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국·나물로 여는 ‘맛있는 봄’
  • ()
  • 승인 2003.04.1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주일 동안 출퇴근에 지친 몸을 봄볕에 맡기고 쪼그리고 앉아 있는 일요일은 매우 행복하다. 느릿느릿 게으르게 움직이면서 흙먼지 날리는 앞마당에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이제 갓 눈을 뜬 강아지나 만지작거려도 되는 날이다. 보얗게 솟아오른 쑥이 눈에 띄면 칼을 가져다 쑥을 뜯는다. 사실 쑥을 뜯어 무얼 하겠다는 것보다는 그냥 이 좋은 봄볕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게 좋아서 하는 짓이다. 쪼그려 앉아 세운 무릎 위에 턱을 괴고 쑥을 뜯으면, 이라크에서 사람 죽어 가는데 이렇게 편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편하다. 쑥국은 꼭 한 철밖에 먹을 수 없다. 냄새가 너무 강해서 조금만 자라도 국을 끓일 수 없기 때문이다. 쑥떡 해먹기에도 미안할 정도로 여리고 작은 것들만 모아야 쑥국을 끓일 수 있다. 쑥국에는 조개 국물이 제 맛이다. 희한하게도 봄나물 국은 멸치 국물이 안 어울린다. 봄동이나 무 시래기로 국을 끓일 때에는 약간 탁한 맛이 있는 멸치 국물이 제격인데, 냉이는 물론이고 원추리나 보리 싹까지 맑고 시원한 조개 국물이 훨씬 어울린다. 모시조개면 금상첨화지만 워낙 값이 비싸다. 꿩 대신 닭이라고 그냥 바지락을 사들고 오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아예 커다란 개조개를 넣기도 하고, 그도 없으면 냉동실에 보관하고 있던 굴을 조금 써도 괜찮다. 바지락이나 모시조개는 그냥 삶아 국물을 내고, 개조개는 칼로 반 갈라 날 것을 씻어 넣는다. 국물이 맛있으려면 푹 끓여야 하지만, 그 대신 조개가 질겨지는 흠이 있다. 살짝 익혀 조갯살을 따로 건졌다가,

국이 다 끓은 후에 넣어 상에 내어놓는 것이 조개 맛을 내는 데 좋지만, 그렇게 하려면 그 비싼 조개를 넉넉히 써야 한다. 돈 없는 나는 늘 그 대목에서 고민한다. 된장국 끓이기야 별다를 게 없다. 집에서 담가 한두 해 묵은 맛있는 된장을 쓰면 국 맛도 좋아지기 마련이고, 가게에서 산 싸구려 된장을 쓰면 맛이 왜된장국인지 한국 된장국인지 알 수 없게 얄팍해지는 거다. 쑥 향내가 너무 독하다 싶으면 매운 고춧가루를 넣어 톡 쏘는 맛으로 해결한다. 향긋한 쑥 냄새가 구수한 된장과 어울려 온 집안을 향긋하게 만든다.

이런 나물국과 잘 어울리는 반찬은 역시 봄나물 무침이다. 특히 쌉쌀한 나물들을 먹으면 봄 입맛이 확 돈다. 쑥과 원추리가 돋은 후 그 다음으로 나는 나물이 씀바귀이다. 씀바귀는 여름까지 계속 먹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처음 돋아나는 여린 것을 먹는 맛에 비할 수는 없다. 나는 살짝 데쳐서, 고추장과 간장을 섞은 양념으로 무쳐 먹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새콤달콤한 맛을 즐기는 사람은 초고추장에 무쳐도 되는데, 초고추장은 너무 맛이 강해서 나물 맛을 똑같이 만들어버리는 감이 있다. 고추장과 왜간장에 약간의 설탕을 섞어 파·마늘·깨소금 양념을 하면 아주 맛있다. 기호에 따라 참기름을 넣기도 하는데, 초봄 여린 나물일수록 강한 양념 없이 나물의 제 맛을 즐기는 것이 좋다.

봄에 먹는 쓴 나물로는 머위를 빼놓을 수 없다. 대개 물 많은 곳에 어느 것보다도 먼저 새파란 큰 잎을 내어놓는 게 머위이다. 이것도 여름에 가까워지면 너무 써지므로 봄에 먹는 게 제 맛이다. 살짝 데쳐서 꼭 짠 것을 쌈장과 함께 쌈 싸먹으면 그 쌉쌀한 맛이 기막히다.

이영미 (문화 평론가)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