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맞은 철새 관찰 여행 가이드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0.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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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관찰 여행 '시즌 오픈'…시름 잊은 채 자연의 신비도 만끽
요즘처럼 손발이 시린 날, 서해 쪽으로 나서면 개펄과 맞닿은 논과 밭에서 도요새나 물떼새 같은 귀한 손님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그들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를 듣거나, 석양 무렵에 펼치는 장엄한 군무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새들의 자유로운 비상을 보며 그들을 닮고 싶어한다. 하지만 새들이 인간 이상의 고통을 감내하며 하늘을 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새들의 삶에서 이동은 최대의 모험이다. 이 모험으로 인해 한 해에 수억 마리의 새가 죽어간다. 일부 학자들이 믿는 것처럼 새는 날씨를 예지하는 능력이 없다. 여행 도중에 태풍이 불지, 안개나 강풍을 만나게 될지 전혀 예측하지 못한다. 바다에서 태풍을 만난 철새들은 멀리까지 밀려가 영영 육지에 도달하지 못한 채 죽어가기도 한다. 또 안개 때문에 방향을 잃기도 한다. 북극제비갈매기 같은 철새는 그같은 악조건과 싸워가며 태양과 별빛에 의지한 채 최고 1만8천km까지 날아간다. 한반도에서 겨울을 나는 철새들은 위와 같은 위험을 극복하며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남하한 대단한 존재이다. 가을·겨울 탐조(探鳥) 여행은 이같이 귀한 손님들을 만나 마음의 문을 열고 자연의 신비를 만끽할 좋은 기회이다.
전문가들은 철새에 관한 지식을 빨리 그리고 쉽게 얻으려면 우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새부터 관찰하라고 말한다. 서울의 경우, 수는 많지 않지만 한강 하류나 밤섬 등지에서 재두루미나 청둥오리를 볼 수 있다. 조금 더 시간을 낼 수 있다면 강화도 화도면과 길상면의 개펄과 농경지로 나가면 더 많은 새를 볼 수 있다. 2000년 2월 현재 한반도 남쪽에서 겨울을 나는 철새는 모두 1백86종에 1백18만4천여 마리(환경부 자료)이며, 그 새들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은 100여 곳에 달한다. 민통선 안의 철원평야, 강릉 경포호, 고성 화진포, 낙동강 하구(을숙도), 서천 금강 하구언, 창원 주남저수지, 해남 고천암호, 순천만 등지가 철새를 관찰하기에 좋은 곳이다.

서산 천수만은 ‘살아 있는 조류 도감’
주변의 새 관찰과 조류 도감을 통해 새들의 특징과 생활 습관을 어느 정도 익혔다면 철새가 많이 월동하는 곳으로 이동한다. 단 이때에는 경험 많은 사람이나 그 지역의 전문가와 동행하는 것이 좋다. 무작정 혼자 떠났다가는 낭패하기 십상이다. 새는 동물 중에서 가장 기동력이 뛰어나, 어디에서 먹고 쉬는지 모르면 꽁무니만 쫓아다니다가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주의할 점은 원색(빨강·노랑·하양) 옷과, 향수·스킨 로션같이 진한 냄새가 나는 화장품을 피하라는 것이다. 새의 감각은 인간보다 훨씬 예민해, 색깔이나 냄새 같은 자극에 멀리 달아나고 만다.

탐조 초보자들이 철새를 관찰하기에 좋은 곳은 충남 서산의 천수만이다. 천수만은 1989년에 충남 홍성군과 서산군 사이를 둑으로 막아 생긴 간척지. A·B 지구로 나뉘어 있는데, 논이 대부분인 A지구(1천9백만 평)에 특히 많이 날아든다. 올해 초 조사 결과, 천수만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19만3천 마리의 철새가 머물렀다. 새들이 이곳에서 날개를 접는 이유는 먹이가 되는 벼의 낟알이 풍부하고, 주변에 개펄과 호수가 있기 때문이다. 개펄은 충분한 먹이를 제공하고, 호수는 포유동물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철새가 이동하는 통로에 반드시 큰 강과 해안 지대가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11월 초, 천수만의 드넓은 평야에는 철새 수천 마리가 날아들고 있었다. 인기척에 놀란 기러기들이 날아오르면 주변은 금세 귀가 따가울 정도로 떠들썩했다. 둘레가 30km쯤 되는 간월호에도 각종 철새 수천 마리가 점점점 떠서 쉬거나 자맥질하고 있었다. 동행한 천수만탐조회(110쪽 ‘사람과 사람’ 참조) 교육간사인 한종현 교사(40·서산 지곡고)에 따르면, 요즘 천수만에서는 민물도요·재갈매기·잿빛개구리매·개리·기러기·가창오리·도요·물떼새·흰뺨검둥오리·바다오리 등 100여 종의 철새를 볼 수 있다.
망원경으로 간월호 안의 모래톱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새를 관찰하는데, 한교사가 옆구리를 툭 쳤다. “운이 좋네요. 멸종 위기에 놓인 저어새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흑두루미가 있어요.” 한교사가 800mm 망원 렌즈로 모래톱을 눈앞으로 당겨 주었다. 주걱 같은 부리를 가진 흰 새 6마리가 부리를 날개에 비비고 있었다. 그 가운데 눈 주위가 시커먼 새가 지구상에 수백 마리밖에 남아 있지 않은 저어새(천연기념물 205호)였다. 저어새 바로 옆에 한국에 8마리밖에 없다는 흑두루미(천연기념물 228호) 5마리가 긴 목을 움직여 깃털을 손질하고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논에 내려앉은 기러기나, 물 위에 앉아 있는 흰뺨검둥오리 들이 자동차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자동차는 새들을 관찰하는 데 최고의 은신처였다. 새들은 자동차를 자연의 물체로 여기고 있었다. 차가 20∼30m 옆으로 가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차 문을 열고 사람이 내리면 상황은 달라졌다. 한두 마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지르며 날아오르자, 수백 마리가 뒤따라 날개를 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새의 특징이나 습성을 제대로 아는 방법은 부지런한 탐조 경험과 학습뿐이다. 야외에서 경험을 쌓으면 새가 날아가는 모습이나 행동만으로도 종류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질서 있게 날아오르는 것은 기러기이고, 어수선하게 날갯짓을 하면 오리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또 소리만으로도 새의 종류를 구별하고, 새들이 무얼 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박시룡 교수(교원대·생물교육)에 따르면, 기러기들은 편대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시끄럽게 의사 소통을 한다. 서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나는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번갈아 가며 ‘갸우갸우’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먹이를 구할 때나 집합할 때 내는 신호가 각기 다르다. 기러기떼가 다른 새떼보다 시끄러운 것은 이 때문이다.

좀더 발전하면 몸의 크기나 형태, 부리나 발의 모양만 보고도 새를 구별할 수 있다. 새들의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는 경지에 이르려면 조류 도감에서 눈에 익숙한 새들을 중심으로 분류해 본다. 즉 오리류·백로류같이 비슷한 종들을 먼저 익히고 그들 간의 차이점을 파악하게 되면, 낯선 새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나는 모습, 날갯짓의 빠르기와 유형, 집단의 규모, 헤엄치는 모습 등을 잘 관찰해 두면 종을 구분하는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새를 관찰할 때는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를 보호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잘못 ‘접대’하면 우리 주변에서 영영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10여 년간 조류를 관찰해온 이종렬 기자(<세계일보>)는 ‘이제 몇 년만 지나면, 한국에서 보지 못하는 철새들이 수두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윤무부 교수(경희대·생물학)는 새들을 보호하며 탐조하려면 다음과 같은 국제 수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 동물의 번식기(짝짓기·알까기) 때는 접근을 피한다. 소리를 질러 새를 놀라게 하는 방법으로 사진을 찍거나 관찰하지 않는다. 새가 가장 편안한 상태에 있을 때 관찰한다. 모델료를 받지 않는 새에게 반드시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탐조 여행은 일반 여행과 다르다.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내고, 경이로운 조류의 세계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또 늦은 오후에 마술처럼 비치는 햇살, 바스락거리는 마른 풀잎, 콧속을 시리게 만드는 차가운 공기와 만나다 보면 새삼 자연에 대한 사랑이 가슴에 가득 차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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