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로 C형 간염 옮을 수 있다
  • 전상일 (환경보건학 박사·www.eandh.org) ()
  • 승인 2003.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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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균자 침에서 바이러스 발견” 연구 결과 나와…잇몸병 있으면 더 위험
애정 표현의 상징인 키스가 치명적인 C형 간염 전파 경로가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미국의 워싱턴 대학 연구진은 지난 9월 중순 시카고에서 열린 한 학회에서 ‘C형 간염 보균자의 침에서 C형 간염을 일으킬 수 있는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연구진은 C형 간염을 앓고 있는 환자 12명의 침을 21일 동안 매일 수거해 바이러스 존재 유무를 살폈다. 그 결과 표본 2백48개 가운데 52개에서 바이러스 양성 반응이 나타났다. 침에 바이러스 양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들의 체내에 더 많은 바이러스가 들어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C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나타나는 증상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은 아무런 증상이 없다가 수년이 지난 뒤에야 나타나기도 한다. 이때는 이미 간에 치명적인 피해가 나타나기 시작한 때이다. 그래서 C형 간염을 ‘침묵의 킬러’라고 부르기도 한다. 반면 감염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바로 극도의 피로감과 불쾌감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가장 흔한 증상은 체중 감소, 피로감, 감기 증세, 황달, 메스꺼움, 집중력 저하, 복통이다.

감염자의 20% 정도는 6개월 내에 치료가 가능하지만, 나머지 80%는 만성질환 환자가 되어버린다. 간경변·간암으로 발전해 목숨을 잃을 확률도 다른 유형의 간염보다 훨씬 높다. 그래서 C형 간염을 에이즈에 버금가는 천형에 비유하기도 한다. 혈액을 통해 전파하기 때문에 미국의 경우 HIV(에이즈 유발 바이러스) 감염자의 30%는 동시에 C형 간염 보균자이기도 하다.

연구진은 C형 간염 보균자의 침 중에서 바이러스를 전파시킬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극소량의 혈액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즉, 감염자가 잇몸 질환 등을 앓는 경우 이 때 배어 나온 혈액 성분이 위험 요소라는 것이다. 이 키스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가장 위험한 경우는 잇몸병이 있는 사람이 C형 간염 감염자와 키스하는 경우이다. 칫솔·면도기·손톱깎기 따위를 함께 사용하거나, 소독되지 않은 기구를 사용해 문신이나 피어싱을 하는 행위도 위험 요소로 간주된다.

C형 간염 바이러스는 지금까지 수혈이나 장기 이식, 상처를 동반하는 성(性) 관계, 마약 상용자들이 함께 사용하는 주사기 등 직접 타인의 혈액과 접촉하는 경우에만 전파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수술 도중 수술 기구 등에 의해 상처를 입기 쉬운 의료인과 감염된 임산부로부터 태어나는 아기도 감염 위험이 높다.

최근의 또 다른 연구는 C형 간염에 걸린 사람이 술을 마시면 증세를 더 악화시키고, 약물 치료도 방해를 받는다고 밝혔다. C형 간염 보균자는 술을 멀리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세계에서 약 1억7천만명이 C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 나라에서도 예방 백신이 개발된 B형을 제치고 C형 간염이 더 많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키스에 의해 C형 간염 바이러스가 전파될 가능성을 인정하는 데 주저하는 분위기다. 있더라도 매우 낮을 것이라는 데 더 무게를 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그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며, 결론을 내리기까지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신뢰할 수 없는 사람과 키스하는 것에 더 많은 제약이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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