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산업의 주역, 미생물이 몰려온다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0.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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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작물 병충해 예방하는 균주 개발 '붐…환경·건축·섬유 분야에도 활발하게 응용
‘스피루리나를 아십니까?’ 지난 10월12일, 서울 연세대백주년기념관에서는 ‘스피루리나와 건강’이라는 주제로 한국미생물학회가 주최한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지구에서 산소를 공급한 최초의 생명체로 알려진 미생물 스피루리나를 일반인에게 소개하고, 영양학적 가치를 평가하는 자리였다(104쪽 상자 기사 참조). 전공 학자들의 고유 영역으로만 인식되던 미생물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일반인에게 공개된 것은 그만큼 미생물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장(腸)은 미생물 전쟁터, 유산균은 아군

미생물은 인류 역사 이래 음식에서부터 배설물에 이르기까지 일상 곳곳에서 인간과 더불어 살아왔지만, 최근처럼 그 효용 가치가 인간의 눈길을 끈 적은 없었다. 일반적으로 미생물이란 세균·곰팡이·효모·방선균(세균과 곰팡이의 중간 생물)·바이러스·조류·버섯을 말한다. 미생물은 인류에게 각종 질병을 안겨줌으로써 ‘박멸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약 5천년 전부터 그 특유의 성질이 식품 가공에 응용되는 등 인류 생활에 이바지해 왔다. 빵이나 맥주는 물론 페니실린 발명에 이르기까지 미생물 활용은 끊임없이 시도되었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미생물의 가치는 더욱더 높아지고, 이를 생명공학이나 환경산업에 응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고 이용되는 미생물 가운데 하나가 유산균이다. 비피더스·불가리스 등 요구르트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유산균은 인류의 건강 식품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이다. 20세기 초 메치니코프는, 우유에서 자라는 유산균이 사람을 건강하고 장수하게 하는 정장(整腸)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밝힌 공로로 노벨상을 타기도 했다.

사람의 몸에는 미생물 수백 종이 100조 마리 넘게 살고 있다. 특히 ‘인체의 제약공장’이라고 불리는 장은 미생물의 전쟁터나 다름없다. 항생제를 생산할 뿐 아니라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만들어 내거나 면역력을 강화하고 소화를 촉진하는 유익한 균과, 해로운 물질을 만들고 독소를 생성해 발암 물질을 활성화하는 해로운 균들이 서로 치고 받는 곳이다. 어떤 세균이 승리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건강 상태가 좌우되는데, 이 전쟁에서 이로운 균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유산균이다.

한국인들은 전통 음식을 통해 오래 전부터 유산균을 섭취해 왔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는 된장·청국장·김치가 대표적인 발효 식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청국장은 일반 된장보다 건강 유지에 더 뛰어난 효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된장을 발효시키는 주역은 누룩곰팡이인데, 청국장을 발효시키는 주역은 세균인 고초균(Bacillus subtilis)이다. 고초균의 효능은 매우 탁월해 최근 들어 쓰임새가 다양화하는 추세이다. 김치의 유산균은 요구르트의 유산균보다 효능이 훨씬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유익한 효모가 살아 있는 막걸리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전통 발효 음식이다. 최근 국내 미생물 연구자들은 전통 발효 음식에서 생성되는 유산균을 여러 가지 상품으로 개발하는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올 봄 ‘마이크로비아’라는 바이오 벤처 회사를 설립한 정가진 교수(서울대·미생물학)는 최근 김치와 청국장의 유산균을 이용해 숙취 해소제를 개발하고, 출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정교수는 “우리 전통 음식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미생물은 정장 작용뿐만 아니라 이들의 발효산물이 알코올을 제어하는 능력이 뛰어나서 숙취 해소제로 이용할 경우 효과가 탁월하다”라고 주장했다. 마이크로비아는 한국 최고의 김치 유산균 학자 한홍의 교수(인하대·미생물생리생태학)와 손잡고, 정장 작용을 훨씬 높이고 좋은 맛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유산균 김치’도 개발했다. 유산균 김치는 다음 달부터 시판에 들어갈 예정이다.
과일 유산균을 다양한 상품으로 개발한 벤처 회사도 있다. ‘바이로박트’는 자연 상태에서 숙성시킨 과일로부터 락토바실러스를 배양하는 데 성공해, 음료는 물론 가축 사료 첨가제 및 탈취제 등으로 상품화했다. 오래 전부터 효능이 탁월하다고 인정받은 이 사료 첨가제는 가축의 소화 기능을 촉진시켜 체중을 늘리고, 면역 기능을 강화해 질병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생물은 환경과 농축산업 분야에서도 폭넓게 활용되는 추세이다. 바이로박트는 락토바실러스 균주를 이용해 가축 분뇨와 오폐수를 처리하는 탈취제를 개발해 상용화했다. 이 탈취제는 1996년 환경관리공단이 최우수 탈취제로 선정해 지난 여름까지 서울과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 악취를 제거하는 데 쓰였다. ‘바이오알앤즈’와 ‘고려바이오텍연구소’가 개발한 폐수처리용 종균제는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폐수를 처리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30년대부터 산업 폐수 처리에 미생물을 이용했다. 1989년 알래스카 해변에서 기름이 유출되었을 때에도 미생물을 방출하여 기름을 처리했다.

농축산업 분야에 응용되는 미생물은 종류와 효과가 다양해 급성장하는 분야 가운데 하나이다. 미생물 종균제 흑기사 등을 개발한 ‘바이오베스트’는 국내 최초로 토마토 청고병(잎이 푸르게 마르는 병) 등 악성 채소병을 생물학적으로 방제하는 데 성공했다. 바이오베스트 중앙연구소 이상협 박사는 “값이 비싸고 방제 효과가 일시적인 화학 항생제에 비해 미생물 종균제는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채소의 질병을 예방하고, 환경 피해도 전혀 없는 것이 특징이다”라고 설명했다. 미생물 종균제는 채소의 성장을 가로막는 나쁜 균을 잡아먹는 ‘천적’ 구실을 한다.

바이오알앤즈와 ‘그린바이오텍’ 등이 개발한 농업용 미생물 제제는 농약과 비료의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제품이다. 특히 그린바이오텍이 개발한 과채류 저장용 미생물 제제는 수확한 감귤·키위·감자를 장기간 보관할 수 있도록 부패를 방지하고 선도를 유지하는 효과를 갖고 있다.

미생물은 음식 찌거기를 이용해 효율적인 가축 사료로 만드는 데도 이용된다. ‘바이오엔비텍’은 최근 가축의 장내 미생물을 이용해 먹고 남은 음식물을 질 좋은 무공해 가축 사료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바이오엔비텍은 바실러스 등 10여 가지 미생물을 이용해 발효 사료를 개발했다. 이 사료는 일반 배합 사료에 비해 값이 싸면서도 영양가나 면역성이 탁월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생물이 산업 분야에서 응용되는 사례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생명공학연구소 박승환 박사는 청바지 염색 등 섬유 가공 공정에 쓰이는 효소를 생산하는 바실러스 균주를 개발해 1년 후쯤 상용화할 예정이다. 바실러스균에서 나오는 중성 셀루라제와 아밀라제는 탈색이 고르게 처리되고 면직물의 강도를 높여 값싸고 품질 좋은 청바지를 생산하는데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디엠제이바이오텍’은 콘크리트 구조 강화용 미생물 다당류인 베타 글루칸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베타 글루칸을 콘크리트에 혼합하면 무다짐 공법으로 소음 없이 작업할 수 있고, 인건비도 줄일 수 있다. 또 콘크리트의 유동성을 높여 복잡한 구조물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

이상엽 교수(한국과학기술원·화학공학과)는 지난해 미생물을 이용해 ‘썩는 플라스틱’(생분해성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플라스틱이 물속과 토양에 존재하는 미생물이 만드는 효소에 의해 가수 분해 과정을 일으켜 물과 탄산가스로 분해되는 것이다.

정건섭 교수(연세대·생물자원공학)는 “미생물의 이용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하나하나 효능가치를 알아낼수록 미생물은 우리 생활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어 생활 풍속도를 바꿀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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