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거리는 미니 스커트가 접수한다
  • 오윤현 (noma@sisapress.com)
  • 승인 2003.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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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듯 말듯’ 짧은 치마 선풍 예고…기능성 소재·밝은 색 유행할 듯
속설은 정설이 될 것인가? ‘경기가 나빠지면 여성의 치마 길이가 짧아진다’는 그럴듯한 속설이 있다. 미국-이라크 전쟁과 북한 핵으로 경제가 기우뚱하고, 미니 스커트(미니)를 입은 여성이 자주 눈에 띄면서 그 속설이 정설이 되어가는 듯하다. 섣부른 감이 있지만 미니가 유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삼성패션연구소는 올해 초, 1995년부터 7년간 전국 거리 열세 군데에서 치마를 입은 여성 3천2백56명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 내용에 따르면, 2000년부터 미니를 입는 여성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2000년 1.8%, 2001년 3.0%였던 미니 착용 비율이 지난해에는 4.3%로 껑충 뛴 것이다. 삼성패션연구소 김정희 과장은 “올해는 많은 여성이 미니를 입는 해가 될 것이다”라고 점쳤다.

의류 업계도 미니 바람을 예견하며 이미 마이크로 미니(초미니) 등 수십 가지 모델을 내놓았다. 여성복 캐주얼 브랜드 ‘보이스 오브 보이스’(보브)의 황정아 디자인팀장은 “지난해 말 이미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이 미니를 많이 제안했다. 올해 미니 유행은 대세다”라고 말했다. 과연 경제와 미니는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일까. 미니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정리해 보았다.
‘르 샤틀리에 법칙’이 있다. 날이 더우면 부채질을 하고 날이 추우면 불을 쬐듯, 모든 만물 현상이 외부 변화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평형을 유지한다는 화학 법칙이 그것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 법칙을 들먹이며, 경기가 좋으면 치마 길이가 늘어나고 경기가 나쁘면 치마 길이가 짧아진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그들에 따르면, 불황기에는 남성들이 여성을 바라볼 기회가 별로 없다. 벌어 먹고 살기 바쁜 탓이다. 그러다 보니 여성은 남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짧은 치마를 입고 화장을 고칠 수밖에 없다. 경기가 좋아지면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남성들이 여성의 뒤꽁무니를 자주 좇아다니게 되고, 여성들이 남성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긴 치마를 입는 것이다.

전혀 다른 견해를 피력하는 학자들도 있다. <털 없는 원숭이>를 쓴 인간행동학자 데스먼드 모리스 교수는 오히려 경기가 좋아지면 치마 길이가 짧아지고, 경기가 나빠지면 치마 길이가 길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그 근거로 1930년대 세계 경기가 불황일 때 긴 치마가 유행하고, 1960년대 세계 경기가 호황일 때 미니가 유행했던 사실을 들었다. 김정희 과장은 좀더 구체적인 예를 제시했다. “뉴욕 증시에서 10년간 주가 지수와 치마 길이를 조사한 결과, 주가가 떨어지면 치마가 길어졌고 주가가 올라가면 치마가 짧아졌다.”

그러나 패션 전문가 허 준씨는 모두 그럴듯한 추측일 뿐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유행에 주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해외 디자이너나 패션 업계가 여러 상황을 고려해 유행을 창조할 뿐이다. 실제 1995년에도 미니가 엄청나게 유행했다. 그러나 그 해 경기가 특별히 좋았거나 나빴던 기억은 없다.” 결국 경기가 나쁘거나 좋을 때 미니가 유행한다는 말은 일부 언론과 패션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속설인 셈이다.

미니를 즐겨 입는 여성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자존심이 세고, 몸매에 자신이 있고, 남의 시선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지선씨(26)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녀는 7년 전 어느 날, 문득 긴 치마보다 미니가 자기 체형에 더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고 처음 미니를 입었다. 몇 번 입어본 뒤에 그녀는 미니에 홀딱 반했다. 기분 전환을 하는 데 더없이 좋았던 것이다. “울적한 날, 날씨가 찌뿌드드한 날 입으면 단번에 유쾌해진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현재 그녀는 미니를 일곱 개 가지고 있다.

패션업체 홍보실에 근무하는 20대 후반 서꽃님씨는 이미 10대 때부터 미니를 즐겼다. 일부 여성단체나 페미니스트들이 미니를 두고 ‘여성 몸을 상품화한다’고 비난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다르다. 미니는 인체의 곡선을 잘 살려주고, 여성의 몸을 잘 포장해 주는 옷일 뿐이다. 그녀는 미니를 일종의 마술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미니 20여 벌을 가지고 부리는 마술의 결과는 늘 만족스럽다. 사람들이 섹시하고 귀엽게 보인다고 평하기 때문이다. 서씨는 타고난 몸매 때문에 미니가 잘 맞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운동으로 나 자신을 관리하는 덕에 늘 예쁜 옷을 입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30대 후반인 조윤미씨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주부이다. 그렇지만 서울 갤러리아백화점에서 일하는 덕에 옷을 자유자재로 입는다. 그 가운데 가장 즐겨 입는 옷이 미니. 20대 초반 때만 해도 그녀는 자기 각선미에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호기심으로 살짝 미니를 걸쳐본 뒤 그같은 고정 관념이 싹 바뀌었다. 다리가 더 길어 보이고 여성스러워 보인다는 주위 사람들의 평가를 듣고 몸매에 자신을 갖게 되었고, 미니가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가장 좋은 장식임을 알게 된 것이다.

불편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활동성이 떨어지고, 걷는 데 불편하기 짝이 없다. 또 남자들의 ‘열렬한 시선’도 부담스럽다. 요즘도 그녀는 10여 가지 미니를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 걸친다. 단, 주부답게 상의를 소매가 긴 옷이나 분위기가 얌전한 옷으로 골라 야한 느낌을 주지 않으려 애쓴다.

보브의 황정아 디자인팀장은 누구보다 미니를 좋아한다. 자주 입기도 하지만, 미니를 직접 디자인하기 때문이다. 올 들어 미니를 벌써 열 벌이 넘게 디자인했다. 그녀가 고른 올해의 색은 핑크·오렌지·노랑같이 사랑스러운 색. 그녀는 “건빵 주머니 같은 아웃 포켓이나 지퍼를 단 미니, 신축성 있는 기능성 소재를 쓴 미니가 인기를 끌 것이다”라고 덧붙였다(C인터내셔널 김연정 디자인실장은 광택·나이론 소재로 만든 미니와 중국풍·일본풍 무늬를 수놓은 미니가 유행하리라고 예측했다).

미니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길이를 정하는 일이다. 짧을수록 쇼킹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위태롭게 보이기 때문에 그 ‘접점’을 잘 찾아야 한다. 다행히 최근에 미니 안에 받쳐 입는 레깅스(쫄바지)가 많이 나와 미니의 길이가 점점 대담해지고 있지만, 섹시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길이는 여전히 디자이너들이 찾아야 할 ‘미지의 선’이다.

아이디어는 주로 해외 컬렉션이나 최신 잡지에서 얻는다. 1950, 1960년대 패션 잡지도 요긴한 자료를 제공한다. 미니 하나를 완성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대략 45일. 일단 매장에 나온 작품은 디자이너들에게 자식이나 다름없다. 황팀장은 “내가 디자인한 미니를 입은 여성을 보면,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기가 의도한 바와 다르게 미니를 입은 것을 보면 안타깝다. 예컨대 상의로 점퍼를 입어야 하는데 민소매 티셔츠를 입거나, 구두를 신어야 하는데 운동화를 신고 있는 경우이다.
미니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산통(産痛)’을 느끼지만, 보는 사람들은 즐겁고 유쾌한 모양이다. 출판사에 근무하는 이 아무개씨(37)는 자기도 잠깐 입어본 적이 있다고 소개한 뒤, 미니를 입은 여성을 보면 “그 어떤 여성보다 다이내믹한 느낌이 든다”라고 말했다. 남성들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삐딱한 시선도 없지 않다. 교사 김 아무개씨(41)는 “젊고 탄력 있는 여성의 미니는 잠시 긴장을 풀어준다. 그러나 미니가 어울리지 않는 여성이나 나이 든 여성이 입은 미니는 보기 흉하다”라고 말했다. 30대 초반인 한 남성은 텔레비전과 인터넷에서 수시로 ‘여체’가 등장하는 탓에 과거처럼 미니가 그다지 자극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대학생 유 아무개씨(21)는 학생들의 미니를 볼 때마다 자신을 과시하려는 몸짓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니는 1964년 영국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사회적 쟁점이 되어왔다(위 상자 기사 참조). 그러나 결론은 하나였다. 사회 분위기를 일신하고, 입는 사람과 보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올해 거리를 수놓을 미니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경기 침체와 전쟁 위기로 사람들 마음이 가라앉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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