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로 부패하자
  • 안병찬(<시사저널> 편집고문 ·경원대 신방과 교수) (abc@sisapress.com)
  • 승인 2002.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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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핀란드라는 나라에 관해 아는 것이 별로 많지 않았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동부에 위치한 이 나라가 교향시 <핀란디아)의 국민주의 작곡가 시벨리우스를 배출했다는 것, 이 나라가 1939년 소련과 전쟁을 벌여 소수 병력으로 용감무쌍하게 항전했다는 것 정도였다. 사우나 원형이 핀란드의 증기 목욕이라는 것은 동네 목욕탕 안내문에서 읽었다. 내가 핀란드 정보기술(IT)의 실력을 안 것은 연전에 홍콩을 취재할 때였다.






홍콩 신세대는 과소비의 주체로서 ‘부유일족(富有一族)’이라고 불린다. 그들이 특별히 선호하는 상표 통계를 보니 수위를 모두 외래품이 점했다. 청바지의 리바이스, 운동화의 나이키, 손목시계의 카시오, 간이식품의 맥도날드 등이다. 그런데 휴대 전화의 ‘누오지야(諾基亞)’라는 상표에서 막혔다. 중국어로 음역한 다른 상표들은 알 만한데 누오지야라니 도대체 무슨 상표명일까? 과문한 탓에 세계 제일의 핀란드 이동전화 생산업체 상표가 ‘노키아’라는 것을 잘 몰랐을 때였다. 그러니 노키아의 음역인 누오지야를 알아볼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핀란드의 상징적 전략 구호가 ‘자연과 기술이 만나는 나라’임을 안 것은 그 뒤 일이다.



지금 국내 정치는 개판이다. 뇌관이 터진 정국이다. 발가벗겨진 두 번째 총리서리 지명자 역시 여러 가지 의혹에 발목이 잡혀 국회 인준을 거부당했다. 민주당은 ‘병풍’을 비롯한 5대 의혹으로 ‘이회창 때리기’를 계속한다. 이에 밀릴세라 한나라당은 수의 힘을 빌려 ‘병풍 정국’을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기세이다. 연말 대통령 선거까지 탈권(奪權)과 수권의 전면전이 ‘가열차게’ 계속될 모양이다. 그러니 정작 부정과 비리의 본질을 가리는 진실 게임이 발 붙일 여지라고는 없다.



바로 이런 때라 핀란드가 세운 청정(淸淨)한 기록이 우리 시선을 붙잡아 맨다. 독일 베를린에 본부를 둔 국제투명성기구(트랜스페런시 인터내셔널)는 1990년대 후반부터 해마다 국가별 ‘부패 지수’와 ‘뇌물공여 지수’를 발표해온 터이다. 이 조사에서 핀란드가 3년 연속으로 '가장 덜 부패한 나라'로 꼽혔다.



핀란드 인터넷 뉴스는 흥분됨이 없이 이 사실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핀란드는 국제투명성기구 통계 조사에서 최소 부패 국가로 선두를 계속 지키고 있다. 대단히 유력한 부국들이 핀란드 뒤를 따르고 있다.’ 한편 핀란드 청정 비결을 전하는 헬싱키 발신 기사(연합뉴스)는 부패 만연 국가인 한국에서는 생각도 못할 내용이다.


헬싱키 법원에 계류되어 있는 사건 하나를 빼면 언제 부패 관련 사건을 다루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그곳 국립수사국 간부가 말했다는 것이다. 그 계류된 사건이란 노르웨이 회사가 핀란드에서 다목적 쇄빙선을 값싸게 빌려쓰는 대가로 핀란드 고위 공무원들에게 신용 카드를 제공하고 외국 여행 접대를 했다는 내용이다. 이 사건 외에 사람들 기억에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심각한 부패 사건은 30년 전 헬싱키 수도권 건설 당시 일어난 일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한국 ‘뇌물공여 지수’는 21개국 중 18위



국제투명성기구 조사팀장은 핀란드가 깨끗한 사회를 이루는 요인으로 오랜 자치 능력, 자립 경제, 강력한 지방 정부 전통을 꼽았다고 했다. 그 나라 세무 당국은 전국 모든 계좌를 검색할 수 있다고 한다. 각료뿐만 아니라 핀란드 국민 모두 소득과 자산을 매년 공개하도록 되어 있어 부패 행위는 당장 드러나게 된다. 또 핀란드는 전자 정부를 실현해 각 시의회는 회의를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은 국제투명성기구의 ‘2002년 뇌물공여 지수’에서 21개국 중 18위(3.9점)로 하위에 머물렀다. 뇌물공여 지수는 15개 신흥 시장 국가에 주재하는 외국 기업 경영자 8백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해서 작성한다. 최근에 우리는 이른바 ‘투명성’이라는 유행어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고 있다. 아직 핀란드가 왜 이처럼 투명성이 높은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이유를 안다면 ‘최소 부패 모형’을 전세계에 판매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국제투명성기구 조사팀장이 말했다고 한다. 한국의 권력자, 고관대작, 목민관 들, 아무쪼록 최소로 부패하는 법을 강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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