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사과밭이 사라진다”
  • 오윤현 (noma@sisapress.com)
  • 승인 2003.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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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로 한반도 기후 질서 ‘흔들’…기상 이변 반복될 듯
한반도의 기상이 이상하다. 지난해 여름은 역사상 두 번째로 무덥더니(2002년과 1998년은 1861년 이래 가장 무더운 해로 기록되었다), 올 여름은 지난 30년(1974∼2003년) 동안의 여름 가운데 세 번째로 기온이 낮았다. 지난 여름과 겨울은 또 어떠했는가. 여름에는 태풍 루사가 엄청난 피해를 주더니, 한겨울에는 유례 없는 폭설과 한파로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다.

위풍당당한 ‘이상 기후’의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기상청이 최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올 여름(6월1일∼8월31일)은 평균 기온이 17.1℃(대관령)∼24.8℃(성산포)로 예년의 평균 기온보다 1.1℃나 낮았다. 충북·경북·전북의 일부 지역은 1.5℃ 이상 낮은 곳도 있었다. 강수량도 엄청났다. 6∼8월에 특히 비가 많이 내렸는데, 서울의 경우 1310mm나 내려 30년 평균 강수량(809.2mm)을 62%(500.8mm)나 초과했다. 부산도 비슷했다. 석 달 동안 1290 mm나 뿌려 30년 평균 강수량(719.4mm)을 79%나 뛰어넘었다. 울릉도는 아예 30년 평균 강수량(381.8mm)의 두 배가 넘게(787.3m m) 내렸다.

사나흘이 멀다하고 비가 오락가락한 탓에 강우 날짜도 기록적이었다. 0.1mm 이상의 비가 가장 자주 온 곳은 대관령으로, 석 달 동안 무려 58일이나 비가 뿌렸다. 중부·남부 지방도 평년보다 5∼20일 정도 비가 더 퍼부었다. 전국 평균 강수 일수는 47.2일. 이는 올 여름이 엄청난 비가 쏟아졌던 1998년(46.5일)보다도 비온 날이 많았음을 뜻한다.
일조량이 부족하다 보니 사방에서 푸념이 터지기도 했다. 벼와 과수 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수확량이 줄었다며 한숨을 내쉬었고, 냉방·물놀이 용품과 빙과·맥주를 파는 업체들은 내년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될까 봐 지레 겁을 먹었다. 충남 보령 등 서해 연안에서는 난데없이 해파리떼가 나타나 어부들을 괴롭혔다.

왜 이렇게 자주, 많이 비가 내린 것일까.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온실 가스로 인한 지구 온난화이다. 정예모 박사(삼성지구환경연구소)는 “지구 온난화가 대기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기후 질서가 흔들렸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기상청 기상홍보실은 상반기에 정상 발달했던 북태평양 고기압이 후반에 세력을 확장하지 못해 비를 뿌리는 날이 많았다고 밝혔다. 거기에 저기압과 불안정한 대기, 태풍이 직간접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안중배 교수(부산대·대기과학)는 “기상 이변은 길게는 100년, 짧게는 2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앞으로도 가뭄-무더위-호우-폭설이 반복될 확률이 높다”라고 말했다. 최근 눈길을 끄는 주장은 옛 유고 학자 밀란코비치의 이론이다. 그는 지구 자전축이 4만년 주기로 21.5∼24.5℃에서 움직이는데, 최고·최대 경사가 되면 빙하기와 건빙기라는 엄청난 기상 이변이 일어난다고 주장했었다. 21세기는 다행히 23.5℃지만, 기울기가 건빙기 쪽으로 기울면서 전과는 다른 기상 변화가 나타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일단 기상 이변이 일어나면 인간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인간이 보는 피해는 피상적이다. 더 큰 변화는 자연 생태계에서 일어난다. 지금 한반도 자연 생태계에서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가장 민감한 변화가 일어나는 곳은 숲속이다. 임업연구원은 1995년 강원도 계방산에 영구 조사지를 설치하고, 지난 8년간 신갈나무·복장나무·분비나무를 대상으로 기상 변화에 따라 수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주목할 만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매년 5월10일 새로 나온 잎과 가지가 얼마나 자랐는지 파악했더니, 해가 바뀔수록 새 잎과 새 가지의 발아 시기가 빨라졌다. 특히 1998년(이 해는 기후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더웠다)에는 세 수종 모두 지나칠 정도로 빨리, 길게 자라났다. 1996∼1997년에는 잎과 신초의 평균 길이가 각각 3.1cm·2.5cm였는데, 1998년에는 9.7cm·12.5cm로 자랐던 것이다. 두 번째로 더웠던 2002년의 발아 속도도 1998년 못지 않았다. 기후 변화에 따른 산림 생태계 변화를 예측하기 위해 임업연구원이 운용한 두 가지 시나리오에서도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왔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중부 내륙 지역의 연평균 기온을 100년간 1℃ 상승시켜 본 것이었는데, 결과는 분명했다. 온대 남부 수종인 졸참나무·서어나무·개서어나무 등의 점유율이 증가하고, 현재 널리 분포되어 있는 자생 잣나무와 신갈나무가 크게 준 것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100년간 2℃ 상승)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결국 기온이 상승하면 현재 한반도 숲을 지배하는 수종이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수목 분포에 변화가 나타나면 초본류나 곤충, 그리고 그들을 먹고 사는 조류나 포유류의 생태에도 자연스러운 변화가 일어난다. 우선 아열대성 수목 병원균이 침투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침입에 성공한 균도 있다. 푸사리움가지마름병. 이 병원균은 1월 평균 기온이 0℃ 이상인 지역에 발병하는데, 1996년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뒤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아열대성 해충도 이미 상륙했다. 동남아시아가 원산지인 대벌레는 1983년 삼척에서 처음 발견된 이래 경상 남북도에까지 퍼졌다. 우리대벌레도 강원·충북 내륙 지방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나무 에이즈’라 불리는 재선충의 매개체로 알려진 솔수염하늘소는 아열대성 해충은 아니지만, 역시 북상 속도를 높이고 있다(<시사저널> 제724호 참조). 임업연구원 신준환 박사는 “온난화가 지속되면 참나무류 역병과 시들음병 등이 국내에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이상 기후는 곤충류 분포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에 나온 설악산 나비류 분석 자료에 따르면, 1997년의 경우, 1년에 1∼2 세대를 거치는 나비류의 출현 빈도가 30년 전에 비해 눈에 띄게 줄었다. 반면 1년에 3∼5세대를 거치는 나비의 출현 빈도가 늘고 있는 추세이다. 전문가들은 아열대같이 따뜻한 지역으로 갈수록 다세대를 거치는 나비가 많다며, 3∼5세대를 거치는 나비의 출현이 잦다는 것은 그만큼 한반도가 더워졌음을 뜻한다고 말했다.

이상 기후로 인한 기온 상승은 봄꽃이 피어나는 시기도 앞당겨 놓았다. 기상청 산업교통기상과 조영순 과장에 따르면, 기온 상승과 도시화 여파로 봄꽃 개화 시기가 과거보다 훨씬 빨라졌다. 개나리·벚나무·복숭아나무·배나무 꽃은 1940년대보다 평균 4∼12일 앞당겨졌고, 진달래의 경우 최근 10년 동안에 2일이나 빨리 꽃을 피웠다. 서울·대구 같은 대도시의 경우 진달래와 개나리가 60년 전보다 무려 13∼21일 먼저 개화했다.

기온 상승은 원예작물 주산지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 원예연구소 서형호 박사(과수 재배과)는, 사과는 연평균 기온이 13.5℃ 이하 지역에서 재배하는 과일이라며 “기온이 2℃ 정도만 올라가도 연평균 기온이 13.2℃인 대구와 12.3℃인 칠곡에서는 사과나무를 키울 수 없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반도의 연평균 기온이 3∼4℃ 오르면 작물의 발육 속도가 빨라져 생육 기간이 단축된다. 이렇게 되면 과실의 성숙과 착색이 불량하게 되어 상품성이 떨어진다

주로 남쪽에서 나오는 배·복숭아·포도·단감은 반대로 재배 지역이 늘어날 확률이 높다. 그 가운데 복숭아는 이미 경기도 북부, 충북 북부, 강원도 일대에까지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또 남부 해안 지대에서 자라는 참다래와 유자 등은 남한 전역으로 확대되고, 제주도에서는 아예 아열대 과수를 키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온난화에 편승해 섣부르게 난지성 과수를 심었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 서둘렀다가 잦은 비와 저온으로 피해를 보는 과수 농가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온 상승의 영향을 받기는 벼도 마찬가지이다. 농업과학기술원 이정택 농업기상연구실장 등이 첫 모내기를 할 수 있는 한계 날짜(15℃ 기준)를 분석한 결과, 시기가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 1931∼1960년에는 (지역 별로) 4월28일∼5월23일이 한계 날짜였는데, 1971∼2000년에는 4월24일∼5월16일로 4∼7일 정도 빨라진 것이다. 벼이삭이 패는 한계 날짜(19℃ 기준)도 1931∼1960년에 비해 1970∼2000년이 짧게는 1일에서 길게는 11일까지 빨라졌다.
벼를 일찍 심고 벼이삭이 빨리 패니 당연히 벼를 재배할 수 있는 기간도 늘어났다. 광주·제주도의 경우 1931∼1960년에는 그 날짜가 1백83일과 1백88일이었는데, 1970∼2000년에는 각각 1백99일(+16일)과 2백11일(+14일)로 길어졌다. 울릉도·대구·전주·여수도 10∼11일 늘어났다. 이정택 실장은 “단순히 분석한 결과다. 심층 분석하면 여러 작물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바다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동해와 남해의 겨울철(1∼3월) 수온 상승이다. 동해안 주문진 연안의 경우 1960년대 6.6℃였던 평균 수온이 1980년대 7.0℃, 1990년대 8.0℃로 올라갔다. 봄철(4∼6월) 평균 수온도 1960년대(12.8℃)에 비해 1990년대에 1℃ 가까이 올라 13.7℃를 기록했다. 남해안에서는 마라도 연안에서 수온 상승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1960∼1980년대에 비해 0.6∼0.8℃나 더워져 15.3℃를 기록한 것이다.

국립수산원과학원 박종화 박사에 따르면, 한겨울에 수온이 상승하면 겨울철 어획량이 늘고 어업 자원 분포가 달라진다. 그는 “오징어·고등어·전갱이·멸치·방어 같은 회유성 어종의 분포 해역이 100~110km쯤 북상했다”라고 말했다. 지난 30여 년의 수산업 통계를 보면 변화를 좀더 확실히 감지할 수 있다. 즉 2000년대 들어 난류성 어종인 오징어·멸치·고등어 어획량은 급증한 반면, 한류성 어종으로 분류되는 명태·대구 어획량은 날로 줄고 있다.

모든 생명체는 일평생 질소·산소·이산화탄소 등이 뒤섞인 농밀하고 불한정한 ‘공기의 바다’ 속을 떠날 수 없다. 두께 16km인 이 기체의 바다는 그동안 우리에게 은혜와 피해를 번갈아 주었다. 그런데 21세기 이후에는 은혜보다 피해를 더 많이 줄 공산이 크다. 기상연구소 권원태 기후연구실장은 기후변화정부간패널(IPCC) 자료를 토대로 “2100년이면 지구 온도가 낮게는 1.4℃, 높게는 5.8℃까지 오를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해수면도 9∼88cm 정도 상승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동식물의 개체수 변화, 숲 파괴, 식량 감소, 가뭄·홍수…. 지금 한반도는 그 암울한 미래를 향해 항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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