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적 민심 수습책 필요”
  • 김종민 ()
  • 승인 2000.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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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새로운 정치 지도자를 원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 욕구를 충족시킨다면 차기 후보로 나서는 데 3개월 정도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민주당 차세대 주자 가운데 한 사람인 노무현 해양수산부장관은 지금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그의 경쟁자인 다른 차세대 주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거기에 신경을 쓸 겨를이 거의 없다. 그는 장관 직을 수행하는 것 자체가 자신이 차기로 가는 데 가장 중요한 디딤돌이라고 보고 있다. 노장관을 만나 최근의 시국 상황과 정치 현안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 보았다.


장관을 맡은 지 4개월이 가까워 오는데, 국회의원 할 때와 다른 점이 있습니까?

조직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하고 있습니다. 장관인 제가 일을 하려고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조직이 활발히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부처의 주인은 20∼30년 동안 이곳에 근무해 온 관료들입니다. 장관은 이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조직을 활성화하는 컨설턴트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매주 화요일 국무회의에 참석하면서 고급 정보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는 점도 새로운 경험입니다.


우리나라의 해양 전략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해양산업은 국가 경제를 받쳐주는 기반 산업입니다. 수출입 물동량의 99.7%가 항만을 거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주요 항만은 동북아의 정기 간선 항로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동북아 경제권이 커질수록 해상 물류 기지로서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 자체로 큰 돈벌이가 된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외자 50억 달러를 유치해 대형 항만 건설 사업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정부로부터 민심이 떠나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현시국을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어려운 시기인 것은 사실입니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1차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지만, 대통령의 잘못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주장에는 승복하기 어렵습니다. 가령 IMF 사태를 극복해야 하는 위기 상황에서 총리 임명 동의안 하나 가지고 6개월이나 끌었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국회가 제대로 돌아간 적이 없습니다. 그 여파로 모든 정책에 대해 이해 당사자들이 총궐기하고 총저항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야당이나 이익 집단도 문제지만 현정권이 이견들을 조정하고 통합하지 못한 점은 문제 아닌가요?

물론 정부·여당이 설득과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만들어가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 점은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동안은 합리적인 설득이 통하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김대통령이 만능은 아니라고 보지만 대통령도 못 푸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면 우리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개혁의 방향은 옳았으나 속도가 너무 빨랐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DJ의 욕심이나 판단 잘못 때문은 아닙니다. IMF 상황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는 구조 조정이든 개혁이든 빨리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제 상황에 밀리는 꼴이었습니다. 멈춰 서면 죽기 때문에 빨리 가야 했고, 속도가 빠르니까 갈등이 불거질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시행 착오도 겪고 설득도 하면서 갈등이 해결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여당의 리더십에 문제는 없었다고 봅니까?

있지요. 우선 존립 기반이 취약한 소수파 정권이라는 점이 태생적 한계로 작용했습니다. 또 잘 정리된 철학과 논리는 있었지만 실제 리더십 스타일은 과거의 유산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점도 사실입니다. 오랜 세월 우리 지도자들과 국민들은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모든 국민이 대통령만 바라보는 틀에 익숙해 있습니다. 아직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정 쇄신, 대통령의 당적 이탈, 한나라당과의 협력 체제 등 다양한 민심 수습안들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파격적 발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원인이 어찌되었든 민심이 흔들리고 개혁이 탄력을 잃어가고 있는 만큼 가능한 모든 방안을 열어놓고 검토할 때라고 봅니다. 야당은 물론 사회 각계의 이해 당사자를 존중하고 그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차기 대선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입니다. YS의 최근 정치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정치적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언론이 키워주고 있을 뿐입니다. 영남 민심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YS가 보태지 않아도 영남 민심은 이미 반DJ로 고착해 있습니다. YS가 보탠다고 더 악화할 것도 없는 상황입니다. 또 민주산악회를 보면 알 수 있듯이 YS 스스로 정치 세력으로 등장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차기 대선에서의 영향력도 거의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YS에게 공격당하면 손해는 좀 보겠지요.


DJ와 YS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의미도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우리 사회는 많이 변해서 DJ와 YS가 협력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시사저널>이 민주당 대의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예상과 달리 노장관이 6위로 처졌는데요.

나중에까지 지지가 낮으면 못하는 거지요(웃음). 이인제씨가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에서 이총재와 맞서는 후보로 뛰어오르는 데 3개월밖에 안 걸렸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나 대의원들이나 지지하는 인물이 없다고 답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이인제씨나 이회창씨를 지지하지 않는 것은, 그들로서는 뭔가 해결되지 않은 욕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을 원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 욕구를 충족시킨다면 3개월 정도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고려대 임혁백 교수가 얼마 전 DJ 정권이 레임 덕을 막기 위해서는 차세대 주자군을 부각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레임 덕 극복 전략으로 일리가 있는 주장입니다. 차세대가 나오면 권력 누수가 생긴다고 인식하고 있는데, 지금 여당이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당내 차세대 주자들로 인한 권력 누수가 아니라 여당에서 야당으로 권력이 이동할 것이라는 분위기 때문에 심각한 권력 누수가 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당내에 다수 후보군이 부각되면 대통령이 지렛대를 가지고 있으니까 당 장악력이 강해질 것이고, 대야 전선에서는 재집권할 가능성을 보강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노장관을 지지하는 계층이 20∼30대 층이어서 응집력은 있으나 폭이 좁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를 극복할 방안을 가지고 있습니까?

장관 직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최고의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이나 지시를 통해서가 아니라 솔선수범함으로써 리더십을 세우고 조직의 문화를 바꾸어 보려고 합니다. 제 나름의 중요한 실험입니다. 많은 공무원과 이해 당사자들이 저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들이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여기서 어떤 평가를 받느냐가 지금 저에게는 가장 중요합니다. 한두 가지 이벤트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뭔가 변화가 있었다는 걸 보여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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