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그대들’이 부럽다
  • 서명숙 (편집위원) ()
  • 승인 2004.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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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세대는 고구려사를 왜곡하는 중국 정부기관의 홈페이지를 찾아내 잘못된 내용을 부지런히 알리고, ‘빼앗긴 금메달’을 되찾는 일에도 열성이다. ‘알아서 기는’ 기성세대와 달리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
유시민 의원은 세상이 다 알아주는 싸움꾼이다. 보수와도 싸우고 야당과도 싸우고 기성 언론과도 싸우고, 심지어는 자기 당 안에서도 싸운다. 대한민국 대표 싸움꾼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런 그가 두어 달 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요즘 젊은 친구들, 정말 대단해요. 나도 미션 스쿨 다니면서 어거지로 교리 공부 했지만 거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생각은 차마 못했는데.”

그가 혀를 내두르면서 한 수 접고 들어간 상대는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종교 수업을 거부하며 1인 시위를 벌이다가 제적된 한 고등학생이었다. 그 소년은, 삼엄한 군사정권 아래서 그 유명한 ‘항소 이유서’를 써내고, 국회에 처음 등원하는 날 양복 차림을 거부한 유시민이 소싯적에 꿈도 못 꾼 일을 시도한 것이다.

‘무서운 아이들’이 어디 그 소년만이랴. 대한민국 도처에 널려 있다. 그들에게는 곁에 있던 피붙이가 한순간에 죽어나가는 전쟁의 쓰라린 상흔도, 한 숟가락이라도 더 퍼먹기 위해 식구들끼리 눈알을 부라리던 처절한 배고픔도 없었다. 독재 치하에서 숨 죽여 가면서 두런두런 정권을 비판하던 기억도, 미국이 제공한 잉여 농산물로 만든 거친 옥수수빵과 뻑뻑한 우유를 배급받아본 기억도 없다.

그들의 사전에 ‘눈치’와 ‘포기’는 없다

경험이 없다 보니 힘 있는 사람 앞에서 알아서 기거나, 부당한 일이라도 목구멍이 포도청이어서 그냥 견디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고서도 힘 없는 나라의 백성이므로 지레 포기하는, 우리 나라 기성 세대에게는 몸에 절로 밴 처세술을 체득했을 리 만무하다. 체험이 없을 뿐더러,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남의 눈치를 볼 필요를 느끼지 않고, 웬만해서는 주눅 들지 않으며,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라치면 반드시 항의하거나 시정을 요구한다. 나라 안의 일이건, 나라 밖의 일이건 간에.

그들은 고구려사를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하는 중국 정부나 성, 각급 기관의 홈페이지를 찾아내 내용을 이곳저곳에 부지런히 알린다. 중국 홈페이지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쓴 세계의 홈페이지들도 귀신같이 찾아내 정정을 요청한다. 일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망언을 한 일본 정치인의 홈페이지를 공격해 순식간에 다운시키고야 만다. 한국의 정부나 기관들이 수수방관하거나 일손이 부족해 사실상 포기하다시피 한 일을 그들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최근 ‘빼앗긴 금메달’을 놓고서도 주저없이 행동에 돌입했다. 그들은 국제올림픽위원회나 주최국인 그리스 올림픽위원회 홈페이지에 항의 글을 올리는 한편, 외국의 언론 보도가 있고 난 뒤에야 재심을 요청한 우리 나라 체육 관계자들의 굼뜨고 부적절한 현장 대응 능력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국수주의·패권주의로는 흐르지 말아야

상당수 기성 세대는 이런 젊은이들을 마뜩찮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듯하다. 밥벌이의 어려움을 알지 못하고, 위아래를 분간하지 못하며, 약소국의 처지를 헤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라 경제의 어려움과 취업난이 겹치면서 ‘배고픈 시절을 돌파해온 기성 세대의 저력’을 높이 평가하는 반면 ‘하릴없이 빈둥대면서 컴퓨터나 들여다보는 젊은 세대의 한심함’을 한탄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있다.

그러나 나는 눈치를 보지 않고 할말은 하는 젊은 세대가 좋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약소국’이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많이 들은 나머지 나라 바깥에서 벌어진 문제에는 지레 주눅부터 들고 마는 우리와 달리 국제 사회에서 당당하게 제 몫과 바른 대접을 요구하는 요즘 젊은이들이 자랑스럽다.

물론 ‘젊은 그대’를 향한 걱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과 권리 의식이 협애한 국수주의나 과격한 패권주의로 흐르지는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국가·민족·인종의 가치와 생존을 우리 것만큼 존중하고 그들과의 공존을 도모해야 한다. 하기야 이런 당부마저도 지구촌을 실제로 체험한 젊은 세대에게는 노파심이라고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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