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무엇을 불러왔나
  • 강철주 편집위원 (kangc@sisapress.com)
  • 승인 2005.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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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현대 중국은 마오의 작품”
 
같은 혁명가인데도 레닌과 마오쩌둥은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둘 다 세계사를 뒤흔든 문제적 인물이었지만, 해외를 떠돌며 풍찬노숙하던 레닌이 음습한 지략가의 모습이라면, 마오쩌둥은 대륙의 근성을 닮은 듯한, 우직한 뚝심의 민족주의자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마오쩌둥을 떠올릴 때면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인물과 역사의 묘한 불일치가 생각나고는 해서 흥미롭다.
그런 생각은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저자인 모리스 마이스너도 비슷한 것 같다. 이 책에서 저자가 내리는 마오쩌둥에 대한 평가는 사뭇 냉정하다. 세상에 알려져 있는 마오쩌둥에 대한 온갖 덧칠-무조건적인 찬양이나 비판-을 걷어내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마오쩌둥의 의도를 균형 잡힌 안목으로 평가한다. 그에 따르면, 마오쩌둥은 중국에 ‘부강’과 ‘평등’을 동시에 가져오고 싶어했다. 그래서 부단히 중국 근대화를 추구하면서도 공업과 농업, 도시와 농촌, 정신 노동과 육체 노동의 격차를 없애려고 했다. 그의 최대 실정으로 꼽히는 농촌의 급진적인 인민공사화, 무모한 대약진운동, 광란의 문화대혁명도 실은 사회적 차별을 해소하고 공산당의 관료주의화를 억제하려는 측면에서 시도한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마오의 혁명을 부르주아가 참여하지 않았지만, 결국은 부르주아 혁명이었다고 평가한다. 마오의 혁명은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겨냥했지만, 실패했다고 단언한다.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이 가져온 사회적 산물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와 사회라는 것이다. ‘(마오쩌둥 이후) 중국 경제의 자본주의적 성격은 더욱 분명해졌으며, 국유 기업 사유화가 가속화했고, 외국 자본의 투자는 훨씬 큰 규모로, 점점 더 자본주의 기업에 유리한 조건으로 확대되었다. 주식 시장이 경제 생활에서 갈수록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이윤이 경제를 결정짓는 판단 기준이 되었다.’
이같은 ‘현재’의 중국은 이미 마오 혁명 때의 중국이 배태하고 있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마오의 혁명이 엄청난 희생과 정치적 실책을 불러오기는 했지만, ‘중국과 중국인들은 혁명 이후의 변화로 막대한 이득을 얻었다.’ 통일과 독립, 토지 개혁, 산업화는 장제스의 국민당도 공유했던 목표였지만, 근대화의 필수 조건인 ‘농촌의 혁명적 전환’은 마오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마오의 업적은 자본주의 멍석 깔기”

그렇다고 저자가 ‘마오의 중국’을 절대선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예컨대 저자는 마오의 오류를 지적하는 데 인색하지 않지만,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이 가능했던 물적 토대를 마오의 혁명에서 찾는다. 정치가는 의도가 아니라 결과로 평가받는다는 복선을 깔면서도, 마오의 최대 업적은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중국의 경제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증거로 저자는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 경제가 대약진운동 실패와 문화대혁명의 참담한 파괴 속에서도 성장을 계속했다는 통계 자료를 제시하고, 덩샤오핑의 개방 정책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마오쩌둥이 미리 멍석을 깔아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혁명가를 기대했던 독자라면 경세가를 강조하는 저자의 마오쩌둥 평가가 덜 드라마틱할 수도 있겠지만, 마오쩌둥 이후 중국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절묘한 줄타기(모순과 잠재력)의 본질을 깨닫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다. 원래 제목이 ‘마오의 중국’이었지만 현대 중국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덩샤오핑과 그 이후의 시대도 포괄적으로 다루어 현대 중국의 갈길을 짐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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