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도’ 닫고 ‘리눅스’ 여나
  • 토론토·김상현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3.07.2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업 컴퓨터 시장 주류 진입…저비용·개방성 내세워 마이크로소프트 공략
“더 싼값에 더 많이.” 동서고금을 통해 저자거리에서 가장 널리 통용되었을 이 말을 로빈 라이너스도 되뇐다. 시장에서 널리 쓰이는 상용 소프트웨어 대신 상대적으로 낯선 리눅스(Linux)를 기업 전산망의 운영 체제로 삼은 이유에 대한 대답이다. 그는 캐나다의 대형 의류 회사에서 정보 기술과 컴퓨터 시스템 부문을 총괄하는 최고정보관리책임자(CIO)이다. 라이너스는 최근 회사의 3백20개 전 매장에 리눅스를 기반으로 한 POS(컴퓨터로 판매 시점에서 판매 활동을 관리하는 시스템)를 설치했다.

그의 판단은 옳았다. 무엇보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를 쓸 때 지출되던 연간 유지비 50만 달러와 등록비 15만 달러를 고스란히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리눅스를 설치한 온라인 금전등록기는 윈도 운영 체제를 쓴 것에 비해 다운되는 일이 훨씬 적다”라고 그는 말한다. “나는 반(反) 마이크로소프트주의자는 결코 아니다. 다만 리눅스가 윈도보다 더 안정적으로, 그것도 훨씬 더 경제적으로 운영되니까 그것으로 바꾸었을 뿐이다.”

리눅스가 소수만의 ‘컬트’이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그렇다고 벌써 마이크로소프트나 선마이크로시스템즈 등과 어깨를 견줄 정도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주류의 문턱에 한 걸음 더 바짝 다가선 것만은 분명하다. 이는 IBM·오라클 등 내로라 하는 컴퓨터 거인들이 종래의 주류 운영 체제 외에 리눅스 기반의 기업용 비즈니스 솔루션까지 개발하기로 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미국의 시장 연구 기관인 포레스터 리서치도 “2003년은 리눅스가 기업 컴퓨터 시장의 주류로 진입하는 원년이 될 것이다”라며 리눅스의 약진에 주목했다. 이에 따르면, 북미 지역 50대 주요 기업의 중역들 가운데 72%가 앞으로 2년 안에 리눅스 운영 체제의 비중을 늘릴 계획이라고 대답했다. 또한 응답자의 절반 가까운 44%는 그간 써오던 마이크로소프트나 선마이크로시스템즈의 운영 체제를 아예 리눅스로 완전히 대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리눅스가 이처럼 급속히 그 세(勢)를 불려나가는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열림’이다. 1991년 핀란드의 컴퓨터 엔지니어인 리누스 토르발즈가 인터넷을 통해 첫선을 보인 리눅스는, 그와 함께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라는 혁명적 개념도 함께 선보였다. 말 그대로 소프트웨어의 내부 구조(소스 코드)를 숨김없이 밖으로 내보인다는 뜻이다.

돈을 벌 목적으로 만든 여느 소프트웨어들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소스 코드를 꽁꽁 숨기는 것이야말로, 해당 운영 체제로 기업 전체의 전산망을 구성한 고객 기업들의 덜미를 잡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소스 코드를 모르는 고객 기업들로서는 운영 체제가 바뀌거나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당장 그것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라도 그에 맞춘 새 프로그램을 도입해야만 한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전산망 전체를 바꿀 수도 있지만 훨씬 더 많은 비용과 인력을 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리눅스의 ‘열린’ 아이디어에 환호했다. 전세계의 수많은 프로그래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리눅스의 약점을 메우고 오류를 바로잡았다. 공짜로 내려받을 수 있는 다종다양한 리눅스들이 앞다투어 등장했고, 그에 대한 게시판·커뮤니티·대화방·자료실 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었다. 종교적 열성에 버금가는 이들의 노력은 그에 걸맞은 ‘복음’을 리눅스에 가져왔다. 바로 저비용, 안정성, 컴퓨터 바이러스에 대한 강력한 내성(耐性), 더 값싸고 느린 하드웨어에서도 유연하게 작동되는 능력 등이다.

그러나 리눅스 대중화는 생각보다 더뎠다. ‘소수의 컴퓨터 전문가들이나 쓰는 수수께끼 같은 프로그램’이라는 선입견이 강했다. 공짜로 내려받을 수 있다고 해도 그에 대한 설명서가 없거나 부족했고, 이를 설치하기도 어려웠으며, 설령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그 위에서 돌아가는 응용 프로그램이 크게 모자랐다. 이미 일반 PC 시장을 확고하게 장악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와도 잘 맞지 않았다. 하지만 ‘풀뿌리 운영 체제’라고 불리는 리눅스만의 강점이 다시 한 번 유감 없이 발휘되고 있다. 윈도가 아니더라도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물론 워드·파워포인트·엑셀 등 마이크로소프트의 사무용 프로그램을 문제 없이 쓸 수 있게 해주는 여러 제품들이 선을 보인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의 ‘닫힘’에 빗댄 ‘오픈오피스(OpenOffice for Linux)’, 윈도에서만 작동되는 오피스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뜻의 ‘크로스오버 오피스(CrossoverOffice)’ 등이 인터넷에 공짜로, 또는 아주 싼값에 등장했다. 그런가 하면 영국의 선마이크로시스템즈는 리눅스를 기반으로 한 사무용 프로그램인 스타오피스와 다양한 연관 프로그램을 패키지로 묶은 ‘스몰 오피스 솔루션’을 선보였다.

무조건 공짜를 밝히지만 않는다면 좀더 안정적인 선택도 가능하다. 미국의 지미언(Ximian)이라는 회사는 리눅스 운영 체제와 그에 맞는 표 계산 프로그램, 인스턴트 메신저, 워드, 프레젠테이션 프로그램, 인터넷 및 e메일 프로그램 등을 일괄적으로 설치해 준다. 공짜로 내려받을 수도 있지만, 설명서나 다른 고객 서비스를 거의 받을 수가 없다. 유료 쪽을 선택하면 당연히 더 나은 서비스를 보장받는다. 하지만 그 가격이 29.99∼69.99 달러 수준이어서, 특히 마이크로소프트 등 다른 기업의 비슷한 제품과 견주면 거저나 다름없다. 독일의 SuSe라는 기업도 리눅스를 이용한 다양한 기업용 제품군을 선보이고 있다.


리눅스 전문가인 이반 라이보비치는 이같은 움직임을 두고 “리눅스가 다른 메이저 소프트웨어들과 경쟁하기 어려운 걸림돌은 사실상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주장한다. 리눅스 이용자들을 위한 국제 리눅스 인증기관인 ‘리눅스 프로페셔널 인스티튜트’ 회장인 그는 “프로그램의 안정성, 설치 및 유지에 필요한 비용의 경제성, 정보 유출이나 컴퓨터 바이러스의 침입을 막는 보안성 등 어느 모로 보나 리눅스는 종래의 독점적이고 값비싼 운영 체제들을 능가한다. 특히 전산망 구축과 유지에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는 기업들이라면 하루라도 더 빨리 리눅스로 전향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다. 수백, 수천 대의 컴퓨터를 연결한 기업 전산망의 기반을 바꾸는 일은, 일반 PC 한두 대의 운영 체제를 바꾸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중대한 모험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기업의 IT 전문가들이, 리눅스의 우수성을 인정하면서도 고개를 젓는 이유다.

라이보비치 회장은 그러나 “일선 IT 전문가나 매니저들의 이기심, 근거 없는 두려움도 리눅스의 빠른 전파를 막는 걸림돌이다”라고 지적한다. 이미 설치된 운영 체제와 전혀 다른 새 시스템을 선택할 경우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는, 좀더 운 나쁜 경우 자기 일자리까지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하다는 주장이다. “리눅스 도입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리눅스를 써본 적조차 없는 경우이다. 새로운 소프트웨어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극복하는 것이 진정한 리눅스 대중화의 관건이다”라고 그는 강조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