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하지만 절실한 계약 결혼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4.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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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미치고 싶을 때>가 독일 영화로는 18년 만에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받았을 때, 서른한 살 젊은 감독 파티 아킨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거장들의 신작은 물론 언론이 주목했던 화제작을 밀치고 수상한 데다가 영화가 ‘만만한’ 멜로 영화의 외양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 얼굴 시벨 케킬리가 포르노 배우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심은 더욱 뜨거웠다.

작품은 독일 국적이지만 <미치고 싶을 때>는 터키 사람들의 정서를 더 잘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터키는 전쟁 때 독일을 도와 참전한 맹방이고, 터키인들은 전후 복구 과정에서 궂은일을 도맡으면서 독일 사회의 기층부를 구성했다. 신인 파티 아킨 감독은 바로 그런 터키계 독일인이다. 이 영화가 딱히 자신들의 존재 조건을 들여다보는 작품은 아니지만, 터키인의 사고 방식과 문화가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것은 그런 내부자 시선 덕일 것이다. 진행 중 짬짬이 터키 악사들이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익살맞으면서도 애절한 터키 연가를 들려주는 형식 실험도 재미나다.

젊은 여성 시벨(시벨 케킬리)과 중년에 접어든 차히트(비롤 위넬)는 병원에서 마주친다. 시벨은 손목을 그었고, 차히트는 약에 취해 질주하다가 벽을 들이받았다. 둘 다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살을 기도할 만큼 막막한 심경이다.

절망의 극한에서 나누는 사랑, 혹은 파국

시벨은 자신을 옥죄는 집을 벗어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남자와 손을 잡았다는 이유로 오빠들에게 코가 비뚤어지도록 맞았다. 합법적으로 집을 벗어나는 길은, 터키계 남자와 결혼하는 길뿐. 시벨은 다짜고짜 차히트에게 터키계냐고 물으며 결혼해 달라고 엉겨붙는다.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차히트는 어찌된 일인지 그 요구를 외면하지 못한다.

차히트는 사랑했던 아내와 사별한 뒤 삶을 방기하다시피 살아가는 남자다. 항상 약에 절어 살고, 집은 돼지우리를 방불케 한다. 감독은 둘이 처한 객관적인 어려움을 설명하기보다는, 둘의 심리 상태에 초점을 맞춘다.

거짓 결혼식을 올리고, 거주지를 한 데 합치면서 두 사람의 어색한 동거가 시작된다. 식사도, 청소도 함께 하지만 잠자리는 없는 동거이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계약 결혼이 성립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두 사람은 의식했건 못 했건 서로에게 기댈 여지가 있음을 간파한 상태이다.

둘이 감정을 키워가는 과정은, 요즘 감성으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복고적이다. 한참 뒤 엉겁결에 잠자리를 하게 되었을 때 시벨은 “이러면 진짜 부부가 될 것 같다”라며 고개를 돌린다. 그런 시벨을 차히트 또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일단 감정이 생기자 질투는 불가피하다. 그로 인해 차히트의 인생은 파국을 맞게 되고, 그 파국을 견디는 힘도 시벨로부터 얻는다.

<미치고 싶을 때>는 절망의 극한에서 나누는 사랑 이야기인 미국 영화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를 연상시킨다. 원제는 ‘벽을 향해’. 차히트가 약에 취해 벽을 향해 차를 모는 첫 장면에 영화의 이미지가 집약되어 있다.

월드컵을 거치면서 한국인과 터키인의 심성이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이 영화를 보면 적어도 가정과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사고 방식만큼은 상당히 닮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의 여자는 보호해야 할 딸과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으로 구별된다. 남성들의 관념 속에만 존재하는 칸막이에 갇혀 신음하는 것은, 자신들이 보호하고자 하는 바로 그 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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