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평-김소희 · 김봉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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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2.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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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니다코
난감해서 이상한 미국 중산층 풍경-김소희



막약 당신이 <도니 다코>를 보고 나서 줄거리 파악이 안되더라도 난감해 하지 말라. 쭈뼛거리지 말고 내키는 대로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어도 괜찮다. 어떤 고수라도 자신있게 이 영화에 대해 말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첫 20분은 천재파와 애숭이파로부터 두루 호감을 살 것 같다. 간단한 이미지 몇 개만으로 미국 대도시 근교에 사는 부유한 중산층 가정의 풍경을 한달음에 묘사해내는 솜씨가 여간 아니다. 가족 개개인의 캐릭터도 복합적이다. 영화 제목과 같은 이름을 가진 도니 다코는 그 중에서 제일 특이한 존재다.



몽유병 상태로 집안과 학교를 떠돌며 돈 키호테처럼 사고를 치던 도니 다코는 지붕 위로 떨어진 747 제트 엔진 때문에 자신의 둘시네아인 그레첸 앞에 주검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 마지막 장면은 참 이상하다. 내용이 영화 초반부에 나오는 장면을 다시 반복한 것일 뿐더러, 처음에는 토끼 인간 덕분에 목숨을 건졌던 도니 다코가 이번에는 재난을 피하지 못했다. 그의 믿음대로 시간 여행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가 심령 세계를 다루는 SF인지 사춘기 소년의 성장 이야기인지 혹은 10대용 코믹 뮤지컬에 사회 비판을 뒤섞은 것인지, 그도 아니면 이 모든 것을 합해 놓은 것이 오늘날의 미국이라고 말하는 묵시록적인 영화인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이 영화가 탄생한 배경 또한 <도니 다코>를 신화화하는 데 한몫 한다. LA에서 대학을 갓 졸업한 리처드 켈리가 <도니 다코>의 시나리오를 들고 제작자들을 찾아다녔을 때 눈길을 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유명한 여배우 드류 배리모어가 이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투자하겠다고 알려왔다. 의아해 하는 젊은이에게 야심찬 배우가 말했다. “당신의 머리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 복잡한 머리에 투자하겠어요.” 투자뿐만 아니라 동정적인 영어 선생님으로 출연까지 했다.



영화 속에서 여자 친구 그레첸이 도니 다코에게 말한다. “넌 이상한 애야.” 미안하다는 도니에게 그레첸은 “아니, 그건 멋지다는 뜻이야”라고 덧붙인다. 나 또한 이 영화 <도니 다코>와 주인공 도니 다코에게 이렇게 말해주겠다.
“넌 이상해.”




뒤틀려 흐르는 시간의 뫼비우스띠-김봉석



<메멘토>가 관객을 놀라게 했던 이유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맞물리는 시간적 구성 때문이었다. <식스 센스>의 마지막 반전은 이전까지 진행된 영화의 모든 부분들을 다시 해석하게 만들었다. <메멘토>와 <식스 센스>는 내용 자체보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 때문에 더욱 눈길을 끌었다.


리처드 켈리의 감독 데뷔작 <도니 다코>는 마치 <메멘토>와 <식스 센스>를 합쳐 놓은 것 같다. 인과 관계는 뒤집혀 있으며 꿈과 현실이 뒤섞여 있고, 마지막 반전은 <도니 다코>의 모든 것을 재규정한다. 굳이 장르 구분을 한다면 <도니 다코>는 초현실주의적인 스릴러 정도가 된다.


리처드 켈리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풍부하게 복선을 깔아놓는다. 도니 다코는 폐가에 불을 지르고 경찰에 체포된 적이 있었고, 정신 상담을 받으며 약을 복용하고 있다. 부모에게 욕을 할 정도로 심리 상태가 불안정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프랭크는 단지 도니 다코의 무의식이고, 모든 것은 도니 다코의 망상일 뿐일까?


하지만 모든 것은 수수께끼일 뿐이다. 비행기 엔진은 어디에서 왔는지, 왜 가면을 벗은 프랭크의 눈은 뻥 뚫려 있는지, 왜 할로윈의 극장에 공포 영화와 함께 <예수의 마지막 유혹>이 걸려 있는지. 이런 여러 가지 의문점은 마지막 순간까지 해결되지 않으면서 <도니 다코>가 스릴러인지, 공포 영화인지, 청춘 영화인지 쉽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리처드 켈리는 <도니 다코>가 시간과 희생에 대한 드라마임을 알려준다.


시간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처럼 직선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시간은 때로 뒤집혀 거꾸로 흐르기도 하고, 중첩되기도 한다. <도니 다코>의 시간도 그렇게 앞뒤가 맞물리며 뫼비우스의 띠처럼 뒤틀린다. 그 뒤틀림을 만들어내는 것은 희생이다. 청춘의 파괴적인 에너지를 새로운 창조의 기운으로 바꾸어내는 것. ‘희생’이라는 마지막 퍼즐 조각으로, <도니 다코>의 수많은 수수께끼와 복선들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도니 다코>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통찰력으로 그려낸 불안한 청춘의 희생과 구원의 판타지다. 난해하면서 매혹적이고, 섬뜩하지만 아름다운 환상들로 가득한 판타지.


<도니 다코>는 난해하다. 여기저기 흩어진 단서들을 짜맞추며 가는 일은,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는 일종의 고문이다. <메멘토>를 좋아했거나, 초현실주의적인 이야기를 즐기는 편이라면 <도니 다코>를 적극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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