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하나에 깃든 우주의 원리
  • 이문재 편집위원 (moon@sisapress.com)
  • 승인 2002.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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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균 지음 <한국의 정원, 선비가 거닐던 세계>/자연과 한몸 된 옛 뜰 순례
만들어 쓰지 않고 사서 쓰는 세상. 집까지도 건설업체가 판매하는 ‘제품’이다. 집주인은 집을 지은 사람이 아니라 소유자, 아니 소비자이다. 집은 집주인의 삶이 담겨 있는 ‘이력서’가 아니라 부동산일 따름이다. 집에 대한 고정 관념이 이러할진대, 옛 선비들이 거닐던 정원을 기웃거리는 일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빈틈없는 삶일수록 여백을 만들어야 한다. ‘24시간 사회’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옛 사람들이 자연과 더불어 몸과 마음을 다스렸던 정원은, 두고 온 고향, 혹은 언젠가 돌아가야 할 자연 같은 존재다.



한국미술사를 전공하고 문화재 감정위원을 거쳐 현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책임편수연구원으로 있는 허 균씨가 최근 발간한 <한국의 정원, 선비가 거닐던 세계>(이갑철 사진, 다른세상 펴냄)는 선비들이 담을 두르거나 연못을 팔 때, 바위를 세워놓을 때, 거기에 어떤 생각을 담았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한국의 정원은 중국이나 일본의 정원과 비교할 때 고유한 특징이 드러난다. 중국 정원이 주인에 의해 연출된 규모가 큰 연극 무대라면, 일본의 정원은 인간 중심적이고 작위적인 구성이 강하다. 반면 한국의 정원은 자연과의 경계가 희박하다. 허 균씨에 따르면, 한국의 옛 정원은 산세, 계류의 흐름, 바위와 수목의 상태 등 산천의 형국을 더듬어서, 그 중 경관이 좋은 한 대목을 골라 거기에 약간의 쉼터를 짓고 나무와 돌을 정돈한 것이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앞부분은 정원 속의 경물·조형물·자연물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를 읽어내고, 뒷부분에서는 한국 정원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정원 스물여덟 군데를 찾아간다. 한국의 정원에는 유교와 성리학, 도가와 신선사상, 풍수사상이 깃들어 있으며 연꽃이나 연못, 바위와 괴석에는 우주의 운행 원리가 깃들어 있다. 은행나무는 공자를, 소나무·대나무·매화(세한삼우)는 군자의 덕목을 은유한다.
올 여름에는 이 책을 지도 삼아 옛 정원들을 순례해볼 일이다. 우주와 교감하며 ‘독락(獨樂)’하던 선비의 인문학적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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