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늦추는 ‘명절 효과’는 없다
  • 전상일 (환경보건학 박사, wwweandh.org) ()
  • 승인 2004.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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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사망자 30여만 명 조사 결과, 생일·크리스마스 전후 사망률 거의 같아
오랫동안 임종 환자를 돌보아온 사람들에 따르면, 죽음이 임박한 환자들 중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목숨을 연장해 ‘그 순간’을 맞이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임종을 앞둔 사람이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부모나 자식, 배우자가 나타나면 얼굴을 본 뒤 곧바로 숨을 거두는 사례는 누구나 한번쯤 직·간접으로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과연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정신력으로 통제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같은 호기심은 일반인뿐만 아니라 학자들을 자극했다. 주로 종교적 기념일이나 민족의 명절, 그리고 자신의 생일을 기준으로 이른바 ‘명절 효과’를 분석한 연구들은 실제로 인간의 의지가 죽음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암시하는 결과를 보고해왔다.

크리스마스 전후 사망률이 24%나 차이가 난 까닭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유태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유태인의 가장 큰 명절인 ‘유월절’ 뒤에는 심혈관질환 등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유월절 전보다 8%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동부 지역 코네티컷 주에 사는 나이 많은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크리스마스 전후의 사망률이 24%나 차이가 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의 사망률을 다른 민족 출신과 비교한 연구에서, 중국 혈통의 미국인들은 추석 전의 사망률이 추석 후보다 35%나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중국 혈통이 아닌 사람들에게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생일도 죽음을 연장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한 연구들도 있다. 생일 전에 사망률이 낮고 생일 이후에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정신과 육체 사이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비한 메커니즘이 존재하며, 적어도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는 순전히 환자 자신의 의지만으로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린다. 하지만 누구도 둘 사이의 관계를 입증할 만한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미국 의학협회지에 명절 효과를 반박하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 암연구소 연구진은 지난 12년 동안 암으로 사망한 30여만 명의 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자신의 생일·크리스마스·추수 감사절과 같이 특별한 날 전후에 이렇다 할 만큼의 사망률 차이가 없었다. 연구진은 “임종을 앞둔 사람들은 자신에게 의미 있는 날을 지내고서 눈을 감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많이 들어왔으나, 이를 일반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명절 효과를 주장한 기존 연구들 중에 연구 방법론에 결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의 정신 및 행동과학 전문가인 토머스 와이즈 교수는 “인간이 명절 효과 가설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는 출생 이후 가장 중요한 사건인 죽음에 대해 인간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라고 지적한다.

명절 효과에 대한 논란은 그 진위 여부를 떠나 인간이 무엇으로 사는지에 대해 새삼 돌아보게 한다. 살아 있는 동안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에 대해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것이 육체와 정신을 더욱 건강하게 하는 비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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