모던’·개명·서구화·풍요함으로, 반면 북촌은 어둠·남루·빈곤의 다른 이름으로 받아들여졌다. 모름지기 경성 사람이라면 남촌(지금의 명동·소공동·충무로 일대)의 백화점 옥상 정원에라도 한번 다녀와야 ‘모던’의 세례를 옳게 받은 셈이 되었다. 그 옥상 정원에서 바라보면 멀리 북촌(지금의 종로 일대)이 어두컴컴하게 가라앉아 천식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80년 전에도 서울의 남과 북은 ‘심각한 균열’


때를 좀 건너뛰어 1970년. 남서울 개발 프로젝트가 발표되면서 한강은 난데없이 강남과 강북의 ‘국경’ 노릇을 떠안게 된다. 압구정·청담·논현·대치 등 영동지구 3백65만평과 잠실 지구 1백67만평 개발이 착공되면서 배추밭에서 똥장군 지던 박서방이 졸지에 억대 졸부가 되는 신화를 비롯해 하루 만에 천만원의 프리미엄이 붙는(1978년 당시 도시 근로자 월평균 소득은 16만9천3백원) 한국형 골드러시 시대, 요즘 시쳇말로 ‘대박’ 터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때부터 강북에서 돈 좀 만지는 이들은 강남의 고급 아파트로 대거 이동했다. 매일 집에서 목욕을 할 수 있고 깨끗한 ‘키친’으로 꾸며진 강남의 주거는 안락·풍요·번영·화사한 일상의 표정인 반면 강북은 지저분하고 소란스러운 악덕의 동네로 평결되었고, 그리고 버려졌다. 1920∼1930년대의 어김없는 반복.


일전 20여년 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 아줌마는 고등학생 아들을 위해 강북의 좋은 집 놔두고 강남에 전세살이를 들어갔다고 한다. 강남의 학교와 학원에 다녀야만 부의 승계가 보장된다는, 이름하여 종교보다 붉은 신념이었다. 어른들은 몰라도, 강남 아이들은 냄새만 맡아도 저 아이가 강남 아이인지 강북 아이인지를 안다. 강북일 경우 당연히 금 밖으로 밀어 낸다. 남북 분단에 이어 지금 남한에는 세대간 분단, 강남·강북간 분단이 나날이 가속되고 있다.

이성욱 (문학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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