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평-김소희 · 김봉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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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2.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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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지독한 섹스와 사랑 놀라운 구성과 연기-김소희



<피아니스트>는 거의 모든 면에서 예상을 넘어선다. 그 넘어섬이란 것은 훌륭하다거나 전복적이라거나 감정적인 불편함을 초래한다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는데, 어쨌든 모든 것이 나름의 완벽한 조율 속에서 고공 비행을 하는 아주 특별한 영화이다.



줄거리의 갈래가 복잡할 때 감독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방법은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런 기준으로 볼 때 이 영화는 모녀 관계가 기둥이다. 감독은 소유욕과 지배욕이 강한 어머니의 영향력 아래 사회적 성공을 거둔 딸의 병적인 내면 상태에 주목했다.



에리카의 어머니는 딸이 나이 들 대로 든 성인이자 피아니스트로 성공한 사회인인데도 여전히 귀가 시간이나 옷차림을 챙기고, 같은 침대에 누워 자면서 ‘사랑’의 잔소리를 해댄다. 그 억압은 특히 섹스에 대해서 가장 심하게 가해진다. 그에 따라 에리카는 대리석처럼 차갑고 우아하고 정확하지만 한편으로는 남의 섹스를 엿보고 공상하는 이상한 성격이 되었다. 영화는 에리카의 마음 속에 늙은 어머니에 대한 죽이고 싶을 정도의 증오감과 함께, 자신을 희생해 가면서 딸을 이렇게 키워준 고맙고 가여운 어머니라는 이중적 감정이 뒤엉켜 있음을 다양한 방법으로 보여준다.



돌파구를 찾지 못하던 에리카의 내면에 파열구를 내는 남자 제자는 자신의 내면 욕구가 흐르는 대로 움직이는 자연스러운 인격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영화는 에리카에게 그를 통한 구원의 길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도록 멀고 험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청년의 말마따나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에리카는 여전히 피아노를 가르치는 듯한 자세로, 그것도 자신이 공상해온 새도마조히즘적 성행위를 요구한다. 급기야 상처 입은 청년의 내면에서도 잔인성이 튀어나온다. 마지막 장면은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에리카가 숨겨가지고 나온 칼이 겨냥하는 곳은 과연 엘렉트라 콤플렉스인가 아니면 멜로 드라마인가. 결과는 다시 한번 나의 예상을 빗나갔지만, 이제부터 에리카가 비칠거리는 걸음걸이로나마 제 인생을 살게 되리라는 작지만 확실한 신호를 보았다.



이 영화는 희한한 에로 장면을 보고 싶거나, 칸 영화제 그랑프리라는 명성에 관심 있는 관객에게는 만족스러운 영화가 될 것이다. 지적이고 섬세한 것이 지루함과 동의어라고 생각하는 분들일지라도 하나의 걸작, 특히 배우 연기의 한 정점을 구경하는 기회는 될 것이다.






로맨티스트들에게 던지는 도전장-김봉석



마흔이 다 된 에리카와 그녀의 엄마는 한 침대에서 잔다. 엄마는 에리카의 쇼핑에 트집을 잡고, 개인 교습에도 일일이 관여한다. 두 사람은 격렬하게 싸우고, 금방 화해한다. 에리카는 엄마의 품안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아니 엄마의 자장 안에서, 결코 성숙하지 못한다.



억압은 그녀의 모든 것을 뒤틀어버렸다. 그녀는 섹스숍의 밀실에서 포르노를 보며, 휴지통을 뒤져 남자의 정액 냄새를 맡는다. 자동차 극장에서 타인의 정사를 지켜보며 노상 방뇨를 한다. 자신의 성기에 면도칼로 상처를 낸다. 그녀의 욕망은 짓밟혀 있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이성과 광기는 순식간에 균형을 잃는다. ‘음악은 설명이 필요없는 거야, 음악은 감상에 빠지지도 않아’라고 말하는 음악학교의 교수 에리카는 철저히 이성적이지만, 주변의 누구도 알지 못하는 그녀의 뒷면은 본능적인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 클레메가 다정하게 대했다는 이유만으로, 에리카는 자기 제자인 여학생에게 복수해 피아니스트의 생명인 손을 다치게 한다. 피아노를 칠 때를 제외하고는 그녀의 이성은 절대로 통제되지 않는다.



클레메는 이상적인 남자다. 가장 남성적 스포츠인 아이스하키 선수이면서, 섬세하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전기공학을 전공하면서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남자. 클레메는 이성과 광기의 조화로운 소유자이다. 클레메는 에리카의 납득할 수 없는 ‘사랑’에 선뜻 동조할 수 없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자신을 치욕스럽게, 폭력적으로 대해 달라는 에리카의 요구에 클레메는 당황한다.



‘광막한 황야로 나를 몰아붙이는 네 욕망은 헛되고 헛되구나.’ 미하엘 하네케 감독은 일반적인 사랑이나 증오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하네케는 지독한 냉정함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린 한 인간의 정신적 황혼을 그려낸다. 고상하고 우아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피아니스트>에 세인들이 ‘저급’하다고 비난하는 새도마조히즘의 세계를 그려 넣는다.



고상함과 위엄의 대가로 눌러버린 욕망은 어떻게든 비집고 나오게 되어 있다. 클레메는 “당신은 사랑이 뭔지도 몰라요. 혐오감만 심어줬어요”라고 말하지만, 그것 역시 사랑이다. <피아니스트>는 사랑에는 고상함과 순수함만이 존재한다고 믿는 로맨티스트에게 던지는 도전장이다. 안전하고 평온한 사랑만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아예 보지 않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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