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평-김소희 · 김봉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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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2.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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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리포트
재미있고 의미있는 미래형 리얼리티-김소희



주 연속 스티븐 스필버그 이야기를 하게 생겼다. 윌 스미스 데려다 라이방 씌운다느니 하는 지어낸 이야기로 ‘영화이평’ 데뷔 첫 주를 스필버그 놀리는 데 바쳤더니만, 이제는 온 세상 평론가들이 침을 튀기며 치어 리더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관해 써야 한다. 이럴 때는 먼저 대세를 따르는 게 나을 것이다.



이 영화는 취향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추천해도 안전할 것 같다. 이른바 재미와 의미의 두 마리 토끼가 사이 좋게 나란히 달리고 있기 때문에, 두 토끼의 한쪽 귀를 양손으로 번쩍 집어들어도 되고, 싫으면 한 토끼만 데리고 극장 밖으로 나와도 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장르는 혼성적이다. 일단 SF 영화라고 분류할 수 있지만, 액션, 스릴러, 범죄 영화, 드라마, 미스터리, 아니면 몽땅 합해서 ‘울트라 슈퍼 블록버스터’라고 해도 상관없다. 관객들이 할 일은 50년 후의 워싱턴 D.C.를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미래형 리얼리티에 경탄하는 것뿐이다.



이 영화에서 유독 눈에 띄는 언어가 있다면 ‘미리(pre)’라는 단어이다. 주인공은 범죄를 미리 막기(prevention) 위한 범죄 예방기구(pre-crime)의 팀장으로 일하는데, 앞으로 일어날 범죄의 영상을 미리 감지(precognition)하는 능력을 가진 예지자들(pre-cogs)로부터 기초 정보를 얻는다. 요컨대 워싱턴 D.C.라는 배타적인 독립 공간을 설정하고, 범죄 징후가 있는 이질적인 타자들을 미리 뿌리 뽑아버렸으면 좋겠다는 미국인들의 소망이 이같은 ‘미리’ 신드롬의 배경일 것이다.



이러한 발상은 인간이 어떤 행위를 하기 전에 이미 그런 일을 하도록 본질적으로 혹은 운명적으로 예정되어 있다는 전제를 담고 있다. 철학적 오류는 비단 상상 속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가상의 적국을 지목하는 예지자(Pre-cog)로 나서고, 미사일 수백, 수천 기가 날아 올라 범죄국이 될 것이라고 예고된 지역을 통째로 날려버린다. 이같은 적대적 이분법은 자기 이행적 예언이 되어 대도시의 건물이 통째로 반격당하는 악몽으로 되돌아왔다. 전직 대통령 클린턴이 연간 1백20억 달러만 베풀면 지구상에서 테러를 없앨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한다는 사실은 그냥 흘려보내기 어려운 정보다.



이런 현실이야말로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영감을 얻은 진정한 원천일 것이다. 철학적 오류, 정치적 비정함과 타락을 과학으로 합리화하고 영감으로 신비화하는 자국민의 집단 심리와 그 딜레마를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의미 있는 영화라고 생각된다.





웅장해서 감탄하고 유치해서 한숨짓고-김봉석



시 스필버그! 이건 칭찬인 동시에 비난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장단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은 물론, 왜 그가 진정한 거장이 될 수 없는지도 몸소 증명한다.



스필버그는 SF와 스릴러 등 장르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고, 그 테크닉을 훌륭하게 구현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2054년 워싱턴에서 벌어지는 스릴러물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다. 반면 영화에 담긴 사상의 깊이는 도덕 교과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영화사에서 가장 사실적인 전투 장면으로 전쟁의 참혹함을 드러낸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단순한 휴머니즘과 애국주의 선동으로 귀결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스필버그는 늘 뛰어난 장르 영화와 김빠진 휴먼 드라마를 교대로 만들어 왔다. 최근작인 와 <마이너리티>에는 그 두 가지가 함께 들어 있다. 한 면을 바라보면 감탄의 연속이지만, 다른 한 면을 보면 줄짓는 한숨이다.
에서 스탠리 큐브릭에게 도전했던 스필버그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앨프리드 히치콕에게 도전한다.


주인공 앤더튼은 자신이 살인범이 된다는 예언을 보고는 바로 도망친다. 그는 히치콕 영화의 전형적인 주인공, 즉 함정에 빠진 무고한 인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일상의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는 위급한 상황이 닥치고, 음모의 모든 것을 스스로 밝혀야만 한다.



스필버그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앤더튼의 도주를 긴박하게 그려낸다. 1인용 로켓을 달고 추격하는 부하들과 벌이는 공중전은, 스필버그의 탁월한 영상 테크닉을 맛볼 수 있는 뛰어난 장면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곳곳에 볼거리가 산재해 있다. 사회학자와 과학자 등 전문가들이 과학적으로 ‘예측’한 미래 사회의 풍경은 지극히 현실적인 느낌을 주고, 화면 전체를 덮은 탁한 푸른빛 영상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스필버그의 영상 감각은 언제 보아도 혀를 내두르게 한다. 이 시대 최고 장인의 솜씨다. 화면 단 한 구석도 스필버그는 허투루 내버려두지 않는다. 히치콕을 따라가며 ‘무고한 시민’의 결백을 벗겨내는 과정도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단순하다. 원작자인 필립 K. 딕의 장기인 정체성 혼란이나, 불안한 미래의 기억 같은 것들이 사라진 정도는 상관없다. 각색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메이저리티 리포트에 대비되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의미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프리크라임의 정치적 의미 같은 것들을 완전히 날려버린 후 도구로서 쓰이는 예언자들의 인권 침해 정도로만 의미를 두는 것은 허탈하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한 남자의 개인적 야망을 응징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그게 불만이다. 스필버그는 여전히 순진하고, 여전히 설교하려고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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