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평-김소희 · 김봉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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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2.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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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쿠지로의 여름
침묵과 소란의
대위법적 조화-김소희



시사회에 다녀온 지 2, 3일 이내에 평을 쓰곤 하던 때와 달리 <기쿠지로의 여름>을 본 지는 열흘쯤 되었다. 가만히 앉아 그 영화를 떠올려 보니 라벨의 <볼레로>를 들을 때처럼 어떤 단순한 리듬들이 오래도록 반복되었던 것 같은 느낌이 남아 있다.


사실 그랬다. 쉰 살쯤 된 아저씨가 아홉 살짜리 꼬마와 함께 길을 떠나 계속 코미디 같은 장난을 벌이다 집에 돌아오는 줄거리이기 때문이다. 전반부는 철없는 아저씨가 꼬마를 궁지에 몰아넣는 분위기다. 그러나 엄마를 찾아 나선 꼬마가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밝혀진 후반 이후에는 아저씨가 꼬마를 즐겁게 해주려고 고안해낸 여름방학 놀이 퍼레이드가 전개된다.


문제는 그 아저씨가 기타노 다케시라는 데 있다. 비트 다케시라는 예명을 사용하는 일본 개그계의 지존이자, 어쩌다 메가폰을 잡은 이래로 대부분의 영화에서 시나리오 작가, 감독, 주연을 겸하면서 칸이나 베니스 영화제에서 상도 하나씩 받아오는 그 감독 말이다.


대위법의 요소들은 따로 떼어놓고 보면 이질적이지만 함께 붙여서 연주하면 독특한 조화를 이룬다. 야쿠자 출신에 이제는 아내에게 빌붙어 지내면서 동네 소년들이나 괴롭히는 50대 기쿠지로. 일하러 나가는 할머니가 차려놓은 외로운 밥상을 매일 마주하는 아홉 살 마사오. 기타노 다케시는 이 둘을 붙여서 따뜻하고 희망 섞인 코미디를 엮어 간다.


두 인물 간의 화음을 뒷받침하는 정서는 쓸쓸함이다. 아빠가 세상을 떠난 뒤 엄마는 ‘돈 벌러’ 나가고 할머니와 단둘이 생활하는 어린 마사오의 얼굴은 해맑기는 해도 외로움과 그리움, 소외감에 오래도록 지친 자취가 역력하다. 그런 아이를 데리고 엄마를 찾아주겠다며 보호자가 된 기쿠지로는 평생토록 아이는커녕 자신의 인생조차 단 한 순간도 책임감 있게 돌보아본 적이 없다는 흔적이 뚜렷하다.


습관처럼 아무 생각 없이 아이를 데리고 떠돌던 기쿠지로는 우연히 아이에게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발견한다. 세상이 요구하는 경쟁력과 전혀 무관하던 기쿠지로의 머리 속은 아이를 즐겁게 해줄 아이디어가 가득 담긴 보물 창고로 돌변한다. 이렇게 해서 사랑을 갈망하던 두 영혼에게 처음으로 따뜻한 불이 켜진다.


기쿠지로는 기타노 감독의 아버지 이름이라고 한다. 그는 황량한 유년 시절을 보냈는데, 아버지와 함께 물놀이를 갔던 단 한번의 기억이 머리 속에 남아 있다고 했다. 천재 감독으로 불리는 장년의 그가 초록 빛깔 나는 유년의 문제로 돌아간 것은 어린 시절 단 한 번 켜졌던 관심의 불꽃이 기억 속에서 다시 타올랐던 것이 아닐까. 정지와 액션, 침묵과 소란함, 쓸쓸함과 장난스러움, 무관심과 애정의 대위법 역시 이 영화가 범작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준다.




세상으로 돌아가는
길 위의 휴가-김봉석



본에서는 기타노 다케시, 아니 비트 다케시를 엔터테인먼트의 신이라고 부른다. 기타노 다케시는 영화 감독으로 활동할 때 사용하는 본명이고, 대부분의 경우는 비트 다케시라는 예명을 사용한다. 일본 사람이 알고 있는 비트 다케시는 시침 뚝 떼고 허무맹랑한 농담이나 독설을 던지거나, 히죽거리며 바보짓을 하는 코미디언의 모습이다.


국내에 개봉되었던 <소나티네>와 <하나비>의 기타노 다케시를 보고 있으면, 차마 상상이 가지 않는다. 저렇게 비장하고, 세상의 모든 고민을 홀로 짊어진 듯한 남자가 가장 웃기는 코미디언이라니. 한국 관객이 알고 있는 기타노 다케시는 거의 한 가지 표정뿐이다. 희로애락을 드러내지 않는, 피로와 환멸만이 가득한 얼굴.

그것은 기타노 다케시의 천 가지 얼굴 중에서 하나의 얼굴에 불과하다. 일본 사람들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아직 우리가 알지 못했던 기타노 다케시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는 영화가 바로 <기쿠지로의 여름>이다.


아이들의 얼굴처럼 해맑은 <기쿠지로의 여름>은 기타노 다케시의 여름 방학 같다. 엄마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난 소년 마사오와 동행했다가 자신의 잃어버린 동심을 찾게 된 기쿠지로처럼, 기타노 다케시는 독설과 분노가 가라앉은 그윽하고 다정한 눈매를 드러낸다.

<기쿠지로의 여름>이 선보이는 장기는 영화 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트레이드 마크인 고요 속의 폭발이 아니라 코미디언 비트 다케시의 좌충우돌이다. <하나비>로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를 받고 영화 감독의 만신전에 오른 기타노 다케시는, <기쿠지로의 여름>에서 한바탕 만담과 헛소동을 풀어놓는다.


<소나티네>가 그랬듯, 지금까지 기타노 다케시가 보여주던 해변의 놀이는 우리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피안의 꿈이다. 하지만 <기쿠지로의 여름>에서 놀이는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휴식이다. 엄마를 만나지 못하고 낙담한 마사오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는 한바탕 굿판이며 축제다.

기타노 다케시는 마사오와 함께 <기쿠지로의 여름>에서 한가로운 휴가를 보낸다. 그 한가로움마저도 진경(眞景)이다. 이곳저곳을 떠돌며 있음직한 사건들을 단순히 나열하는 듯하지만, 사건들은 원숙한 리듬으로 흘러가고 히사이시 조의 정갈한 음악이 투명하게 어울린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에 늘 보이던, 꾸민 듯 꾸미지 않은 여백이 <기쿠지로의 여름>에서는 한없이 다정하게 느껴진다. 다케시 영화의 단골인 비정하고 잔혹한 남자들과 달리, 허세를 부리는 건달 기쿠지로는 외롭고 약한 남자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강한 척하고, 괜히 남들에게 시비를 건다. 그렇게 ‘척’ 하다 보니 잃어버리고 있던 자기 자신을, 마사오 덕분에 깨닫는다. 사라져버린 동심을, 순수함을. <기쿠지로의 여름>은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가 하나의 정점에 올랐고, 이제 다른 곳으로 뻗어갈 것임을 보여주는 쉼표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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