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영어로 사이트를 찾습니까
  • ()
  • 승인 2003.04.2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왜 영어로 사이트를 찾습니까
한국을 대표한다는 ‘.kr’ 도메인이 순수하게 한국에서 개발된 체계라고 착각하는 이가 아직 적지 않다. 사실 우리는 .kr를 사용하는 대가로 막대한 외화를 지불한다. 그러나 한글 인터넷 주소(자국어 인터넷 주소)를 개발해 우리 나라도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주소창에 http://www.sisapress.com 대신에 ‘시사저널’이라고만 치면 <시사저널> 홈페이지가 뜬다. .com이나 .org, co.kr조차도 필요없다. 우선 남의 나라 말인 영어의 철자와 기호를 힘들여 외우고 써야 하는 불편이 사라졌다. 특히 한국인이 한국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데 영어를 써야 한다는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더구나 영어를 잘 모르는 세대에게는 기존 인터넷 주소는 불편함을 넘어 인터넷을 멀리하는 원인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보자. ‘여성부’ 홈페이지를 찾는데 ‘woman’으로 찾아야 할까, 아니면 ‘yeusung’으로 찾아야 할까? 그런데 막상 여성부의 홈페이지는 ‘moge.go.kr’로 되어 있다. 그야말로 미로 게임이다. 그냥 ‘여성부’라고 써서 바로 홈페이지가 열린다면 얼마나 편리한가 말이다.

한글 인터넷 주소는 ‘넷피아’라는 벤처 기업이 만든 걸작이다. 이 일에 도전한 지 7년째. 아직도 적지 않은 무관심 속에서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어쩌면 단순히 한 벤처의 자존심이 아니라 우리 나라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인지도 모른다. 넷피아는 1999년 한글 인터넷 주소 상용화를 개시하고, 2000년 MS·리얼네임즈 등 유사 업체와 국내 한글 인터넷 주소 시장을 놓고 한 차례 치열한 전쟁을 치렀는데, 결국 승리했다. 중국·일본·태국 등 해외로 진출한 데 이어 2002년에는 자국어 인터넷 주소 서비스 시장에서 천하 통일을 이루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다윗이 골리앗을 꺾었다고 표현한다.

이제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미국을 보면 넷피아의 미래를 점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도메인을 중심으로 세계 인터넷 주소 체계에서 종주국의 입지를 확고히 굳혔다. 그래서 미국은 도메인 루트 서버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영문 도메인 루트 서버 13개가 모두 해외(미국 10개, 유럽 2개, 일본 1개)에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해외 트래픽이 발생해 비용 증가를 유발하고 있다. 2003년 1월25일 초유의 인터넷 마비 사태 때도 루트 서버가 한국에 없었기에 피해가 더 컸다. 당시 해외에 있는 루트 서버로 접속을 시도하다가 네트워크에 더욱 무거운 부하가 걸렸다.

이제 우리 나라는 자국어 인터넷 주소 분야에서 종주국이 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다. 즉 우리 나라는 자국어 인터넷 주소를 서비스하는 루트 서버를 가장 많이 보유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는 엄청난 경제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 미국 클린턴 정부가 전자상거래 활성화와 전자 정부를 구현하려고 상무부가 주도해 ICANN을 설립하고 도메인 네임을 국책 사업으로 추진했기 때문에, 2002년 12월31일 현재 도메인 약 3천9백만개가 세계적으로 판매되었다. 미국 중심의 거대한 신산업이 구축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자국어 인터넷 주소는 한국의 원천 기술이므로 그만큼 외화 절감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외화 획득의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렇듯 인터넷 주소 한글화는 한글을 정보기술(IT)에 접목했다는 의미 외에도 문화·사회·경제·민족·국가·산업 측면에서 그 가치가 크다. 그러나 그 중요도에 비하면 국민의 관심은 너무 적다.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원근 (한국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