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급 심사를 꼭 해야겠다면…
  • 이성욱 (문학 평론가) ()
  • 승인 2002.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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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성한다!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 할아버지께. 아버지, 회갑 되는 날 기뻐서 그랬는지 서글퍼서 그랬는지, 술에 취해 춤을 추셨다. 굿거리 장단에 춤사위 음전하게 돌아가는 ‘노인용’ 춤이 아니었다. 1960년대 톰 존스의 ‘터프’한 음악을 틀어 놓고 ‘고고’ 춤을 추셨다. 아니 ‘막춤’을 추셨다는 게 옳다.




속으로 한참 지청구를 했다. “저 분 점잖지 못하게 왜 저러시나.” 나이 든 어른이면 응당 갖추고 있어야 할 ‘전통의 이미지’에서 너무 이탈하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 25년간 홀로 사셨다. 청춘의 한때 평안도 선천군 씨름대회에 나가 소를 탔다는 전설의 용사. 그 좋던 힘, 나이 든다고 마냥 사그라드는 게 아니다. ‘4반세기’ 세월 동안 홀로 드는 잠자리 얼마나 힘들었을까. 한데 오로지 당신들의 ‘점잖은 노년’만 강요한 나였으니!


씩씩거리는 숨소리 하나만으로도 스크린을 쥐어잡던 앤터니 퀸. 그의 자서전 <원 맨 탱고>를 읽었을 때 고개를 주억거렸다. 과연 앤터니 퀸이군! 일흔이 넘어서도 활발하고도 ‘주기적’인, 게다가 대량의 성생활을 한다는 그의 노년에 나는 깊이 찬동했다. 로맹 롤랑의 <괴테와 베토벤>은 젊은 여인 베티나를 중간에 두고 벌어지는 괴테와 베토벤의 ‘치정극’이다. 한참 어린 베토벤에게 베티나를 빼앗기기 싫어 몸부림치는 늙은 괴테(의 ‘성적 욕망’) 앞에서도 나는 가장 압축적인 박수 세 번을 쳤다. 짝! 짝! 짝! 그 박수는 아흔이 다되어서도 ‘불타는 하룻밤’을 위해 여인의 육향을 찾는다는 영화 <브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세군도 할아버지 앞에서도 반복되었다.


나는 반성한다! 아버지 할아버지가 괴테 등등과 전혀 다르지 않은 DNA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음을. 그 서양 노인들에게 나는 점잖음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발랄한 노년에 즐거워했다. 그런데도 유독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만 가혹한 품위와 점잖음으로 노년을 버티라고 강요했으니. 당신들로서는 얼마나 서운했을까. 나의 반성은 난데없이 터져 나온 게 아니다.

<죽어도 좋아>라는, 이미 추방 선고를 받은 영화가 뒤늦은 반성을 세워 놓은 것이다(한데 이 반성도, 우리 사회의 통념이 이렇게 계속 간다면 나의 노년의 성생활도 억압받고 거세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것을 지금부터 문제삼아야 한다는 내 속의 ‘노후대책반’이 가동되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게다가 나는 고마워한다. 천원에 5천원, 만원에 5만원!!! 걸리면 5배 준다는 길거리의 ‘복불복’ 도박판과 다를 바 없어지는 영화판. 해서 오늘도 ‘대박’이라는 가당찮은 백일몽으로 몰려가는 한국 영화판에서 감독이 영화 속 노인 부부와 함께 석 달간 같이 생활하면서, 더욱이 10여명의 스태프와 제작비 2억원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대해. 번질거리는 비닐 같은 영화들만이 몸을 감아 오는 이 시절, 옥양목 질감의 아우라, 다시 말하거니와 진기(眞氣) 가득하고 잔정 그렁그렁 붙어 있는 수공품 같은 영화와 해후하게 해준 사실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종묘로 쫓겨간 노인들에게 먼저 보이자


문제는 그게 아니라고? 성기가 정면으로 나오고 나아가 포르노 혐의를 받을 수도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라고? 지금 당장 인터넷에 들어가 Sex, Porno 혹은 Adult라는 철자를 찍어 보라. 정면만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서, 뒤집어서, 온갖 재주를 부려 찍어놓은 성기 영상들이 줄지어 있다. 철자를 찍는 그 시간, 전국의 초등학생에서 성인 여러분까지 수십만명이 동시에 그 사이트에 접속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은 포르노 사이트 접속률이 세계에서 1, 2위를 다투는 사회라는 말이다.

어설픈 무협지 지식을 빌려 말하면 독은 독으로 풀어야 하거니, 해서 포르노 사이트 중독으로 인해 잘못된 ‘성기 사용법’에 병들어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적절한 성기 사용법을 보여 주어야 한다. <죽어도 좋아> 관람이 그런 것이다. 그러니 이 고마운 영화를 추방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은 하지 말라. 정 등급 심사를 해야겠다면 이렇게 하자. 파고다 공원에서 이제는 종묘로 쫓겨간 할머니 할아버지들, 거기 그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심판을 내려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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