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가 명작인 까닭은?
  • 강철주 편집위원 (kangc@sisapress.com)
  • 승인 2002.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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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삼 외 지음 <추사와 그의 시대>/간송학파의 김정희 읽기



유홍준의 <완당 평전> 정도를 입문서 삼아 읽은 깜냥으로 <국역 완당 전집>을 독파하겠다고 덤비는 일은 상당히 무모하다. 고색창연한 한문투 번역 문장도 문제이거니와, 현대의 한 평범한 독자로서 김정희의 19세기적 박학다식을 따라 가기란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른바 ‘간송학파’ 문도들이 그 스승 격인 최완수에게 회갑 기념으로 헌정한 <추사와 그의 시대>(정병삼 외 지음, 돌베개 펴냄)는 ‘전문가들의 추사 깊이 읽기’ 결과물이다. 이 책에 실린 글 아홉 편은, 개중에 추사의 원전만큼이나 읽기 불편한 것도 아주 없지는 않지만, 아무튼 일반 독자 처지에서는 더 쉽게 추사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주는 구실을 한다.



가령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세한도>와 그 못지 않은 명품으로 꼽히는 <불이선란도> (오른쪽 사진)를 비교하며 추사의 법고창신(法古創新) 정신을 살핀 글을 읽어 보자. 필자(강관식)는 모두에서 평소 최고급 수입 중국 종이를 애용하던 추사가 생애 최고의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세한도>를 왜 거칠고 흔한 편지 용지에 그렸으며, 그것도 여러 장을 이어 붙여 사용했을까, 라고 반문한다. <불이선란도>에 대해서는, 그림보다 글씨에 더 큰 비중을 둔 까닭이 무엇이었을까를 되묻는다. 필자의 그같은 반문과 대답을 번갈아 좇다 보면 이윽고 독자는 글씨와 그림, 고(古)와 신(新), 유(儒)와 선(禪)이 둘이 아닌(不二) 추사 예술의 진수와 만나게 된다.



<추사와 그의 시대>는 ‘사회와 사상’ ‘예술 문화’ 2부로 나뉘었는데, 제1부에는 추사가 살았던 시대의 정치·경제 상황과 주역·고증학·성리학·불교 분야의 사상사적 흐름을 살핀 글들을 한데 묶었다. 제2부에는 사군자·금석문·도자기 등과 관련해 추사와 그 문파에 초점을 맞춘 글들을 모았다. 독자들로서는 아무래도 이 부분에서 더 진진한 재미를 기대할 수 있을 듯싶은데, 흥선 대원군 같은 왕족을 비롯해, 서울의 양반 벌열인 ‘경화세족’이나 평민 지식인인 ‘위항시인’을 막론한 추사 인맥의 쟁쟁한 면면과 구체적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박제가·서유구 등 북학파 학자들의 조선 백자 품평을 분석한 글도 여느 책에서는 쉽게 접하지 못할 재미를 준다.
‘추사이니까 읽어는 보아야지’라고 생각할 만큼 우리 고전에 대한 ‘예의’를 갖춘 독자라면 건질 것이 제법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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