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 외친 ‘대지’의 여인
  • 표정훈 (출판 평론가) ()
  • 승인 2005.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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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벅 평전>/개인적 상처와 치부까지 파헤쳐
펄벅(1892~1973)만큼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외국 작가가 또 있을까? 영화로도 친숙한 작품 <대지>나 한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 <살아 있는 갈대>를 통해서도 그렇거니와, 부천시 심곡동에 혼혈 어린이를 위한 소사희망원을 열고, 혼혈이나 장애 등의 문제로 소외된 어린이들을 돕는 펄벅인터내셔널을, 한국을 모태로 세계 각국에 설립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천시 당국은 펄 벅 기념관 건립 계획을 재작년에 발표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으니, 펄 벅은 단순한 ‘외국인 작가’ 이상의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오기에 충분하다.

그런 펄 벅의 일생을 담은 이 책은 평전 읽기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유감 없이 선사한다. 좋은 평전을 읽는 즐거움을 몇 가지 추려보면 이렇다. 해당 인물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측면을 새롭게 알게 되는 것, 인물이 활동했던 시대의 역사적·정치적·사회적 배경을 조망하게 되는 것, 인물의 내면 풍경을 들여다보는 것, 인물의 삶에 관해 시시콜콜 자세하게 알게 되는 것. 이 책은 평전이 갖추어야 할 이 네 가지 사항을 모두 충족시킨다.

예컨대 펄 벅의 삶에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 딸 캐럴 그레이스 이야기가 있다. 1920년 딸 캐럴을 낳을 때 펄 벅은 아이의 병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캐럴은 대사장애유전병인 페닐케톤뇨증을 앓고 있었다. 펄 벅은 심지어 아이가 장애라는 사실 자체를 상당 기간 숨기기까지 했다. 장애인에 대한 극심한 편견이 팽배했던 사회 풍토에 펄 벅도 지고 말았던 것. 심한 정신지체를 안고 살아야 하는 캐럴과 자궁에 종양이 생겨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아픔을 견디어 내는 펄 벅의 고뇌가 가슴 찡하게 다가온다. 책은 나이가 들면서 사회에서 영향력을 잃어가고 문학계에서도 잊혀 가는 모습과, 말년에 사귄 부정직한 젊은 애인과의 추문도 여실하게 담고 있다.

그런 개인적 고뇌의 건너편에는 한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훨씬 뛰어넘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정력적인 사회 활동가로서의 펄 벅이 있다. 인도 독립, 여성의 사회적 기회 증진 운동, 중국 구호, 미국의 중국인 이민 배제법 철폐, 조선 해방, 군축과 평화운동 등 당대의 첨예한 사회적·정치적 문제의 한가운데로 뛰어든 삶이었다. 오죽하면 ‘혼자서 정의의 십자군 전쟁을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았을까.
세계 인권운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 재조명

하지만 펄 벅의 전쟁은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의 높은 파고까지 극복하지는 못했다. 다분히 전투적이기까지 한 적극적인 인권 활동은 우파가 펄 벅을 환영하지 않는 요인이 되었다. 그렇다고 펄 벅이 좌파였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펄 벅은 공공연한 반(反)공산주의 발언으로 좌파의 미움을 샀다. 좌우의 이데올로기보다는 보편적인 인간성 그 자체에 충실하고자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에서 볼 때 일종의 경계인이었던 펄 벅은 동양과 서양, 구체적으로는 고국인 미국과 제2의 고국이라 할 중국 사이의 경계인이기도 했다. 생후 5개월 때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성장하고 40여 년을 중국에서 보낸 펄 벅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이 책은 격동의 20세기 초중반 미·중 관계사로도 읽을 수 있다.

당대 중국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펄 벅의 통찰은 놀라우리만치 정확했다. 펄 벅은 장제스가 중국 인민에게 서양의 대리인, 즉 종속성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져 결국 외세 혐오 감정의 표적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또한 ‘공산주의자들은 장제스 정부의 부패를 바탕으로 번성하고 전국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겠지만, 그들을 통해 더 힘든 시기가 닥칠 것’이라고 예견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세계의 시민이 아니면 내릴 수 없는 정확한 판단이었던 셈이다.

저자는 세계 인권운동사에서 펄 벅이 차지해야 마땅한 위치,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정치·문화 교류사에서 펄 벅이 지니는 의미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 저자의 지적에서, 이 책이 펄 벅의 합당한 위치와 의미를 복원하려는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성공 여부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미국의 대내외적 현실과 관련해 범상치 않은 여운을 남기는 저자의 한마디를 인용하고자 한다. ‘내 평생의 단 한 권의 책’이라며 이 책을 통해 만난 펄 벅의 삶에 경의를 표했다는 미국 대통령 부인 로라 부시는 이 대목을 어떻게 읽었을까? ‘그녀의 강연과 글은 미국의 양심이라는 문에 못을 박았던 한 가지 주제를 직설적으로 반복하고 있었다. 그녀는 평등을 요구했다. 남성과 여성, 흑인과 백인, 아시아인과 서양인의 평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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