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꿈의 에너지 ''소형 발전''이 뜬다
  • 남상민 통신원 ()
  • 승인 2000.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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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수소 이용한 '초소형 발전' 각광…환경 친화적이고 경제적
유가가 치솟자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그 기운은 세계 경제 체제의 근간을 변화시킨 정보통신 혁명에 못지 않지만, 아직은 그 힘이 느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 흐름의 속도와 규모는 머지 않아 화석 연료에 의존해온 현대 산업 문명 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산업과 사회 전반에 걸쳐 큰 변화의 물결을 일으킬 이 해류는 초소형 발전(micro power) 혁명이다. 초소형 발전은 일반 핵발전소 1기 발전 규모의 100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10메가와트(MW) 이하의 발전을 의미한다. 또한 생산된 전력도 고압 송전 시스템을 통해서가 아니라 저압인 지역 배선망이나 수요 건물에 직접 공급하는 것이다.

거대 석유 기업들도 속속 참여

환경 올림픽을 기치로 내건 시드니올림픽에서 선수촌은 이 흐름을 상징한다. 자연 채광·태양광·태양열에서 필요 전력의 대부분을 얻고 있어 환경 친화적 에너지 활용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이것만이 아니다. 선수촌의 태양광 설비 공급자가 세계적인 석유기업 브리티시 페트로넘(BP)이라는 것이다. 다른 석유 기업보다 일찌감치 온실 가스에 의한 지구 온난화 가능성을 인정하고, 온실 가스 감축 프로그램을 적극 실행하고 있는 BP는 이미 전세계 태양광 전지 시장의 20%를 점유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프랑스에서 지붕을 태양광 패널로 뒤덮어 조명과 주유기에 필요한 전력을 태양 에너지로부터 얻는 주유소를 처음으로 열었다.

지구 온난화와 환경 오염을 유발해온 대규모 화석 연료 기업이 변신한 사례는 또 있다. 몇 해 전 그린피스가 북해 유전 시추선 해저 폐기를 반대하며 해상 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 로열 더치 셸도 북해와 발트 해에서 대규모 풍력 발전을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셸은 화석 연료를 생산하는 에너지 기업은 경제·환경·사회적으로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밝혔으며, 21세기 중반에 이르면 전세계 에너지의 절반을 재생 에너지가 감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ABB-CE 사의 변신은 더욱 극적이다. 전세계 핵발전과 수력 발전 설비 제작을 주도해온 ABB-CE는 지난 6월 이 부문 사업을 완전히 포기하고 풍력과 태양 에너지 기술에 주력하겠다고 발표했다. ABB-CE는 한국 표준형 원자로의 설계 모델인 영광 3·4호기 핵발전소를 건설했고, 세계 최대 규모인 중국의 삼협 댐 사업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ABB-CE의 고란 린달 사장은 메가 파워, 즉 대규모 발전 부문을 포기한다고 선언하면서 가까운 장래에 ‘엄청난 대체 에너지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20세기 들어 ‘큰 것은 싸다’는 규모의 경제 신화를 바탕으로 발전해온 대규모 발전 시스템이 힘을 소진하게 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화석 연료 사용에 따른 지구 온난화, 대규모 발전소 건설로 인한 환경 파괴, 사회적 저항에 따른 입지 선정의 어려움, 에너지 시장 자유화로 인한 독점 구조 해체와 경제성 저하, 해결할 길이 보이지 않는 핵폐기물과 핵에너지의 비경제성 등 다양하다. 기존 에너지 생산 체제가 안고 있는 이런 문제는 그동안 대규모 발전의 독과점으로 에너지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웠던 초소형 발전에 기회를 주었다. 초소형 발전이 시장에 진입해 기존 발전 체제와 경쟁할 수 있는 조건이 되면서 ‘작은 것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경제적’이라는 점도 증명하고 있다. 이런 초소형 발전의 근간은 태양·수소 에너지 체계이다.

태양광 전지의 발전 비용은 지난 20년 동안 20% 정도 낮아졌다. 핵심 요소인 실리콘 박편 제조 기술 발달과 수요 증가에 따른 제조 원가 저하로 발전 비용은 더욱 낮아질 전망이다. 올해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발에 성공한 나노 입자 산화물 태양 전지도 태양광 보급 전망을 한층 밝게 해준다. 1990년대 초반 스위스에서 개발된 나노 크기의 티타늄 산화물을 이용한 이 태양 전지는 기존 태양 전지와 비교해 효율은 비슷하지만 제조 비용은 2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유리창으로 쓸 수 있을 만큼 투명해 건물 외면 전체를 발전 공간으로 쓸 수 있으므로 건물의 에너지 자급 수준을 훨씬 높일 수 있다.

태양광과 아울러 가장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는 것이 연료 전지이다. 연료 전지는 연료와 공기를 연소시켜 에너지를 얻는 것이 아니라 수소와 산소를 양극과 음극에 공급해 화학적 에너지를 직접 전기 에너지로 변환한다. 그리고 발전 효율이 기존 대규모 발전보다 두 배 이상 높고, 소음이나 대기 오염 물질 배출도 극히 적어 자동차의 내연기관과 발전소를 대체할 수 있는 대표적인 대안 기술로 꼽힌다. 사실 이 기술 개념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19세기에 작동 원리를 밝혀내 1960년대부터 우주선이나 군사 분야에 응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높은 제조 원가와 전지 구성 요소의 성능 저하 문제로 민수용 개발이 늦어졌다.

그러나 에너지 시장 여건의 변화는 연료 전지 수요 증가와 기술 진보를 가져오고 있다. 핵발전소 설비 기업인 지멘스-웨스팅 하우스 사는 2004년에 석탄 화력 발전소 단가 수준인 산업용 발전기를 판매할 예정이며, 연료 전지 분야에서 대표적 기업인 캐나다의 발라드는 일본 최대의 천연 가스 기업인 도쿄 가스와 함께 개발하고 있는 1kW 규모의 가정용 연료 전지를 내년에 시판할 예정이다. 연료 전지에 필요한 수소는 천연 가스·도시 가스·메탄올·메탄 등에서 분리해낼 수 있기 때문에 가정으로 연결된 도시 가스를 곧바로 연료 전지에 활용할 수 있다.
자동차 내연기관을 연료 전지로 대체하는 실험도 진행되고 있다. 1999년에 만들어져 현재 캘리포니아 주 정부, 발라드·셸 같은 에너지 기업, 다임러 크라이슬러·포드·혼다·닛산·현대 등 자동차 기업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연료 전지 파트너십은 2003년까지 캘리포니아에 연료 전지 승용차와 버스를 적어도 70대 운행할 계획이다. 특히 다임러 크라이슬러는 2002년부터 연료 전지 버스를 시판할 예정이어서 내연기관을 대체하는 질주는 이미 시작되었다. 수소를 저장한 탱크를 탑재해 직접 전기를 생성하거나, 메탄올·가솔린 등을 이용해 수소를 추출하여 운행하는 연료 전지 차량은 기존 전기 자동차에 비해 편의성이나 효율이 훨씬 높아 다음 세기 초·중반에는 가장 보편적인 자동차로 떠오를 것이다.

이렇게 21세기의 에너지 체제를 좌우할 수소는 태양 에너지를 사용해서도 추출할 수 있다. 태양광 전지를 이용해 물을 전기 분해하여 수소를 직접 제조할 수 있기 때문에 일조량이 많지만 전력 수요가 없는 바다에서 수소를 생산해 필요한 지역에 수송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태양·수소의 에너지 체계가 형성되어 에너지 생산과 소비에 따른 환경 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

태양광이나 연료 전지 외에도 마이크로 가스 터빈도 초소형 발전 혁명의 주역으로 각광받고 있다. 기존 발전 터빈처럼 복잡한 기어 박스나 윤활유가 필요 없는 마이크로 가스 터빈은 도시 가스를 이용해 전력 생산뿐만 아니라 냉·난방까지 할 수 있다. 또한 설치와 유지 비용이 싸고 효율 및 안정성이 높아 상업용 건물이나 중소 단위 집단 주거 시설에 안성맞춤이다.
이처럼 각 소비 단위에서 자급하는 초소형 발전은 외부와 단절되지도 않는다. 외부의 전력선과 상호 계통 연계를 통해 잉여 전력을 다른 사업자에게 팔 수도 있고, 필요량을 추가 구입할 수도 있다.

이러한 초소형 발전은 전력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개도국의 30억 인구에게도 현실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대규모 발전 시설과 송·배전망을 구축하고 운용하는 데는 막대한 사회적 자본이 필요하다. 개도국에 고압 송전망 설비 비용에도 미치지 않는 초소형 발전원을 공급하면 개도국 에너지 부족 문제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초소형 발전 혁명은 단순히 크기의 소형화가 아니라 에너지원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그 변화는 화석 연료나 핵이 아닌 환경 친화적 재생 에너지 시대로 진입하는 것이다. 또한 분권화와 지역 자립적 에너지 체계로 이전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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