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기업 관계 투명해져야 한다”
  • 런던·김용기 편집위원 (y.kim2@lse.ac.uk)
  • 승인 2000.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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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정책은 경제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것과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 사이의 어떤 지점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퇴출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현실 정책을 입안하는 데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주요 정부기구 간에 정책 선호도가 다르고, 선거와 언론 등이 정책 결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경제 정책의 경제적 요인과 경제 외적 요인을 살피고 국외적 요인을 고려하여 국내 경제 현상을 분석하는 것이 정치경제학이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민주화, 3년 전의 외환 위기와 급속한 경제 회복 등으로 인해 한국 경제는 정치경제학의 주요한 분석 대상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대학의 스테판 해거드 교수는 세계 정상급 정치경제학자이다. 지난 20년간 한국을 포함한 신흥 산업 국가의 경제성장 및 구조 조정, 정치 개혁과 경제 발전 간의 관계, 그리고 세계화의 영향 같은 주제들에 관해 많이 연구해 왔다. 1998년 2월 미국 하원 청문회의 참고인으로 출석해 미국의 IMF 출자금 증액에 찬성하는 증언을 한 적도 있다.

해거드 교수는 최근 <아시아 금융 위기의 정치경제학(The Political Economy of the Asian Financial Crisis)>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한국 외환 위기의 원인과 이후 구조 조정에 대한 정치경제적 해석을 붙이고, 금융 및 기업 구조 조정 방향에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흥미롭다(www.amazone.com에서 구할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외환 위기 원인을 설명하는 세 가지 대표적인 주장 모두가 핵심적인 정치경제적 분석을 결여했다고 서술한다. 세 가지 주장이란 △환율고평가론 △국제 금융 시장의 소떼 행동(Herd behavior)론 △금융산업에 대한 암묵적 정부 보증과 취약한 규제, 그리고 이에 따른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론을 말한다. 그는 외환 투자자들의 행동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부의 환율 고수 의지가 금리와 실질 임금 저하 등 정치 비용과 관계가 있고, 또 소떼 행동의 방아쇠를 당기는 초기 투자자의 자금 회수도 정치적 상황 전개에서 비롯되는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에서 야기하기 때문에 정치경제적 분석이 필요불가결하다고 지적한다. 모럴해저드론에서 말하는 규제의 취약성도, 관리들의 노하우 부족보다는 특정 집단에 대한 정부의 선호도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에, 이 또한 정치적 문제로 해석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해거드 교수는 모럴해저드론과 관련한 관대한 규제 정책에서 위기의 주원인을 찾는다. 그리고 그것은 수십 년간 유지되어 온 정부와 금융산업 및 재벌 간의 특별한 관계에서 야기된 것이라고 해석하며, 때문에 구조 조정은 고도 성장 기간에 형성되어온 국내 산업, 특히 재벌의 특권적 지위를 재고하고 금융권과 기업들을 합리적으로 규제하며 스스로가 책임을 다하도록 강제하는 쪽으로 맞추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대기업 간의 건강하고 균형 잡힌 관계 형성이 핵심 과제라고 그는 단정한다. 사적 기업의 재산권은 분명하게 보장하고, 그들의 선호가 정치와 정책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러한 사적인 경제력을 행사하는 것은 대항 세력에 의해 견제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업·정부 간의 관계와 기업 지배 구조가 투명해야 하며, 기업의 무리한 행동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적 불안과 국민 부담 발생은 강한 규제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시장 기능을 전략적으로 강화해 확보할 수 있지만, 다양한 형태의 제도적 변화와 궁극적으로는 그 사회 자체의 정치적 역량을 강화해서 얻어야 한다고 해거드 교수는 진단한다. 다음은 해거드 교수와 e메일을 통해 인터뷰한 내용이다.
어떻게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

용산에서 군 생활을 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원(버클리)에 진학했을 때, 미국에서는 몇몇 퇴조 산업들을 위한 보호 정책이 주된 무역 정책이 되고 있었다. 나는 무역 정책보다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장을 깊고 역동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찰머 존슨의 책 <산업통상부와 일본의 기적>에 영향을 받으며, 동아시아 4개국(한국·타이완·홍콩·싱가포르)의 고속 성장의 정치학에 관한 학위 논문을 썼다. 네 나라 중 특히 한국은 가장 규모가 크고 복잡다기한 면이 많아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구조 조정의 핵심으로 당신이 강조하는 책임성(accountability)과 투명성(transparency)은 구미 중심의 인터내셔널 스탠더드와는 어떻게 다른가?

많이 다르다. 우선 기업 지배 구조를 생각해보자. 나는 이 책에서 한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반드시 구미적 기업 지배 구조를 가져야 한다고 제안하지 않았다. 한국에는 급속한 산업화에 기여한 재벌이라는 독특한 기업 구조가 존재해 왔다. 하지만 그룹 구조는 내부자가 주주의 이익을 가로채고, 소액 주주를 희생시키며, 재벌 가족에게 자금과 자산을 흘려보낸다. 책임성과 투명성을 높여 기업 지배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재벌 체제 종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마도 몇 개 산업으로 집중화한 기업들로 변신하는 것일 수 있다. 내가 볼 때 문제는 단순히 기업들에만 있지 않다.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온 정부와 기업간 관계에 핵심이 있다. 기업과 금융기관, 기업과 정부기구들, 기업과 정치인들 간의 관계가 반드시 더 투명해져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영역에서 투명성이 강화되지 않고서는 규제 정책의 순수성이나 기업 활동의 정당성이 확보되기 어렵다.

대마불사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복잡한 사안이어서 해결책 또한 단순하지 않다. 혹자는 차라리 위기 상황이 호기이며, 이럴 때 경쟁력 없는 기업들을 모두 쓰러지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신용 경색과 원 달러 환율 상승, 경기 침체 등 위기의 시기에는 양호한 기업도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므로 첫째, 은행이 한계 기업(예를 들어 빚이 자산보다 많은)과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을 구분해야 한다. 현금이 부족한 기업은 구조 조정을 통해 재무 구조를 개선시켜야 한다. 하지만 재무 구조 개선과 경영 구조 개선은 구분되어야 한다. 은행이 자금을 쉽게 공급하면 기업은 과도한 위험을 꺼리지 않게 되어 다시 건강치 못한 채무 구조를 갖게 되는 것이다. 경영 구조를 개선하려면 아직 갈 길이 먼 것처럼 보인다. 해외 직접 투자 유치와 금융산업을 포함한 기업들의 국제적인 합병·매수가 경영 구조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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