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지만 잘 골라도 ‘나’ 좋고 지구 좋고…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3.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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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환경 함께 지켜주는 ‘녹색 상품’ 7선
황보씨가 맨 먼저 찾은 녹색 상품은 매일매일 소비하는 화장지와 세제였다. 이 두 물품은 여러 곳이 생산·판매해 비교적 찾기가 수월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황보씨 자신이 그동안 수없이 생산되는 재생 화장지를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금세 이유를 알아냈다. 바로 재생 화장지는 꺼끌꺼끌하고 먼지가 날릴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터넷 자료를 보니, 재생 화장지는 일반 화장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녹색 상품 목록을 적으려고 펼친 수첩에 ‘재생 화장지 10개’라고 썼다.

환경 친화적인 세제는 (주)살림원의 홈페이지(www.salrimwon.com)에서 찾아냈다. 살림원에 따르면, 그곳에서 생산하는 세탁 비누·주방용 세제·샴푸 등은 천연 재료로 만들어 인체와 자연에 거의 해가 없다. 제품 설명서를 들여다보자.

천연 주방세제 그린비 : 국내 최초 천연 액상 주방 비누로 개발되어 KS 규격 및 우수 제품 마크를 획득한 유일한 제품이다. 식물성 천연 유지(야자유·레몬유·팜유)를 장시간 발효·숙성시켜 만든다. 천연 성분이어서 자연 분해되며, 당연히 수질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고형 세탁비누 그린비 : 우리 나라 최초의 KS 규격, 환경 마크, GR(우수재활용품) 마크를 획득했다. 순수 천연 유지, 즉 사람이 먹는 기름을 170℃ 이상의 고온에서 끓여 만들었다. 하루 안에 완전 분해되며, 힘들여 비비지 않아도 때가 빠진다. 맨손 세탁을 하면 주부 습진까지 없어진다….

황보씨는 수첩에다 살림원 전화번호와 함께 ‘그린비 세제·비누 각각 5개’라고 썼다.

황보씨가 새로 찾아 나선 녹색 상품은 벽지였다. 도배한 지가 오래되어서 벽지를 바꿀 참이었다. 인터넷을 한참 헤맨 끝에 그녀가 발견한 녹색 상품은 에덴바이오벽지(에덴바이오)가 생산하는 각종 천연 벽지. 그녀는 에덴바이오 홈페이지(www. edenwp.com)에 소개되어 있는 벽지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그러다가 놀라운 사실을 접했다. 바로 기존 벽지와 바닥재들이 인체에 얼마나 해로운지 알게 된 것이다.

에덴바이오 자료에 따르면, 기존 벽지와 바닥재에서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이 대량 발생한다. 그 양은 상상을 초월해서 1㎡에서 1시간 동안 3833㎍(벽지)·4898㎍(바닥재)이나 내뿜는다. 이는 미국 환경보호청이 정한 발암 위해도 허용치의 수백 배에 해당하는 양으로 인체에 위해함은 물론이다. VOC는 현재 발암 물질로 분류되어 있으며, 호흡기질환·아토피성 피부염·알레르기 발생과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덴바이오는 자기네가 생산하는 벽지에서는 VOC가 전혀 방출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소나무·숯·천연옥·녹차잎·쑥·황토 가루 등을 종이에 천연 접착제로 특수 가공 처리해, VOC가 단 1㎍도 나오지 않는다.” 그뿐이 아니었다. 80∼90%의 탈취 효과, 97∼98%의 항균 효과, 90% 이상의 원적외선 방사 효과까지 있다고 덧붙였다. 에덴바이오 벽지들이 모두 환경 마크(딸린 기사 참조)를 땄다는 대목에 이르자, 황보씨는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에덴바이오에 전화를 걸어 어디에서 살 수 있는지 물었고, 이내 주문을 했다.

저녁 무렵 밖으로 나와 집안을 둘러보던 황보씨 눈에 칠이 벗겨진 대문과 한쪽에 금이 간 담이 보였다. 혹시나 해서 컴퓨터를 다시 켜고 ‘녹색’ 페인트와 벽돌이 있는지 알아 보았더니, 금강고려화학(KCC)과 공간세라믹이 꽤 쓸 만한 페인트와 벽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녹색 페인트의 이름은 ‘숲으로’. KCC에 따르면, 이 제품은 이름만큼이나 환경 친화적이다. 우선 VOC 발생량을 선진국 수준으로 크게 낮추었다. 인체에 유해한 성분도 제거해 특유의 냄새도 나지 않는다. 당연히 작업자의 머리가 지끈거릴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인체의 신진 대사를 촉진하는 원적외선을 발산하고, 곰팡이와 이끼가 끼지 않도록 항균 기능까지 한다는 것이 KCC의 설명이다. 공간세라믹이 찍어내는 ‘숨쉬는 벽돌’도 황보씨 마음에 들었다. 그만큼 환경 친화적인 요소가 많았다. 주원료는 황토. 공간세라믹( www.ggceramic.com)에 따르면, 이 회사의 벽돌은 황토로 특수하게 만들어 통풍과 투수성이 우수하다. 게다가 기존 콘크리트 벽돌처럼 인체에 해로운 라돈 가스를 발산하지 않고, 황토에 오랜 기간 축적된 토양 미생물과 효소 덕에 항균·방충·탈취 효과까지 있다. 게다가 황토에서 방출되는 원적외선은 혈액 순환과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스트레스 예방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녁을 먹고 난 뒤 황보씨는 조용히 책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딸아이가 알레르기 때문에 옆구리를 득득 긁으며 나타났다. 그 순간 황보씨 머리 속에 또 하나의 녹색 상품이 떠올랐다. 티셔츠. 그러나 환경 친화적인 의류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 먼저 띈 것은 일반 티셔츠의 ‘문제점’에 관한 자료들이었다.

자료에 따르면, 티셔츠 한 벌에는 보통 60g 가량의 면이 포함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흔히 제초제·살충제 등이 농산물에만 뿌려지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적지 않은 농약이 목화 재배에 이용된다. 미국유기농소비자협회에 자료에는 전세계 살충제의 약 25%와 제초제의 약 10%가 목화밭에 뿌려진다고 나와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한 장의 면 티셔츠를 만드는 데 농약이 약 1백50g이나 들어간다고 한다. 목화를 면으로 만드는 과정에도 인체에 유해한 여러 화약 약품이 쓰인다.

폴리에스테르로 만든 티셔츠도 인체와 지구를 해치기는 마찬가지이다. 폴리에스테르는 원유를 정제해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질소·유황산화물·탄화수소·먼지·일산화탄소·중금속 따위가 발생한다. 이 오염 물질은 굴뚝을 통해 곧바로 대기로 방출된다. 전문가들은 오염 물질이 사람의 호흡을 곤란하게 하고, 심장과 폐 질환을 유발하며, 면역 체계를 파괴한다고 말한다.

고진감래라고, 마침내 황보씨는 오랜 탐색 끝에 ‘녹색 옷’들을 찾아냈다. 마(麻) 소재와 식물성 염료를 써서 만든 아르마니의 청바지, 살충제와 화학 비료를 쓰지 않은 면화로 만든 팀버랜드와 안느 폰테인의 티셔츠 등이 그녀가 찾은 녹색 상품이었다. 하지만 외국 브랜드여서 국내에서 살 수 있는 옷은 팀버랜드 티셔츠 한 가지뿐이었다. 그녀는 수첩에다 ‘팀버랜드 티셔츠 어른용 2개, 어린이용 2개’이라고 적었다.

컴퓨터를 끄려다 말고 황보씨의 호기심이 또 한번 발동했다. ‘전자제품에는 녹색 상품이 없을까?’. 그녀는 부리나케 다시 인터넷을 사냥했다. 그러나 완전한 녹색 상품을 발견하지 못했다. 대신 에너지관리공단 홈페이지(www. kemco.or.kr)에서 열효율 등급(1∼5등급)에서 1등급을 받은 제품이 좀더 환경 친화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에너지관리공단 자료에 따르면, 1등급 냉장고는 3등급 냉장고에 비해 에너지 절감 효과가 23% 더 있다. 돈으로 치면 1년에 1만6천8백원을 절약할 수 있다. 컴퓨터도 비슷하다. 에너지 절약 마크가 붙은 컴퓨터는 일반 컴퓨터보다 43%나 에너지를 덜 쓴다. 황보씨는 자신의 집 전자제품에 붙은 열효율 등급표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모두 1등급 표시가 되어 있었다. 황보씨는 유기농 식품을 판매하는 한살림의 홈페이지 주소(www.hansalim.or.kr)를 수첩에 기록한 뒤 녹색 상품 사냥을 마무리했다.

<지구를 살리는 7가지…>를 쓴 존 라이언은 ‘지구를 살리는 데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사람의) 습관이다.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면 새로운 실천은 쉽사리 제2의 습관이 된다’고 말했다. 지난 10여 년간 재활용품 사용이 어떻게 우리의 제2 습관이 되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의 말이 얼마나 지당한지 실감할 것이다. 한권의 책이 인생관이나 생활 방식을 바꾸는 경우가 있다. 주부 황보씨도 그랬다. 얼마 전 그는 환경운동가 존 라이언이 쓴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그물코)을 읽었다. 그 책에는 자전거·콘돔·무당벌레같이 환경 친화적인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이 꼼꼼히 소개되어 있었다. 황보씨는 한 장 한 장 책을 넘기며 그동안 자기가 얼마나 인간 중심적으로 살아왔고, 지구 환경이 얼마나 빨리 훼손되어 가는지 깨달았다.

책을 덮은 뒤 그녀는 주변의 일상 용품을 둘러보았다. 비누·식기·의류·신문·텔레비전·냉장고…. 하나같이 생활에 이롭지만, 결국 자신과 지구 환경에 피해를 주는 물건들이었다. 그녀는 이 참에 그것들을 최근 각광받고 있는 녹색 상품(환경 친화 제품)으로 갈아치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지만 녹색 상품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가짓수가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이다. 책과 인터넷을 뒤져 그녀가 찾아낸 녹색 상품은 모두 일곱 가지. ‘지구 살리기’에 동참한 황보씨의 행적을 뒤쫓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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