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와 중국문화 깊이 알기
  • 표정훈 (출판 평론가) ()
  • 승인 2005.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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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힐의 향연-한자의 신화와 유토피아>
 
최근 우리 도서 시장에서 눈길을 끄는 현상들 가운데 하나로 <마법 천자문>(아울북)이나 <살아 있는 한자 교과서>(휴머니스트) 같은 책들이 큰 인기를 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한자 배우기라는 유행병(?)이 돌고 있다. 입사 시험에서 한자 시험을 본다거나 초등학생들이 한자능력검정시험을 본다거나 하는 일도 별다르게 다가오지 않는다. 국제 정치 및 경제 무대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확대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현상이다. 심지어 한·중·일 동북아 삼국이 한자 문화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이른바 동북아 시대 가능성의 중요한 문화적 기반을 찾기도 한다.
홋카이도 대학 교수 다케다 마사야(武田雅哉)가 쓴 이 책은 그런 현실에 관해 깊이 성찰하게 만든다. 왜 하필 창힐인가? 한자를 만들었다는 중국 고대 전설 속의 문화적 성인(聖人) 창힐은 네 개의 눈을 갖고 있었다. 저자는 흥미롭게도 네눈박이 성인이 발명한 것을 두눈박이인 우리가 배워서 사용해야 하니, 버거운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지적한다. 요컨대 중국인들도 한자와 한문을 배우고 활용하는 데 각고의 노력을 해야 했고, 한자 문화를 보전하느라 큰 고생을 했다. 때문에 중국인들도 한자에 대해 회의하거나 혐오하고, 때로는 한자와 싸우기까지 했다.

 
중국인들은 16, 17세기에 예수회 선교사들이 소개한 라틴 알파벳의 표음성에 넋을 잃었다. 읽는 사람과 지역에 따라 발음이 다른 한자의 표의성이 골칫거리였기 때문이다. 17세기 학자 방이지(方以智)의 말이 중국인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유럽처럼 사물마다 음을 합성하고 음에 따라 문자를 구성하면 음이 중복되는 일 없이 뛰어난 문자가 되지 않겠는가?’ 이후 중국의 많은 학자들이 나름의 표음식 문자를 고안했고, 20세기 초까지 무려 100여명의 학자들이 표음식 기호나 문자를 만들어냈다.

한자는 '보편 언어’이며 ‘진정한 문자’인가

 
그런 노력들이 창힐의 유산을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한자 사용을 쉽게 만들려는 노력은 현대에 들어와서도 꾸준했다. 대표적인 것이 오늘날 중국에서 통용되는 간체자와 그 표음체계인 한어 병음 방안이다. 그 방안이 결정되기까지 1천여 종의 표음문자 방안이 제안되었다고 하니, 눈물겨운 노력이다. 그런데 정작 16세기 예수회 선교사들은 중국을 유럽에 소개하면서 한자를 바벨탑 붕괴 이후 잃어버린 아담의 언어에 필적할 만한 ‘보편 언어’이자 ‘진정한 문자’로 부각했다. 당시 예수회 선교사의 글 가운데 한 대목을 보자.

‘이 나라에서는 상이한 다수의 언어가 사용되는데, 말로는 서로 이해할 수 없지만 필기로 하면 널리 일반적으로 통한다는 사실은 정말로 경이롭다 할 만하다. 그 이유는 하나의 기호 혹은 문자가 사람에 따라 상이한 음으로 발음되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이 표시하는 사물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접 지역의 사람들은 중국인과 의사를 소통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한자가 지역마다 발음은 달라도 뜻을 공유하니까 보편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상당 부분 잘못된 것이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아도 필담으로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의사 소통이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의 태도는 어떨까? 일본인들은 한자나 중국 문화에 대해 별다른 이유 없이 고맙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또한 그런 태도는 한자에 대한 혐오나 일종의 문화적 콤플렉스와 표리를 이룬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를 돌이켜보게 된다. 기록 문화 유산의 대부분이 한자·한문으로 되어 있으며, 최근에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라는 현실과 직면하고 있는 우리는 과연 한자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전에 생각해 볼 점은 한자가 완료형의 문자가 아니라 늘 새로운 전망을 필요로 하는 현재진행형 문자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저자는 두눈박이 창힐들, 즉 한자를 새롭게 개정하려는 사람들이 계속 나오리라 예상한다. 더구나 좋든 싫든 중국의 위상과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리라 본다면, 우리로서는 한자의 미래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한자 배우기 학습서나 중국 관련 실용서가 유행인 요즘에, 한자와 중국 문화를 좀더 깊이 살펴보려는 독자라면 이 책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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