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렁한 날에 뜨끈한 콩나물국
  • 이영미 (문화 평론가) ()
  • 승인 2003.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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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을 직접 길러 먹기 시작한 것도 벌써 10년쯤 된 듯하다. 홈쇼핑 책자에서 콩나물 재배기 광고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구입한 것이 시작이었다. 콩나물 키우는 어려움은 자주 물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썩거나 잔뿌리 천지가 되어 버린다. 콩나물 시루와 물받이를 새로운 모양으로 만든 도자기형 재배기도 결국 물주는 방식은 재래식이어서, 낮에 집을 비우는 우리집에는 부적절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디어 상품들이 나왔는데, 모터로 물을 뿜어주거나 흡습지로 물을 빨아올리는 재배기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내가 산 제품은 작은 관으로 떨어진 물이 모여 일정 시간마다 물을 쏟아내는 것으로, 부피가 큰 것이 흠이지만 전기를 쓰지 않으면서도 위에서 물을 쏟아내어 좋다.

슈퍼마켓이나 시장, 유기농산물 판매점에서 얼룩덜룩한 콩나물콩을 사다가(약으로 쓰는 쥐눈이콩도 괜찮다) 하루 저녁 물에 불린 뒤 재배기에 앉히고 하루에 한두 번씩 물을 관리해주면, 5~7일 정도에 콩나물이 다 자란다. 물론 콩나물 생김새는 참 못 생겼다. 꾸불꾸불하고, 잔뿌리가 많이 날 때도 있고, 날이 너무 덥거나, 여름 지나 발아율이 낮아질 때에는 썩은 것이 많이 나오기도 한다(나중에야 터득한 것인데 여름에 콩을 냉장고에 보관하면 발아율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귀찮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맛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산 콩나물은 줄기가 통통하고 끓여도 줄기가 아작거리며, 콩나물 대가리가 잘 무르지 않는다. 그런데 집에서 키운 콩나물은 줄기가 가늘고 국을 끓여놓으면 금방 말랑해지고, 콩나물 대가리도 말랑하고 고소하다. 팔팔 끓을 때에 국물 색깔이 뽀얗게 되는 것이(식으면 다시 말개진다), 맹맹한 시장 콩나물과 비교할 수 없다.

콩나물국은 만들기는 쉽지만 맛을 내기가 참 어렵다. 왜냐하면 조선간장을 쓰지 않고 오로지 소금으로만 맛을 내는데, 콩나물 자체가 별다른 맛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가능하면 화학 조미료를 쓰지 않으려 노력하건만, 콩나물국에서는 어쩔 수 없이 쓰게 되는 것이 늘 고민이었다. 화학 조미료 대신 다시마를 넣어서는 맛이 안 나고, 멸치는 비린내가 너무 강해 깨끗한 콩나물국과 안 어울린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야 아주 적절한 재료를 알아냈다. 조개를 넣는 것이다. 모시조개나 바지락, 아니면 커다란 개조개도 좋고, 없으면 굴을 조금 넣어도 좋다. 입에 착 붙으면서 시원함이 살아난다.

찬밥이 있는 날이면 끓여둔 콩나물국으로 전주식 콩나물해장국을 해먹는다. 뚝배기에 콩나물국을 덥혀 밥을 말고, 마지막에 들깨가루와 달걀, 파를 넣어 상에 놓는다. 여기에 묵은 김장 김치라도 조금 있으면 더할 나위가 없다. 전주에 있는 콩나물해장국 전문 식당 삼백집에서는 모주를 같이 판다. 모주(母酒)란 원래 막걸리, 혹은 술찌끼를 끓인 것인데, 막걸리에 흑설탕·계피·대추 등 약재를 넣어 끓여 모주라는 이름으로 판다. 달고 따끈한 모주를 딱 한잔만 곁들이는 것인데, 휴일 아침 콩나물해장국에 모주 한잔 먹고 낮잠 자면 간밤 숙취는 그냥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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