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남편 빼고 모두 빌려 써라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3.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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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 대여업체 활용하면 돈 절약 ‘쏠쏠’
현대인에게 사유(私有)는 행복이다. 쓸 만한 물건을 손에 넣으면 뿌듯하고 즐겁다. 세련된 자동차, 기능이 짱짱한 컴퓨터, 고급 옷…. 요즘도 그 기쁨을 만끽하려고 ‘곳간’을 꽉꽉 채우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소유보다 빌려 쓰는 쪽을 택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주부 윤정희씨(32·경기 성남)도 3년 전에 그 행렬에 동참했다. 윤씨가 빌리는 물품은 장난감 자동차. “아이가 자동차를 무척 좋아하는데 금방 싫증을 낸다. 때문에 대여점에서 석 달에 한 번씩 새로운 차를 빌린다. 아이는 늘 새로운 차를 타서 좋고, 나는 목돈을 아낄 수 있어 좋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시중에서 빌릴 수 있는 물건은 장난감만이 아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마누라(남편) 빼고 다 빌릴 수 있다. 인터넷 종합 렌털 업체 이렌트(www.erent.co.kr)에 접속하면 정말이지 없는 물건이 없다. 기저귀·교자상·제기(祭器)·러닝머신·야구 장비 세트·여행용 가방·한복·골프채·쌍안경·무전기·인형·모형 음식·냉장고·선풍기·텔레비전·컴퓨터·정수기·공기청정기·비데…. 대여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대여 순위 1, 2위를 다투는 러닝머신은 한 달에 4만5천∼15만 원이고, 장난감은 3개월에 3만∼6만 원씩 한다. 갓난아이를 키울 때 잠시 필요한 원목 침대·자동 침대·보행기도 3개월에 각각 4만원·6만원·3만원을 내면 얼마든지 빌릴 수 있다.

대여업체에 따르면, 거의 모든 제품이 사서 쓰는 것보다 빌려 쓰는 쪽이 효과적이다. 특히 아이가 크면 쓰지 못하는 장난감이나 유아 용품은 더욱 그렇다. 예컨대 신생아 때부터 생후 9개월까지 쓰는 원목 침대의 경우 소비자 가격이 18만원인데, 12개월 임차료는 8만원이다. 경기도 분당에서 장난감·유아용품 대여점 아이나라(www. babyntoys.co.kr)를 운영하는 이두행씨(39)는 “20만원짜리 장난감 굴삭기를 석 달에 2만5천원에 빌려준다. 1, 2년 쓰고 내팽개치는 물건임을 감안하면 비싸게 주고 살 필요가 없다”라고 말한다.

제품 값이 비쌀수록 ‘보이지 않는 이득’은 더욱 커진다. 가정용 캠코더 TRV20(6mm 디지털)을 예로 들어보자. 이렌트 분석에 따르면, 이 제품의 가격은 12개월 할부로 구입하면 2백80만원이 조금 넘는다. 그런데 1년에 네 번 같은 종류의 캠코더를 빌리면 1회(3일간)에 9만5천원씩 38만원이 든다. 그나마 이 가격을 다 지불하는 것도 아니다. 한번 빌릴 때마다 만원 안팎의 할인 쿠폰을 받기 때문에 실제 내는 돈은 그보다 더 적다.

혹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5, 6년 사용하면 더 경제적이지 않을까?” 수치상으로 보면 맞는 말 같다. 그렇지만 캠코더를 5, 6년 사용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 3, 4년 쓰면 소모품이나 액세서리를 구하기 어려워 사용하지 않고 밀쳐두기 일쑤이다. 실제 디지털 영상 장비의 신제품 출시 기간은 6∼10개월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건을 처음 빌려 쓰는 사람은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이 간편하다. 사무기기·의류·유아용품·스포츠레저용품·이벤트 물품을 고루 빌려주는 종합 렌털 업체로는 이렌트·서울종합렌털·아주렌탈·렌탈엔조이가 있고, 건강과 관련된 물건을 빌려주는 업체로는 헬씨넷(www.hccnet.co.kr)이 있다. 이색 대여 업체도 이용할 만하다. 와비디오닷컴(www.waavi deo.com)은 가정용 캠코더를 전문으로 빌려준다. 대여 가격은 디지털 6mm가 2박3일에 5만5천원에서 9만원까지 다양하다.

픽쳐인닷컴(www.picturein.com) 아기즈(www.agiz.net) 비바악기(http://vivami.bz. co.kr) 쥴리앙모나띠(www.julien-mo.com) 등에서도 색다른 물품들을 빌려준다. 픽처인닷컴은 한달에 5천∼8만 원을 내면 1∼100호짜리 동양화와 서양화를 빌려준다. 아기즈는 특이하게도 천연 소재로 만든 기저귀를 대여하고 세탁·배달까지 해준다. 한달 대여료는 돌이 안 지난 아이는 6만원, 돌이 지난 아이는 5만원이다. 비바악기는 보증금 8만∼20만 원을 내고 한 달에 5천∼1만 원을 내면 바이올린·비올라·첼로를 대여해 준다.

줄리앙모나띠에서는 회비를 내고 오렌지∼애플 회원이 되면 2만∼5만 원짜리 고급 핀을 매달 한 번씩 대여해 준다(마지막 핀은 자기 소유). 줄리앙모나띠 이정호 대표는 “아크릴로 만든 싸구려 핀과는 재질·촉감·멋에서 현격한 차이가 난다. 이용자가 점점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여러 제품을 빌려 쓸 때 꼭 챙겨야 할 내용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사용하기 전에 물건에 흠이 있는지 확인한다. 반환 과정에서 덤터기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여 기간을 확실히 한다. 즉 1박2일이라고 할 때 하루를 의미하는지 48시간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알아둔다. 간혹 그 과정에서 마찰이 일어난다. 빌린 물건을 파손했을 경우 손비를 얼마나 부담해야 하는지도 미리 확인해둔다. 선험자들은 뜻밖의 분쟁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약관을 확인하고, 미심쩍은 부분은 꼼꼼히 물어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국내 대여업체 숫자는 만 개(도서·비디오 대여점 제외)가 넘는다. 그러나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단계이다. 국내 소비 시장 규모로 보면 1%가 안되는 데 비해, 미국의 경우에는 전체 소비 시장의 약 20%를 렌털 산업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과 미국의 렌털 산업 규모가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역사도 역사지만 대여 물품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소비자들은 유아 용품·장난감·러닝머신같이 단기간 사용하는 물품을 선호하는 데 비해, 미국 소비자는 가전제품·가구 같은 장기 대여 물품을 선호한다. 이렌트 전상진 대표는 “최근 컴퓨터·골프 장비 같은 고가 제품을 개인에게 대여하는 업체가 늘고 있어 한국의 렌털 산업도 규모가 더 커질 전망이다”라고 말했다.

현대 경제의 한 특징은 ‘속도’다. 기술과 상품이 시시각각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서 소비자의 행태도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성급하게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기대하고, 제품 교환을 서두르고 있다. 기업은 기업대로 소비자의 입맛에 맞게 날마다 새로운 상품을 내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유하기 위해 비싼 물품을 사고, 그런 제품들로 곳간을 꽉꽉 채울 필요가 있을까. 선택은 물론 소비자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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