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도 공범자다
  • 서명숙(편집위원) ()
  • 승인 2004.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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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시험에서 ‘핸드폰 부정 사건’이 터지자 어른들은 세태를 한탄하며 갖가지 제도적 보완책을 내놓고 있다. 보완할 부분이 있다면 보완을 서둘러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어떤 수를 쓰더
 
어떻게 이런 일이! 2005년 수능 ‘핸드폰 입시부정 사건’을 접한 기성세대의 반응은 한마디로 ‘경악’으로 요약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커닝은 그리 놀랄 일만은 아니다. 불로소득을 탐하는 것은 인간의 사악한 본능 중 하나다. 더군다나 두둑한 사회적 보상이 기다리는 시험일수록 수험생을 유혹에 빠뜨릴 공산이 크다.

모든 경전에 두루 해박하고 군자의 도리와 염치를 아는 나라의 인재를 선발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는 전통 유교 사회의 과거제도는, 다른 한켠으로는 합격만 했다 하면 팔자가 단박에 달라지는 ‘로또’였다. 자연히 부정을 향한 유혹도 그만큼 강렬할 수밖에.

감독관들은 수험생의 신분을 일일이 확인하고 소지품을 철저하게 검사했지만,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수재들의 머리 굴리기 또한 만만치 않았다. 만두 속에 커닝 종이 끼워넣기, 사전에 시험 문제 빼내기, 관리원인 척 고사장에 출입해 가르쳐 주기, 답안지에 특수 표시를 하여 점수를 높이 매기기, 속옷에 깨알처럼 경전을 적어놓기 등 신출귀몰, 기기묘묘한 수법이 동원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큰 죄일 줄 몰랐다니

이번에 대규모 부정 행위가 이루어진 수능시험은 비록 과거 시험만큼은 아닐지라도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는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관문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필사적으로 시험 준비에 매달리지만, 개중에는 쉬운 길을 택하려는 수험생도 있기 마련이다. 기성 세대는 휴대전화를 이용한 신종 수법에 혀를 내두르지만, 전자제품에 익숙한 신세대들로서는 잔머리만 조금 굴리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필자가 정작 충격을 받은 것은 관련 학생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경찰 수사에서 이들은 “(커닝이) 그렇게 큰 잘못인 줄 미처 몰랐다” “재밌는 경험 한다는 생각으로 무심코 가담했는데 이렇게 큰일이 되고 말았다”라고 진술했다.

커닝은 인류 사회에 시험이 도입된 이래로 벌어진 일인 동시에 명백한 지적 범죄 행위이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그 날을 대비해온 응시자가 정당하게 누려야 할 자리와 영광을 빼앗는 짓이다. 더군다나 제도 교육 12년 동안의 학업적 성취를 측정하는 수능에서의 부정 행위는 동료 학생들이 그동안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을 가로채는 행위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연루된 학생들은 가책감보다는 당혹감을 더 많이 드러내는가 하면, 언론의 관심과 사회의 비판이 지나치다는 반응마저 보였다.

납득하기 힘든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커닝과 내신 부풀리기가 일상이 되다시피 한 학교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정직’을 가르쳐야 할 학교에서 다른 학교와의 경쟁을 위해 요령과 편법을 마다하지 않고, 부정 행위를 엄히 다스려야 할 선생님이 심지어 커닝을 조장하는 일까지 하는 마당에 어찌 학생들이 커닝이 죄라는 걸 깨달을 것이며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인가. 학교 안에서 커닝을 묵인받은 학생들이 더 큰 시험에서 커닝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자고로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언론은 배후 세력 어쩌고 하지만, 학부모야말로 배후 세력이 아닐까 싶다. 시험 당일 동네 뒷산에 올랐다가 장엄하고도 두렵기 한량없는 광경을 목도했다. 평소에도 백일기도가 거행되었던 사찰 주변 주차장은 물론 약수터 입구까지 차가 즐비했고, 대웅전을 빽빽하게 메운 학부모들은 넋 나간 표정으로 자식의 합격을 위해 연신 엎드려 절했다. 듣자 하니 교회와 성당도 사람들로 넘쳐났다고 한다. 무릎이 다 까질 지경으로 자식의 합격을 기원하는 부모의 소망을 아는 자식이라면 제 실력을 넘어서는 성적을 도모하는 무리수를 둘 수도 있다.

이번 사태가 터지자 어른들은 세태를 한탄하며, 몸수색을 철저히 해야 한다, 내신을 강화해야 한다, 본고사를 부활해야 한다 등등 갖가지 제도적 보완책을 내놓고 있다. 물론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보완을 서두를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어떤 수를 쓰더라도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학부모와 교사 들의 의식이다. 청소년들이 무의식중에 어른들의 가치관과 태도를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이른바 ‘무언의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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